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레이 온』
그리고 삶은 지속된다
영화 『플레이 온』을 보고 나면 우린 가장 먼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한 여름에 우리 집을 찾은 인터넷 설치 기사에게 뜨거운 커피를 내어주는 배려는 절대 금물이라는 것. 몇 명의 인터넷 설치 기사들이 모여 앉아 있다. 업무 중 가장 곤란할 때는 언제인가, 라는 것이 화제가 된다. 그때 바로 집집마다 내어 주는 그 한 여름의 뜨거운 커피가 거론된다. 누군가는 한약을 먹고 있어서 못 먹겠다고 정중히 거절한다. 누군가는 그 정중한 거절조차 미안한 나머지 잘 먹겠다며 일단 받아 든 뒤에 업무를 마치고 그 집을 나오며 몰래 버린다. 그러자 누군가 웃으며 힘주어 말한다.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장염 걸려서 못 먹는다고 하는 게 최고다!
『플레이 온』은 SK broadband 비정규직 노동조합 금천광명지회 조합원 5인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이들은 2주에 한 번씩 모여 지역공동체 라디오 ‘구로 FM'에서 『노동자가 달라졌어요』 팟캐스트 라디오 녹음을 한다. 한 여름의 뜨거운 커피에 관한 애환도 그들이 이 자리에서 들려주는 삶의 일화 중 하나다. 김용호 아파트 기사, 남훈 주택 기사, 전봉근 주택 기사, 김준홍 아파트 기사, 이진환 주택 기사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들이 들려주는 삶의 애환이 그저 한 여름의 저 커피처럼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회사는 소비자의 평가를 업무 평가에 반영하는데 그 기준에는 복장과 위생 상태에 대한 부분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꼬랑내”가 난다는 고객의 불만이 접수되어 점수가 깎인 적도 있다며 웃는다. 그들이라고 깨끗한 몸과 복장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차례 전신주와 담벼락을 오르내리는 그들의 몸에서 꽃향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일 것이다.
영화는 점점 더 핵심에 닿아간다. 발 냄새에 대한 지적 정도가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가장 힘든 건 비상식적 시스템이다. 예컨대 인터넷 설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부자재가 쓰이는데 회사는 설치 기사 개인에게 그 부자재 비용을 감당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어느 소비자가 선을 좀 넉넉하게 써서 인터넷을 연결해 달라는 말이라도 하게 되면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할 입장인지라,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게 된다”고 그들은 털어 놓는다. 낙상이나 감전 등의 사고를 당해도 회사에서 산재처리를 미룬다. 혹은 다친 사람 본인이 자신의 점수에 불이익이 올까봐 산재처리 신청 자체를 미루는 경우도 있다. “SK처럼 좋은 대기업 다녀서 좋겠다”고 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말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은 대기업의 정직원도 아니고, 그 하청업체의 정직원도 아니며, 그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이다.

때문에 2014년 3월에 SK broadband 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되고 금천광명지회 지부도 7월에 노조에 가입한다. 『플레이 온』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초기 노조 결성과 이행에 관련된 각종 사안들을 영화에 담아낸다. 파업 중 일어나는 고행이 영화 속에 담기지 않을 리 없다. 한 겨울에 노조원들은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파업을 이어간다. 생계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하지만 회사는 협상의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누군가는 고층 건물에 올라가 목숨을 걸고 고공 농성을 벌인다. 금천광명지회 5인도 이 파업의 행렬에 동참해 있고 그들도 겨울 길거리 어딘가에서 얼어붙은 잠을 청한다.
이즈음부터 『플레이 온』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등장한다. 장기화된 파업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자 SK broadband 비정규직 노조지부 대부분은 일단 회사로 복귀하여 파업을 이어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금천광명지회의 조합원들도 회사로 복귀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서로 논의한다. 실은 약간의 설전이 오간다. 김용호 씨는 복귀를 주장하고 이진환 씨는 반대한다. 영화는 그들의 설전의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대신 자막이 결과를 알린다. “금천광명지회는 비조합원들과의 관계가 걱정된다는 소수 조합원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파업이 끝날 때까지 회사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삶은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금천광명지회 조합원들은 각자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다.

