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인권사무소가 지난 7월 12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2007년에 5명으로 시작한 대구인권사무소는 이제 2배가 훌쩍 넘는 직원으로 채워졌다. 사람도 불어났으니 올해 5월에는 공간을 더 넓혀 이사도 했다. 문을 열고 나가면 햇볕이 내리쬐는 테라스에서 방울토마토 한 그루 정도는 키울 수 있는 근무 환경이 갖춰졌다.

인권의 역사 길을 만든 대구
누군가는 “대구가 인권 업무를 하기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심하게는 인권의 불모지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지역의 색채가 보수적인 것과 인권적이지 않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사실 대구는 한국 전쟁을 전후해서 ‘한국의 모스크바’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진보적인 도시였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민주운동의 발상지로, 그만큼 야성이 강한 도시라 독재자가 두려워했다. 서슬 퍼런 군부정권 아래에서 삼성 최초의 노조, 제일모직의 여성노동자 조합이 가장 먼저 태동했던 곳이자 전교조의 시초가 된 경북교원노조가 1960년대에 최초로 결성된 도시이기도 하다. 전태일의 고향이었고, 이상화가 빼앗긴 들에서 봄을 부르짖으며 농민·노동 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었다. 저항의 도시였던 대구는 어느 순간 ‘보수’라는 이름의 옷을 입게 됐다.

☞ 시민인권아카데미
슬픈 역사 속에서 보수의 도시로 이름을 얻긴 했으나, 시민들 내면에 잠재된 열정은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5월경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8주간의 ‘시민인권아카데미’를 개최했다. 9살 어린이부터 팔순을 곧 바라본다는 어르신까지 다양한 이들이 인권을 만나러 왔다.

☞ 지방의회 의원 대상 인권 교육
필요성을 인식하면 누구보다 적극적인 곳이기도 하다. 올 초 경북 국외연수에서 발생한 예천군 의원의 폭력 사건과 인권 의식 부재로 인한 발언 등은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요구했다. 대구인권사무소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겠다는 마음으로 바로 각 대구경북 광역, 기초 의회 33곳에 인권감수성 교육 개설을 안내하고 신청을 받았다. 현재까지 경북은 3곳, 대구는 8개구 모두 인권감수성 교육을 이수했다.

☞ 뉴미디어 홍보 운영
대구인권사무소는 홍보 수단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라디오 광고 등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대구 KBS 제1라디오에서 매주 5분간 활용할 수 있는 코너를 내줬다. 위원회 주요 결정례와 지역에서 발생하는 현안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박민경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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