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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낸 삶에 대한 존경이 아닐까요?
등록일 : 2017-12-01 조회 : 88

11-02-02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낸 삶에 대한 존경이 아닐까요?

    

무엇도 준비하지 못한 채 겨울을 맞아야 할 노인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은 나의 부모, 너의 부모, 우리의 부모이기도 하며,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나와 너의 모습이 아니라고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01 지난 이맘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온 산에 불이 난 듯 단풍이 낭자하고 깨질 듯 파란하늘이 서럽도록 시리던 그날, 시립 요양원 무연고자 장례식장에서 한 쓸쓸한 죽음과 마주했다. 오래된 흑백 사진을 확대한 듯 잉크가 번진 영정 사진이 텅 빈 빈소를 덩그러니 지키고 있었다. 숱이 없는 머리를 단단히 잡아 묶어 찐 작은 쪽, 웃음기 없이 꼭 다문 입술,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서늘한 눈빛. 생전에 보던 김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할머니 앞에 앉으니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매일 기도하네. 고달픈 세상 빨리 떠나게 해달라고. 제발 덕분에 자는 잠에 가게 해달라고. 부모 복, 남편 복, 자식 복 없는 년이 무슨 복은 있을랑가마는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죽는 복이라도 주시지 않을랑가. 천한 인생이 수명만 길다고, 아흔 가까이 살았으면 되얏지 더 살아 뭐하려고. 전생에 죄를 지었어도 이만큼 모진 삶을 살았으면 이제는 갚을 때도 되얏지. 나는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네. 나비든 새든 날아다니는 것으로 태어나 바람처럼 구름처럼 내 맘대로 폴폴 댕기믄 얼마나 좋을까.”

 

11-02-01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김 할머니는 종군위안부를 피하기 위해 막 초경이 시작된 열세 살 어린나이에 열두 살이나 많은 남편과 결혼을 했다. 남편은 이미 상처해 전처의 자식이 셋이나 있었지만 친정 부모님은 후처가 되는 것이 일본군 위안부가 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 보쌈하듯 딸을 보낸 것이다.

 

시집 간 그날부터 할머니의 고된 인생이 시작되었다. 한량 같은 남편은 어린 각시를 본 체도 하지 않고 기생집과 투전판을 전전하다 가산을 탕진했고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처럼 품에서 놓지 않고 키운 전처의 세 아이들은 새어머니를 부끄럽게 여겼다.

 

“아이들 월사금 낼 때가 되면 마음이 얼매나 복닥거렸는가 몰라. 산에서 나무도 해다 팔고, 바닷가에서 생선을 사다 몇 리 길을 걸어 다른 마을에다 팔기도 하고, 밥집을 안 해봤나 노동일을 안 해봤나. 돈 되는 일이라면 다 해서 애들을 가르쳤는데. 어느 날부터 나를 모른다 하니 부끄럽고 창피하고…… 그냥 이년의 팔자가 이 모양이려니 하고 사는 거지.”

 

내가 처음 할머니를 만났던 2009년 할머니의 수입은 월 8만 원의 노령연금이 전부였다. 폐지며 빈병이며 고물들을 주워서 반찬값을 벌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건강이 허락지 않아 그만 둔 터였다.

 

워낙 할머니의 사정이 딱하다보니 이웃들이 여기저기 할머니의 사정을 전해 반찬봉사도 받고 빨래봉사도 받고 더러더러 도배도 해주고 쌀과 김치도 가져다주지만 반 지하 단칸 월세 방의 방세는 밀리기 다반사고 더운 여름날엔 선풍기 대신 부채로, 추운 겨울에는 보일러 대신 전기장판으로 지내야만 하는 날들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이 집도 재개발이 되어 얼마 있으면 비워줘야 하는데 이 집 비우고 나가면 나는 갈 데가 없어. 얼마 전에도 집 비우라고 사람이 왔는데 미안하지만 나 죽기 전에는 못나간다고 했네. 요즘 자꾸만 돌아가신 엄니가 생각나네. 명주치마저고리 곱게 차려입고 달각달각 물레질하던 우리 엄니. 위안부 피해 도둑처럼 몰래 시집가는 날도 당신이 지으신 고운 명주천을 넣어주시며 내 손을 붙잡고 얼마나 우시던지……. 요즘 엄니가 자꾸 꿈에 보여. 먼저 간 내 딸. 나면서부터 애기가 약해서 늘 내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울 엄니가 내 딸 손을 꼭 잡고 있더라니까.”

