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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가 불러 온 기후 위기<br/>왜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하나
등록일 : 2021-02-04 조회 : 116

기성세대가 불러 온 기후 위기

왜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하나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공감한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결성한 단체로서 1)지구온도 1.5도 상승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130명의 동료가 함께하고 있다. 만 13세~19세의 청소년 활동가의 비중이 90% 정도이며, 20대 활동가도 함께한다.

 

2020. 3. 13. 헌법소원 청구 후 헌법재판소 앞에선 청소년기후행동

2020. 3. 13. 헌법소원 청구 후 헌법재판소 앞에선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기후행동의 활동 내용

청소년기후행동은 2018년 8월 기후 위기를 인식한 청소년들의 작은 모임으로 시작했다. 2019년 3월 전 세계 청소년들의 기후 운동 연대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의 한국 지부로서 결석 시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기후 대응 활동을 시작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고, 기후 파국을 막기 위해 청소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기성세대와 정부에 실질적인 기후 대응을 요구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2019년 3월, 5월, 9월, 11월과 2020년 9월(온라인) 전 지구적인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한국에서 주도하여 정부, 서울시 교육청 등에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변화할 것을 요구해 왔다.

2020년 3월 13일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청소년 기후 헌법 소원을 아시아 최초로 청구했다. 5~8월에는 언론과 기후 위기로 이미 심각한 영향을 받는 지역 곳곳의 현장을 답사했다. 이를 통해 기후재난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다각도로 위협하는지를 대중에게 알리기도 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와 전국 17개 교육청에 기후 위기에 대한 실질적 행동을 요구했다. 환경부 장관, 교육부 장관, 교육감 등의 정책 입안자를 만나 기후 위기 대응을 요구하며 2020년 9월~12월에는 국회에 기후위기 대응, 기후 법안 마련 등을 이야기했다.

가까운 시일 내로 헌법 소원 캠페인을 이어 나갈 예정이며 탈석탄 캠페인도 진행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청소년 주체로서 우리의 권리를 위해 정부, 국회, 기업 등을 타깃으로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할 것이다.

 

청소년들이 물려받은 기후 위기라는 무거운 짐

청소년기후행동 윤현정

기후 위기는 정의와 인권, 평등의 문제이다. 기후 위기는 가장 약한 쪽부터 영향을 받는다. 가난한 사람들, 기후 위기의 피해를 직격탄으로 받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 청소년부터 기후 위기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기후 위기의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정부, 국회, 기업 등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쪽이 아니다. 피해를 받는 쪽과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쪽이 분리되어 있다.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기후 위기에 관심도 가지지 않고 그저 방관만 하는 사이에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들이 피해를 받을 때쯤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가 너무 늦은 때일 것이다.

나는 기후 위기에 심각성을 느껴 청소년기후행동과 함께 하고 있다. 나는 기후 위기로 나의 일상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안다. 나는 기후 위기로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하지 못할 것을 안다. 나는 기후 위기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나의 삶을 위해 기후행동을 하고 있다.

처음 기후행동을 시작했을 때 나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지 않는 정부, 국회, 기업을 향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기후행동을 지속하면서 나에게는 분노라는 맹렬한 감정조차 사라진 채 무미건조한 우울, 공포, 불안, 답답함, 쓰라림만 남았다. 내가 요즘 행복을 느낄 때는 청소년기후행동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같이 식사를 준비하고 같이 맛있는 걸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안정, 편안함을 느낀다. 사실 내가 원하는 건 엄청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아침 일찍 일어나 사무실에 오고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앞으로의 청소년기후행동에 대한 회의를 하고, 동료들과 같이 오늘 먹을 밥을 위해 장을 보고 밥을 하고 맛있게 먹는 이런 일상을 원한다. 하지만 기후 위기의 위험이 존재한다면 나는 이런 일상조차 누리지 못할 것이다.

나의 이러한 일상을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하루빨리 감축하여 지구 온도 1.5도 상승을 막아야 한다. 이전의 사회는 기후 위기에 대한 아무런 인식도 없이 온실가스를 펑펑 배출해 왔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기후 위기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현재 지구 온도가 1.2도 상승했고 우리가 1.5도 상승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고작 5년밖에 남지 않았다.

