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지방선거 사전투표일. 청와대 인근에서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교복을 입고 투표소에 입장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선거권 연령 하향에 반대하는 정당과 여론에 응답하기 위해 기획된 퍼포먼스였다. 청소년과 함께 투표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냄과 동시에 청소년은 정치하면 안 된다는 오랜 사회적 금기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청소년, 유령에서 시민이 되고자 하는 자
‘투표소 교복 입장’ 퍼포먼스를 하며 우리가 투표소에 입장하는 동안 선거권 연령 하향 운동을 함께 해온 청소년들은 바깥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내가 당연한 듯 누리는 이 선거권이 ‘인권’이 아니라 ‘특권’이었다는 걸 절감한 순간이었다. 불편한 교복 하나 바꾸기 힘든 현실은 인구 5분의 1에 달하는 만 18세 이하 청소년이 시민의 자리에서 추방되어 있는 조건이 빚어낸 결과구나 싶었다.

주체가 되고자 하는 열망
역사적으로 참정권이 모든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보편적으로 보장된 적은 없었다. 근대시민혁명 이후 참정권은 일정 이상의 재산을 가진 이들이나 남성, 혹은 백인만이 전유하던 ‘특권’으로 출발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역사는 일부의 특권이었던 참정권을 누구나 갖는 ‘생래적 권리’로 전환시켜 온 역사였다. 신분, 재산, 성별, 인종, 장애와 같은 장벽들이 차례로 허물어졌다. 참정권의 내용도 확대됐다. ‘국회의원을 뽑을 동안만 잠시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자마자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돌아간다’는 장 자크 루소의 지적처럼, 대의제 민주주의가 갖는 한계를 넘기 위해 국민발안(발의)권, 국민소환권, 국민투표권과 같은 직접 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되고 정치표현의 자유나 정당 활동의 자유와 같은 일상적 참정권이 확대됐다. 그런데 한국에서 청소년은 참정권은커녕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할 권리조차 없다. 대다수 국가가 참정권과 관련하여 연령의 장벽을 부분적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처럼 모든 영역에서 청소년의 참정권을 전면 배제해온 경우는 보기 힘들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의 참정권 제도는 ‘연령 신분제’나 다름없다. 그래서 청소년에게 참정권은 동등한 시민의 위치를 얻겠다는 선언이다.

18세 선거권으로 충분하다?
18세 선거권으로 그동안 청소년 출입금지구역이었던 선거와 정치 참여의 길이 열림으로써 한국 민주주의는 중대한 진전을 일구었다. 그러나 이는 첫걸음에 불과하다. 18세 이하 청소년 중 극소수에게만 참정권이 보장되었을 뿐, 청소년의 참정권 전반은 여전히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이미 60~70년대에 18세 선거권을 도입했던 나라에서는 16세로 선거권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목소리를 ‘대표할 권리’인 피선거권 연령은 1948년 만25세로 정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선거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와 의사 교환도 가로막혀 있다. 18세 미만 청소년은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견조차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에서조차 학생 대표는 없다. 학교 안에서 학생은 여전히 ‘시민’이 아닌 셈이다.
‘청소년은 정치적 판단력이 부족하다’, ‘청소년에게 정치는 해롭다’, ‘정치보다는 공부가 우선이다’와 같은 인식도 여전히 널리 퍼져있다. ‘교육의 정치화’ 논란이 그 방증이다. 청소년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학칙도 여전하고 얼마 전 선거관리위원회는 모의선거교육까지 금지하는 후퇴 결정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들이 정치를 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들이 막아서 그런 것이고, 우리들이 정치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들이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것이고, 우리들이 고통 받는 이유는 우리들의 정치를 하지 못해서다.” 지난해 12월초, 선거권 연령하향을 촉구하는 국회 앞 행사에 참가한 한 중학생의 발언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를 잘 보여준다. ‘몇 살부터 가능하냐’고 묻기보다 ‘어떻게 하면 참정권을 더욱 확대하고 참정권 행사를 지원할 수 있는가’로 접근을 전환할 때, 특정 연령집단을 배제한 특권으로서의 참정권이 인권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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