잠시 후 관객인 우리는 난데없이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을 보게 된다. 노동조합원 5인의 삶을 기록하던 영화가 이건 왜 찍고 있는 것인가 싶지만, 가만히 보면 저기 큰 창을 들고 전통 의복을 입고 덕수궁 문 옆에 서 있는 병사가 바로 남훈 씨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 관광객은 그의 옆에 다가와 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그러니까 여기는 금천광명지회 조합원, 남훈, 전봉근, 김준홍 씨의 아르바이트 현장이다. 대오를 맞춰 행진해 가던 전봉근 씨가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고 부끄러운 미소를 살짝 지어 보인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생계를 이어 나가는 그들의 또 하루를 담을 뿐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질문이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 전봉근 씨는 왜 자신의 일터에 있지 못하고 지금 여기 있는가, 그는 왜 여기서 저 어색함과 부끄러움을 견뎌야만 하는가. 『플레이 온』을 본 관객 누군가는 이제 덕수궁 앞 병사의 어색한 표정과 미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파업 시작 8개월 후. 절반의 성공이 찾아온다. SK broadband 비정규직 노조가 “1차 하청업체의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원청인 SK의 정규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자막이 설명한다. 금천광명지회 5인의 표정은 그래도 밝다. 성과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간이라도 해냈다는 자긍심이 그들의 얼굴에서 보인다. 파업의 결과로, 노동 시간 단축, 자재 지급, 4대 보험 가입, 기본급을 마침내 보장받는다. 하지만 핵심은 김용호 씨의 발언에 있다. 당신들이 말하는 희망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용호 씨가 말한다. “우리는 적어도 자기주장을 한 번 해봤다. 우리가 아직까지 힘은 없지만 그래도 자존감을 지켜냈다. 우리를 괴롭히려고 하더라도 옛날처럼 마구잡이로 괴롭히거나 잘라 낼 수 없다. 무시 못할 존재가 된 건 사실이다. 앞으로의 숙제를 얻은 것이기도 하다.”
김용호 씨의 답변이 금전적 성과가 아니라 자존적 성과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은연 중 강조한다. 하청업체의 정직원이 되었지만 회사가 내 건 또 다른 시스템의 악조건으로 금전적 상황은 더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누군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이곳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전봉근씨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이직한다. 초창기 금천광명지회를 이끌었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 겨울의 파업 속에서 얼음장 같은 바닥에 앉아 김용호 씨는 전봉근 씨를 가리키며 농담하지 않았던가. “쟤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됐다”고. 하지만 조합원들 중 누구도 자신들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 전봉근 씨를 비난하진 않는다. 그들은 그의 선택에 따랐을 곤경과 상처를 이해한다. 전봉근 씨가 떠나간 이후 그 어느 날의 팟캐스트 녹음실에는 단지 세 사람만이 앉아 방송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이들의 방송을 들으며 운전하던 전봉근 씨는 카메라에 들키지 않으려는 듯 눈가에 맺힌 눈물을 얼른 훔쳐낸다. 덕수궁 앞 그의 어색한 미소의 장면과 이 눈물의 장면은 교차하며 만감을 일으킨다.

하지만 누군가 떠났어도 누군가는 여기 남아 새로운 삶을 꿈꾼다. 이 점이 영화 『플레이 온』의 좋은 점 중 하나다. 영화는 옳고 그름을 단정 짓거나 규정하려는 대신 인물들의 선택과 삶의 굴곡을 따라 가며 슬픔도 힘겨움도 행복도 때마다 인정하며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니 전봉근 씨는 떠났지만 이진환 씨는 이곳에 남아 결혼한다. 예비 신부가 예비 신랑 이진환 씨에게 물었다. 왜 월급이 전보다 반 토막이 났는데도 이 일을 멈추지 않는가. 반려자가 될 그의 답은, 사람답게 살아 보기 위해서, 다. 앞서 김용호 씨가 말한 자존감과 이진환 씨가 말한 사람답게는, 실상 인권이라는 같은 말일 것이다.
전봉근 씨가 옳은지 이진환 씨가 옳은지 혹은 그 누가 옳은지 우린 쉽게 말할 수 없다. 영화도 그렇게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근 1년 만에 금천광명지회 조합원 5인은 이진환 씨의 결혼식을 계기로, 물론 전봉근 씨도 함께 앉아서, 술자리를 갖고, 팟 캐스트 방송도 함께하게 된다. 이때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에 관한 남훈 씨의 소박한 언급이 인상적이다. 자기처럼 떠밀려서 조합원을 하게 된 사람이 가장 오래 남아 있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그는 말한다.

영화의 제목 ‘플레이 온’은 중의적이다. 물론 가장 먼저는 지금 저들의 팟 캐스트 라디오 방송이 지금 진행중이라는 뜻이다. 그 방송 장면은 때마다 나와 저들의 이야기를 진전시키고 이 영화의 분위기를 따뜻하고 소박한 쪽으로 이끈다. 하지만 다른 뜻도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저들의 삶도 지금 ‘플레이 온’이다. 어디서 누구로서 어떻게 플레이 온 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확정할 순 없다. 다만 영화는 세심하게 저들 각자의 삶의 지속을 귀하게 표현하려 애쓴다. 그리고 삶은 지속된다. 그것이 『플레이 온』에 담긴 이 영화의 소중한 면이다. 
정한석 님은
저서로 『성질과 상태』를 펴냈으며,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입니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