기존 세대들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살아도 자신의 일상이 위협당하는 걸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지난 여름 겪은 것 같은 장마, 산사태 혹은 폭염이나 홍수, 태풍 같은 자연재해를 계속해서 마주하고 있다.

작년 여름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생계를 잃어버렸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태풍으로 창문이 다 깨지고 신호등이 부서지고 정전이 발생했다. 학교에서는 정전으로 제대로 수업할 수 없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교실에서 컴퓨터도 쓰지 못하고 더운 여름이었지만 에어컨도 틀지 못한 채 수업해야 했다. 내가 겪은 일은 단순히 불편한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기후 위기가 심각해진다면 이러한 일들이 일상이 되고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서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헌법소원 청구 후 거리 행진 중인 청소년기후행동

헌법소원 청구 후 거리 행진 중인 청소년기후행동

 

이런 상황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청소년들은 이전 세대들보다 훨씬 적은 양의 온실가스만을 배출하며 살아가야 하고 기후 위기로 인한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데 사회적, 경제적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건 불평등하다. 청소년들은 선배 세대처럼 아무런 걱정 없이 온실가스를 마음껏 배출하며 생활을 지속해 나갈 수 없다. 게다가 청소년들은 기후 위기를 막지 않으면 자신의 일상이 무너지기 때문에 기후 위기에 대응하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부담감 속에서 청소년들은 ‘지금’ 기후행동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이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권한을 획득할 때에는 너무 늦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급진적으로 행동해도 기후 재난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를 상황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투표권도 없고 유권자도 아니지만(선거 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되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정치적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기후 위기 대응만을 바라보며 정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

기후 위기가 언제 덮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청소년들은 기후 재난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미래를 꿈꿀 권리를 외치며, 미래에 안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때의 미래는 엄청나게 먼 미래가 아니다. 흔히 생각하는 10년, 20년 후의 미래가 아니라 고작 5년 후의 미래이다. 지구 온도 1.5도를 상승시킬 탄소 예산이 5년 정도 남은 상황에서 우리는 미래를 그릴 수 없다. 5년 후에 나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절망을 느끼며 언제 나에게 기후 재난이 찾아올지, 언제 나의 일상이 멈출지 두려워하며 지낼 것이다.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하면 기아자가 3억 6000만 명이 된다. 2도가 상승하면 18억 명으로 늘어난다. 가까운 미래인 2030년 홍수로 피해를 입는 인구만 대한민국에서 332만 명이다. 극단적인 날씨가 반복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식량 위기를 겪고, 전염병들이 멈추지 않고, 끔찍한 폭염이 계속 이어지고, 집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로 사람들이 휩쓸리고 많은 난민이 생기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이런 일을 겪을 사람 중에 내가 없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지만 과학자들은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더 끔찍할 수도 있다. 기후 위기 속 미래가 끔찍하기에 나는 아주 가까운 5년 후의 미래도 그리지 못한다. 그 미래를 상상하기에 나는 너무 약해서 상상하기가 두렵고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기후행동을 하면서 나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편견, 시선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 애들이 뭘 아느냐, 전교조가 선동했냐 같은 말들을 들어야 했다. 청소년은 정치적 활동을 해서는 안 되었고 청소년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만 해야 했다. 청소년 기후행동의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열심히 수업 듣고 공부하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도맡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칭찬받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에 대해서는 의심조차 하지 않고 믿었다. 게다가 나는 모든 선생님들이 나를 믿고 좋게 봐 주시는 것에 자랑스러워 했다. 나는 어른들에게 ‘존중’받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기후행동을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에게 우호적이던 어른들이 나에게 한마디씩 하셨다. 내가 너무 급진적이고 청소년들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예전의 나로 돌아오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느꼈다. ‘어른들의 말을 늘 믿고 따르는’ 나를 좋아했던 거지, 그저 ‘나’를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진정으로 날 존중한 것이 아니었다. 날 진정으로 존중한 사람들은 나에게 ‘기특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우릴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늘 우리의 메시지와 활동을 봐 주지 않고 ‘청소년’이라는 나이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나는 청소년으로서가 아닌 그저 한 시민으로서 활동을 지속하고 싶었다. 나는 기후행동의 당사자로서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좋은 활동’을 하는 ‘착한 청소년’이었다. 비청소년이 허락한 범위를 넘어서는 사회적 행동을 하면 비난을 받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 나를 재단하고 판단했다.