 

2009년 이후 한동안 할머니의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몇 년 전 할머니가 시립요양원에 들어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당시 만해도 할머니의 소원은 시립요양원에 들어가시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신을 돌볼 자식도 가족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시립요양원에 입소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제도상 불가능했다. 할머니의 호적에 버젓이 경제활동을 하는 아들이 셋이나 등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들들은 수급자 신청을 도와주려는 주민센터 직원을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자식이 있지만 부양을 거부하는 경우 국가에서 우선 생계비 지원을 하고 사후 자식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방해하는 것 같단다.

 

11-02-02

 

안타까운 일이지만 김 할머니와 유사한 상황에 놓인 노인들이 적지 않다. 자식이 없어서 독거노인이 아니라 자식으로부터 부양을 받을 상황 혹은 여건이 아니기에 홀로 늙어갈 수밖에 없는 독거노인들이다. 일촌 이내의 직계혈족 즉 자식이 부양의무자가 되는 현행 복지제도 안에서는 자식의 형편에 따라 이와 같은 복지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노인복지 분야에 폭 넓은 보편적 복지가 도입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9년 8만 원이었던 기초노령연금이 20만 원으로 인상되긴 했지만 그간의 물가 인상률이나 전월세 인상률에 비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다. 이런 노인들에게 공공요금(전기·수도·가스)은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고령으로 인한 질병에 병원비와 약값까지 더해진다면 노인들의 삶은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은 때때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빈곤과 질병 그리고 무관심과 소외로 인해 더 이상 살아가야 할 희망을 잃어버리는 때문이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되어 몇 년간 수급을 받았고 얼마 후 시립요양원에 입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늦었지만 할머니의 바람대로 국가로부터 생활비 지원도 받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돌봄도 받았으니 편히 눈을 감으셨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멍하니 할머니의 영정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문득 할머니의 또 다른 바람이 생각났다.

 

“열세 살에 시집을 갔지만 어릴 적 친정엄마에게 배운 솜씨로 나도 명주 깨나 짜서 팔았었지. 그렇게 좋은 명주를 팔기는 했지만 한 번도 입어보진 못했네. 엄니가 시집갈 때 넣어 보낸 명주도 다 팔아 쓰고 딸이랑 남편 집에서 나와 지내다 어느 해 돈이 좀 생겨서 큰 맘 먹고 친정동네 가서 명주로 수의를 하나 했네. 저승 갈 때 입고 갈 명주옷을 장만하는데 그때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더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내 앞에 당신의 수의를 꺼내 놓으며 자랑을 하셨다. 한복 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곱고 윤기 나는 옷감은 처음이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앞에 둔 신부처럼 행복해하며 그것을 자랑하는 할머니는 수의 속에서 작은 봉투하나를 꺼내 보여주셨다. 77년 전 결혼 할 때 받은 혼서지였다.

 

“시집갈 때 받은 혼서지를 죽을 때 같이 가져가면 죽어서도 그 남편을 다시 만난다네. 이생에서 못다 한 연이니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 잘 살아봐야지.”

 

마치 결혼 날을 받아 놓은 신부처럼 뺨을 붉게 물들이며 수의 이야기를 하던 할머니. 할머니의 바람은 다행히 뜻대로 이루어졌다.

 

다시 가을. 김장을 하고 땔감을 들이며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지만 그 무엇도 준비하지 못한 채 겨울을 맞아야 할 노인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은 내일 아침 눈 뜨는 것이 두려운 나의 부모, 너의 부모, 우리의 부모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나와 너의 모습이 아니라고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김 할머니를 비롯한 모든 노인들은 방문한 나에게 늘 “나 같은 늙은이를 찾아와 줘서 고마워”라고 인사했다.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인사가 아닐 수 없다.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물질적·경제적 도움뿐 아니라 체온이 느껴지는 사랑이고 인간에 대한 관심이며 노인에 대한 존중이고 그들이 살아낸 삶에 대한 존경이다. 노인들이 건네는 인사 한마디에 담겨있는 그 모든 것을 잊지 않을 때 진정한 의미의 인권이 살아나며 복지가 실천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02

 

 

 

김혜원 님은

2006년 『타임』 ‘올해의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등의 저서를 펴냈습니다. 현재 사단법인 <올프렌즈센터> 다문화 팀장, 시민기자 교육 강사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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