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 주머니 안에 잡채를 가득 채웠어요, 한국행 비행기 안, 어떤 마음이 가득했나요? 읽기 :
모두보기닫기
유부 주머니 안에 잡채를 가득 채웠어요, 한국행 비행기 안, 어떤 마음이 가득했나요?
등록일 : 2017-09-29 조회 : 75

9-5-1

 

인도네시아 청년 안드리안을 위한 명절 밥상

“유부 주머니 안에 잡채를 가득 채웠어요, 한국행 비행기 안, 어떤 마음이 가득했나요?”

    

 

 

인권을 지키는 것은 어떤 거창한 일이 아니라 소박하더라도 정성껏 차린 한 끼 밥상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땅에서 나는 흔한 제철 음식으로 푸근한 밥상을 차려, 혼자 대충 때우기 쉬운 분과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가 함께 나누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주재료 _ 유부, 당면, 양파, 당근, 버섯, 미나리

부재료 _ 식용유, 간장, 설탕, 참기름

 

 

    

9-5-2

 

rec 가을 저녁을 추석(秋夕)이라고 하나? 보름달이 뜨면 마을 뒷산에 올라 달을 보고 두 손 모아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엄마 생각이 난다. 달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준다고 믿던 어린 날들이 오히려 그립다.

 

가을날 한낮의 공원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일을 하러 우리나라에 와 있는 청년 안드리안을 만났다. 추석 명절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서였다. 지금껏 보아왔던 어떤 청년보다도 반듯하고 밝았던 데다 우리말을 무척 잘하는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한국에 온 지는 네 해째, 경기도 포천의 한 섬유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고, 올해부터 사이버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단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그를 더 돋보이게 했다. 일터에 인도네시아 직원이 총 네 명이나 있다고 해서 다행스럽다 했더니 형들이 사투리가 심해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다며 수줍게 웃었다. 쉬는 날이면 시내로 놀러나가는 게 즐겁고 여름휴가 때는 친구와 필리핀과 태국으로 여행도 다녀왔단다. 표현이야 그렇지만 열 식구가 복닥거리며 지내던 고향을 떠나 먼 나라에 와서 낯설고 그립고 그 외로움이 오죽할까?

    

9-5-3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만 빼고는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기에 명절에 가장 인기가 있는 소고기 갈비찜을 만들어 보았다. 7남매의 맏며느리라서 명절에 모이는 식구가 서른 명이 넘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도 있거니와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좋아해 언제나 불고기를 장만하거나 돼지 갈비찜을 해먹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드리안을 위해 큰 맘 먹고 소갈비찜을 하기로 했는데 먹어만 보았지 만들기는 처음이라 약간 긴장이 되었다. 불고기 양념에 단맛을 조금 더하고 고기의 깊은 곳까지 간이 배도록 하려니 간장의 양도 낫게 했다.

 

소갈비를 한번 삶아 내고 물을 따라 버리고 새로 물을 넣어 압력 밥솥에 넣고 구수한 냄새가 날 때까지 삶았다. 넓은 냄비에 사과와 배와 양파와 대파를 넣고 끓여 놓은 맛간장에 양파에 설탕을 넣어 발효시켜 두었던 양파 효소와 생강 효소와 다진 마늘 잘게 썬 파를 넣고 익힌 고기를 넣어 서서히 조렸다.

    

9-5-4

 

찜 요리를 잘 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5분간 조리하고 50분간 즐겁게 먹으면 5시간이 행복하다’라는 ‘쓰리5’가 나의 음식 주제이니 갈비찜은 해당 사항에서 멀 수밖에 없다. 그 어려운 것을 내가 해낸 것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자주 듣던 말이기도 하다. 양파와 당근을 같은 크기로 썰어서 넣고 미리 까서 쪄 두었던 밤과 대추를 넣고 간이 배도록 천천히 졸이면 끝이다. 한 토막 간보기로 맛을 본 남편이 지금껏 내가 만든 음식 중에 가장 맛이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들이 잔치나 명절에 빠뜨리지 않는 잡채를 대접하고 싶었지만 야외에서 먹기에는 쉬이 변질될 수 있는 음식이어서 잡채를 만들어 유부 주머니에 넣어서 미나리로 예쁘게 묶었다.

    

9-5-5

 

양파와 당근 버섯을 넣고 간을 맞추어 볶고 마지막에 참기름을 넣어 간을 한 뒤에 식혀서 유부의 한쪽 면을 잘라서 만들어 놓은 주머니에 넣는데 시간은 좀 걸린다. 여러 개 만들어서 냉동 보관했다가 먹을 수도 있어서 명절에 선물하기도 좋다. 돼지고기를 빼고 조리를 하니 맛은 덜 했지만 밖에서 먹기에는 훌륭한 음식이다. 집에서는 전골에 넣어 끓여 먹을 수도 있는 꽤 괜찮은 음식이다.

 

외국에 와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대접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사랑과 정성을 다하여 대접하고 싶었다. 나나 내 가족들을 위해 하는 것보다 더 행복한 마음은 무엇일까. 잦은 비가 내렸던 여름을 지나면서도 잘 익은 감과 사과의 빛깔이 정말 고왔다. 올 들어 처음 산 햇과일이다. 가을은 언제나 풍성하고 아름답다. 추석에 감사의 제사를 지냈던 조상들의 심정을 충분히 알 것 같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음식은 ‘나시고렝’으로 채소, 고기, 토마토소스, 고추소스 등을 넣은 볶음밥이다. 평소 나시고렝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안드리안은 내가 준비해간 고슬고슬한 쌀밥을 정말 잘 먹어주었다.

    

9-5-6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여섯 살의 청년은 네 해 동안 고향에 가지 못했다. 먼저 한국에 와서 일하던 친구가 ‘내가 온 길을 따라오면 될 거다’라고 해서 왔단다. 그런데 오니 한국이 정말 좋았더란다. 좋은 게 무엇이냐 물으니 솜씨 좋은 한국말로 열심히 설명하는 것이 그리 예쁠 수 없다.

 

사계절이 아닌 곳에서 살았던 더운 나라의 젊은이가 느끼는 우리나라의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은 어떠할까? 특히 겨울의 추위를 어떻게 지냈고 앞으로 또 지낼는지 또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젊음’과 ‘희망’이라는 두 단어가 있으니 조금 안심은 되지만 대부분 더운 나라에서 살다가 일하러 온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대우와 따뜻한 배려가 있었으면 하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가 그들의 소원대로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모두에게 건강의 기원을 더 간절히 바라본다. end

 

 

 

권오분 님은

수필가로 활동 중이며 한국자생식물보존회, 숲과 문화 연구회, 한국식물연구회 회원입니다.

첨부파일

모두보기닫기
위로

확인

예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