지난해 10월에 나는 기후 위기에 대해 질의하시는 의원들의 참고인으로 산업부 국정감사와 기재부 국정감사에 출석하려 했다. 이미 의원실과 조율까지 했지만 두 차례나 거절당했다. 내가 청소년이기 때문이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국감에 출석해서 참고인으로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청소년을 배제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기후 위기로 인해 내가 느끼는 것들을 알리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여 마땅하고 당연한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나이 때문에, 내가 국회에 계시는 분들보다 살아온 날이 적기 때문에 출석할 수 없었다. 늘 미래 세대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청소년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들을 불편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박할 수 없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청소년은 여야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어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 주는 청소년만 환영받는 것이 아닌, 그냥 모든 청소년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청소년들은 기후 위기라는 무거운 짐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그 짐을 내려놓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 우리는 기후 위기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해서 행동할 것이다. 비청소년들이 우리에게 ‘기특하다’, ‘미안하다’며 눈물 흘려 주지 말고 함께 행동해 줬으면 좋겠다. 정부, 국회, 기업이 우리를 보며 미안해 할 시간에 지금 당장 기후 위기 대응을 시작한다면 더 이상 우리에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의 문제일 리가_청소년기후행동 김서경

우리는 두 가지 불합리를 꺼낼 수 있다. 하나는 예정된 파국에 대한 우리의 짐이고 또 하나는 그 파국에 대한 방관이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다.”라는 말이 얼마나 우리를 파국의 길로 이끌었는지 알까? 온실가스의 대표적 주범인 탄소 배출의 41%는 발전 부문이다. 산업이 20%, 도로 수송은 16%이고, 전력의 탄소 배출량 중 72%를 석탄이 차지한다. 이렇듯 엄밀히 말해 기후 위기는 모든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도 아니고 따라서 책임의 소재 또한 공평하게 1/n이 아니다. 명백하게 힘 있는 소수가 만들어 온 비겁함의 결과일 뿐이고, 그 책임을 회피하려 모두의 문제라는 말 따위를 붙이는 것뿐이다. 책임의 소재를 흐린 덕분에 사회는 지금까지도 변화하지 않을 유예를 얻었고, 보란 듯이 특정 세대의 문제로, 특정 계층의 문제로, 특정 국가의 문제로 떠넘길 수 있게 되었다.

기후 문제는 지금의 시스템을 계속 유지해 오며 자본주의를 영위하기 위해 만든 문제이다. 결국에는 자본주의가 원인이고 그걸 지탱하는 석탄 화력발전으로 인해 문제는 더 심각해진 것이다. 석탄 화력 산업은 온실가스를 막대하게 배출해 왔고 결국에는 석탄을 끄지 못하는 것조차 자본주의를 영위하기 위함인데 그걸 단순히 “모든 사람의 문제다.”, “기후 위기를 함께 해결하자.”는 식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말하지 않았다. 회피해 왔고 그러면서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처럼 포장해서 “아이들, 미래 세대를 위해서 행동하겠습니다.” 하면서 근본적인 체제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더 약하고 소외되어있고, 목소리를 낼 수 없고 힘이 없는 어떤 계층이나 성별, 국가일수록 기후 문제 때문에 생존에 최악의 위협을 받고 더 많은 짐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사실 너무 명확한데 그걸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기득권층, 또는 자본주의에서 우위를 차지한 사람들에게 권리를 짓밟혔다.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기득권층의 행동은 ‘우리 아이들, 미래 세대를 위한 행동’ 따위의 명분을 가지게 되었다.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고 선심 쓰듯 위한다는 말로 포장하는 치졸함을 우리는 멍청하게도 감사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실 더 이상 가만히 남 탓만 하고 있기는 힘들다. 갑자기 이런 커다란 짐을 떠맡게 되었는데 가만히 있기는 당연히 힘들다. 그런데 뭘 할 수가 없다.

