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이맘때쯤, 추석 극장가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흥행 대박을 터뜨린 영화가 있다. 바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 <인턴>이다. 추석 시즌을 겨냥했던 쟁쟁한 영화들이 봄날의 벚꽃처럼 활짝 피고 반짝 지는 동안, <인턴>은 한결같은 순위를 유지하면서 전국에 360만 명의 관객과 만났다. 이 영화가 관객들을 사로잡은 비결이 궁금하다.

익숙한 설정을 반전시키다
영화 <인턴>의 주연은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두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앤 해서웨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인턴의 모습에 부합하려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앤 해서웨이가 인턴 역할을 맡아야겠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턴은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극중 70세 노인 ‘벤’이다. 앤 해서웨이는 직원 220명 규모의 온라인 의류 쇼핑몰의 CEO ‘줄스’ 역을 맡았다. <인턴>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느끼는 설정을 간단히 뒤집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동력으로 삼는다. 로버트 드 니로의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대부 2>, <성난 황소> 등 엄청난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장악했던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어느 날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미소를 건네는 젠틀맨으로 나타났다. 관객들은 그가 보여주는 베테랑 배우의 품격을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인생 이모작을 넘어 이제는 삼모작을 장려하는 백세 시대, 직장에서 은퇴하고 노년을 즐기던 벤은 줄스의 회사에 고령자 인턴으로 채용된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CEO 줄스를 돕는 것. 인터넷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회사에 들어오면서 USB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벤은 꿋꿋이 ‘배울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벤은 줄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눈 깜빡임까지 연습하는 노력파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잘하고 무엇보다 친화력이 좋다. 처음에는 내심 거부감을 나타내던 줄스도 벤을 믿고 신뢰하기 시작한다.
현실과 판타지가 만나는 접점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영화는 언제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젊은 여성 CEO, 집안일을 전담하는 남편 그리고 고령의 인턴은 그동안 보기 드물었을 뿐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극중 줄스의 일상에는 현실에서 여성 직장인이 겪을 수 있는 수많은 고충들이 담겨 있다. 엄마와 늘 옥신각신하고, 육아를 전담하는 남편에게 늘 미안해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은근한 무시와 차별에 욱하는 모습을 보인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인턴>에서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펼쳐 보인다.

우리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
영화에서 벤이 완벽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감독이 바라는 바람직한 어른의 모습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어른일까? 혹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세상이 빠르게 변화할수록 또 세대 간에 향유하는 문화의 차이가 극명할수록 이런 질문이 중요하다. 영화가 그려낸 벤의 성품은 곧 위의 질문에 대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만의 해답이다. 사람들이 벤에게 감화되는 것은 그가 주변 모두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진심으로 대한 덕분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상대방의 성별과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벤은 상대가 누구든 어떤 편견도 없이 소통할 줄 알고, 결코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줄스의 회사가 처음 등장하는 <인턴>의 오프닝 장면을 보면 감독은 최첨단을 걷는 사회의 단면을 잘라 전시하듯 연출한다. 세계 반대편의 사람들과도 SNS 친구를 맺어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할 만큼 긴밀히 연결돼 있다. 벤이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나이가 일흔이 넘었고 세상의 흐름에 둔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는 그가 인턴을 지원하고 난생처음으로 찍어보는 자기소개 영상을 찍을 때부터 시종일관 그의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려 깊은 태도를 보인다. 줄스나 다른 직장 동료들 그리고 새로운 사랑 ‘피오나’도 그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이상헌 님은 영화 칼럼니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