
반 지하 청춘의 편지,
나는 K가 고향에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열차표를 결제하시겠습니까?’
K는 고민한다. 어렵사리 구한 귀성열차표다. 결제를 승인해야 할까 취소해야 할까. 6만 원에 달하는 가격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K에게 있어 6만 원이란 돈은, 수 백 잔이 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야 겨우 입금 받을 수 있는 큰 금액이긴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향해야 할 K의 결정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K의 신분 때문이었다. 갑오개혁 이후 폐지된 줄 알았던 신분제는 2017년의 대한민국에서 그 계급차를 더 확고히 했다. 그리고 K의 신분은, 지구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로 급부상 해버린 ‘지옥불반도 헬조선의 취준생’이었다.
K는 방금 전까지도 자소서의 사각 박스에 글자를 꾸역꾸역 채워 넣고 있었다. 인간에겐 수 많은 감정이 있다지만 K에게 남아 있는 건 불안감 밖에 없다. 죽을 때까지 커피만 만들다 세월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나마 커피라도 계속 만들 수 있다면 다행일 거다. 지금 일하는 카페에서 갑작스레 K에게 사직을 권유할지도 모른다. 그럼 아르바이트에게 퇴직금 따윈 없단 걸 잘 알고 있으니 새로운 생계유지 수단을 고민해야 한다. 그때도 자소서는 계속 쓰고 있겠지. 하지만 어리고 능력 있는 신입사원을 선호하는 기업에선, 그저 아르바이트 경력밖에 없는 K의 자소서를 읽어보지도 않을 거다. 관록과 고난과 애환이 담겨 한층 더 절실해진 K의 자소서는 그렇게 휴지통으로 직행한 뒤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던 문서가 돼 버리고 말거다.
그래. 그나마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 볼까? 결제승인을 눌러 고향에 내려갈 경우를 좀 더 디테일하게 상상해 본다. 우선 온 집안의 전기 코드를 다 뽑고 집을 나설 거다.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울 테니 이번 달 전기세는 절약이 좀 될 것 같다. 그런데 열차표 값이 더 비싸니 완전한 절약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도 부모님이 기차역에 마중을 나와 있을 것 같다. 6개월 만에 집에 돌아온 아들의 얼굴을 보며 반가워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이때가 가장 K의 마음이 무거워 지는 순간이다. 부모님의 웃음 속엔 언제나 금.의.환.향. 이란 네 글자가 숨겨져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저 고향에 돌아온 것만으로는 금의환향이란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없다. 적어도 아들의 입장에선 그렇다. 출세를 해야 한다. 거창한 출세가 아니어도 된다. 서류 1차 합격 문자 정도면 참 좋겠다. 하지만 지난 2년간 K의 손엔 마트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식용유 선물세트만 들려 있을 뿐이었다.
결제를 취소했을 경우를 상상해 본다. 부모님께 보여야 하는 건 지금의 내가 아니다. 유예 중인 졸업을 마치고 취업도 제대로 해낸 모습이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준비 가능한, 생명력이 넘치는 내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의 난 그럴 수가 없다. 삼각 김밥의 포장지조차 제대로 뜯지 못해서 책상 위에 김 가루를 어질러 놓은, 그저 안타까운 인간일 뿐이다. K는 문득 창밖을 쳐다봤다. 창문을 열 수도 없다. 먼지가 한참 쌓인 창틀 너머에선 오줌 지린내가 났기 때문이다. 반 지하 방이 있는 줄도 모르고 오줌을 갈기는 취객들. 그 무뢰배들보다 K를 더 짜증나게 하는 건 TV 속의 중산층들이었다. 대체 중산층의 기준이 뭐길래 저렇게 집도 갖고 차도 갖고 여행이라는 여유도 갖고 사는 걸까. 여행만 해도 그렇다. 뉴스 속엔 출국 인파로 빽빽한 인천공항의 모습이 나온다. 저곳은 내가 살고 있는 같은 대한민국의 풍경이 맞는 것일까. K는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금의환향이란 단어도 그렇고 황금연휴도 그렇고 좋은 것엔 다 황금이 붙는다. K는 문득 어금니를 툭툭 건드려 본다. K에게 있는 황금이란 썩은 어금니 위의 그것뿐이었으므로. 아무튼 K는 황금연휴는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얘기라고 결론을 지었다. K에겐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K는 변화를 꿈꾼다. 하지만 변화 역시 가진 자에게만 주어지는 여유일 뿐이라는 걸 매번 깨닫는다. 변화는 선택으로 인해 생성되고, 그 선택은 자신의 몫이라는 명언이 많단 걸 K도 안다. 하지만 K의 신분은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없다. 타의에 의한 선택이 아닌, 자신에 의한 선택을 해 본적이 언제였더라. K는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취소 버튼을 누르기로 한다. 당연히 승인 버튼을 눌러야할 시기에 취소 버튼을 누르는 반항이야말로 K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K는 일단 부모님껜 티켓의 취소 사실을 비밀로 해두기로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부모님께 전화가 온다. 몇 시차로 예약했느냐는 부모님의 물음. 알아서 예약할 거라며 괜히 짜증을 내는 K의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오며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나는 K의 취소를 취소하고 싶다. K의 포기를 포기하지 않게 하고 싶다. 더 노력해보면 되지 않겠냐고 잔소리하고 싶다. 하지만 잔소리 후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기에 어설픈 잔소리나 응원은 해줄 수도 없다. 그저 포기를 등에 짊어지는 대신 희망을 가슴에 안고 살았으면 좋겠다. 혼자가 아닌 둘이었으면 좋겠다.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믿었으면 좋겠다.
K가 좁은 방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반 지하 집의 대문이 아닌, 회사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슬리퍼가 아닌 구두를 신은 K를 보고 싶다. K가 고향에 내려가 힘차게 부모님과 포옹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김정훈 님은
저서 『요즘남자 요즘연애』(소담 출판사)의 저자로, 불만보단 불안을 즐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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