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컴퓨터, 각종 콘솔 및 전자기기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다. 그에 걸맞게 이를 이용하여 즐기는 ‘게임’이라는 매체는 우리 삶 속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즐길 거리가 되었다.
남자친구가 도와주는 거지?
“애는 어쩌고 여기 있어요?” 늦은 저녁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출근하면 종종 듣는 질문이다. 너무 많이 들어 익숙한 물음이지만 여전히 썩 기분 좋게 넘겨지진 않는다. 일을 하고 있는 내게 마치 “당신, 왜 애 안 보고 여기 왜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아서다. 꼭 내가 못 낄 데를 낀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과연 남기자들에게도 이런 질문을 할까. 남편도 야근이나 회식을 할 때마다 이런 궁금증을 해소해줘야 할까.
육아휴직부터 직장맘까지
출산과 육아는 삶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동시에 많은 것을 차단했다. 운 좋게 육아휴직 1년을 모두 사용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사회생활이 완전히 멈췄다. 대단한 걸 쌓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조차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아이와 단둘이 섬에 고립된 것처럼, 회사 동료나 취재원, 친구는 물론 누군가와 일상의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다. 30년을 그저 나만을 위해 살아온 내게 갓난아기는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아이를 낳은 이후의 삶은 어떻게 다져가야 하는 지 등의 진지한 가르침을 주는 이도 없었다. 한순간에 엄마가 됐고, 모성으로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떠밀림과 함께 아이와 남겨졌다. 아이의 존재가 남편에게도 꽤 많은 변화와 무게를 얹어주었겠지만, 적어도 남편은 자신이 쌓아올린 것들을 무너뜨리지는 않는 듯 보였다. 그의 일상은 크게 다름없이 이어졌다.
줄타기의 연속인 날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허울 좋은 목표를 두고 잘 하겠다는 욕심을 버린 지 이미 오래다. 남에게 폐나 끼치지 않고 내게 주어진 몫을 기본만이라도 하며 버티고 싶은데 어쩐지 늘 힘이 달린다. 아이를 봐주는 어린이집과 돌보미 이모님, 그리고 회사의 선후배들에게 수시로 미안함을 표시해야 한다. 어린이집 단체 사진에서 우리 아이만 원복을 입지 않았거나 깜빡하고 어제 먹은 식판을 닦지 않고 그대로 보내는 것은 하는이제는 애교 수준이다. 주중에 부족했던 시간을 채워주기 위해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 바람이라도 한 번 쐬고 들어오면 자정을 넘겨서까지 밀려 있던 집안일을 한다. 월요일 출근길부터 눈꺼풀이 처진다.
허백윤 님은 서울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직접 겪은 육아휴직 중의 이야기를 모은 책 <독박육아>의 저자입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거대한 노리개 젖꼭지를 힘겹게 끌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를 쓰는 엄마 앞으로 아빠들은 아무 것도 매달지 않고 혼자 홀가분하게 힘껏 앞으로 달려나가는 그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