청소년기후행동(이하 청기행)을 보며 많이들 하는 착각이 있는데 우리가 생태 감수성이 높아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줄 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기는 하다. 다만 나에게 환경, 그러니까 나를 둘러싼 환경의 의미가 아닌 자연적 의미의 환경은 별로 큰 의미가 없다. 물론 환경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환경이라는 그 가치를 인정하지만 나 개인에게 엄청나게 거창한 관심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청기행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하는 것이 목표지만 이것은 지구를 지키기 이전에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인간이 환경을 파괴했고 그래서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 모두 가해자이다. 그러니까 미래 세대를 위해 환경을 지키자.” 하는 식의 문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기후로 인한 파국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다가올 가능성이 다분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기후 파국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는 사실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우리는 기후 변화대응에 대한 문제를 ‘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문제’ 따위로 취급하려 하는 것일까.

사회적으로 청기행은 그 행동을 어느 정도 인정받는 상황이다. 물론 이건 당연한 거다. 우리는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선동하지도, 말도 안되는 거짓을 말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앞에 붙는 ‘청소년’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사실 우리는 여전히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청소년의 사회 참여에 청기행은 그 행위(청기행의 활동들)를 인정받는 상황이지만 -물론 뭘 인정받고 말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성과를 인정해도 그 이후의 활동을 여전히 사회에서 배제시키고 싶어 한다. 우리가 교육청과 교육부에 탈석탄과 청소년의 사회참여 보장을 요구했을 때 교육부와 교육청은 결석시위는 너무 멋지고 좋은데 이제 학교 안에서 하라든지 청소년들 행동 너무 멋지니 자기들이 그런 청소년을 키워 내겠다고 했다. 행동하고 결과를 이루어 낸 건 청소년인데 그런 청소년들을 자기들이 교육해서 우리의 동료를 늘려 주는 것이 자신들의 기후 대응이라고 한다. 이건 사실 교육계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요구에 대해 상대방의 반응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으니까. 그럼 대체 석탄은 언제 끄고 온실가스는 언제 줄이겠다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앞으로는 덜 배출하도록 건물을 짓겠다는 게 말이 되나? 현재 배출하고 있는 탄소는 고정값이고 앞으로 더해지는 걸 좀 줄여 보겠다니. 앞으로 더해지는 것도 없어야 하고 현재 있는 것도 없애야 하는데, 그건 청소년들이 어른이 돼서 하라고 한다. 어른이 돼서 하는 게 고작 이전세대가 싸 놓은 똥 치우기라니. 어른이 돼 가지고 자기가 싼 똥도 스스로 못 치우는데 할 말이 고작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 “청소년들 힘내라”라니. 너무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2020. 3. 13. 헌법소원 청구 후 헌법재판소 앞에선 청소년기후행동

2020. 3. 13. 헌법소원 청구 후 헌법재판소 앞에선 청소년기후행동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네편내편 하며 편 가르기를 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부당한 짐을 떠안고 싶지 않은 당연한 권리를 지키고 싶을 뿐이다. 당장 비청소년의 역할은 스스로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뿐이지 청소년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정체성과 주체로서 인정하며 목적 공동체로서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행동을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주체와 목소리를 부정하는 존재들과 부딪힐 것이고 결코 누구에게도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명백히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주체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불합리와 부정의를 말할 수 있다. 다함께 파국을 마주할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움직이자. 막연히 괜찮을 거라는 낙관주의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그런 미성숙한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 소송 - 헌법 소원

청소년 기후 소송은 2020년 3월 13일에 청소년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정부와 국회를 타깃으로 진행한 아시아 최초의 기후 소송이다. 정부와 국회의 소극적인 기후 위기 대응이 청소년들의 생명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침해했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이 헌법 소원을 청구한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가 기후 위기의 치명적인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고 그저 방관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 기후 소송은 회복 불가능한 피해 위험에 놓인 청소년 자녀 세대가 성년 부모 세대에 하는 헌법 소원이다. 이 소송을 시작으로 기후 위기가 수많은 당사자들의 권리의 문제이며, 불평등의 문제임을 확산시켰고 세이브더칠드런, 엠네스티 등의 단체가 기후위 기 의제를 캠페인 중심 의제로 받아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후 청소년 기후 소송이 사전 심사를 통과하였고 심판에 회부되었다. 2020년 10월 헌법재판소로 대통령 의견서가 제출되었다. 이후 2021년 1월 27일 추가 반박 서면을 제출하였다. 헌법소원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도 기후 위기가 인권의 문제임을 지적해 진정을 넣었다.

 


1) IPCC에서 제시한 ‘기후에 위험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준’으로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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