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1월 세 번째 월요일은 공휴일이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을 추모하기 위한 날로 그의 생일인 1월 15일에도 특별 추모 행사가 열린다. 한 사람을 위한 추모의 공휴일. 그의 어떤 면이 이런 날을 만들었을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피부색이 만든 차별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지만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60년대에도 차별은 극심했다. 흑인은 백인과 같은 시설을 사용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물조차 흑인이 마시는 물을 따로 표시해두었고 ‘흑인과 개는 사절’ 같은 문구를 단 상점을 보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대중교통인 버스에서도 앞 네 줄은 백인만이 앉을 수 있었다. 1955년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이 앞자리에 앉아있다가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며 본격적인 흑인 인권 운동이 시작되었다. 문제가 된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흑인들은 집단 파업과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구성된 연합체의 의장이 마틴 루서 킹 목사다.
많은 박해가 있었지만 결국 1956년 미국 대법원은 버스의 인종 차별이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그간 마틴 루서 킹은 자택이 폭파되는 등 살해 위협을 견뎌냈고 결국 흑인 인권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그가 인권 운동의 방법으로 선택한 길은 비폭력주의였다. KKK단 같은 직접적인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같이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힘을사용하고자 했다. 동시대를 산 맬컴X는 자기방어를 위한 폭력은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방법이 효과적인지는 오늘날까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유효한 꿈
이 한 구절이 반백 년이 넘은 지금 이렇게 가슴에 사무칠 일인가.
화면해설.
이 글에는 마틴 루서 킹의 조각상과 사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