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교육원 개원을 앞두고 인권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는 좌담회가 열렸다. 인권교육이 제도와 의무를 넘어 시민의 삶 속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나눈 자리였다. 참여형 교육, 사람 중심의 관점, 지역과 연결된 프로그램 등 앞으로 국가인권교육원이 인권교육의 허브로 자리 잡기 위한 방향과 과제가 제시됐다.

사회자 _
안녕하세요. 인권교육기획과장 김범조라고 합니다. 오늘 ‘국가인권 교육원에 바란다’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좌담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4월 말 개원을 앞두고 새롭게 시작하는 교육원과 위원회가 앞으로 해야 할 인권교육에 좋은 양분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먼저 소개 부탁드립니다.
배경내 _
1998년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2008년 ‘인권교육센터 들’을 창립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들은 대표가 없는 조직, 모두가 대표인 조직입니다. 국가인권위 설립 공동대책위에서 활동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조효제 _
사회학자로서 인권 사회학, 글로벌 사회학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해왔고, 한국인권학회에도 오랫동안 관여해왔습니다. 오늘 좋은 대화를 통해 저도 많이 배우고 싶고요. 어떻게 보면 우리 인권을 둘러싼 환경이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은 시점인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주최 측에 감사드립니다.

권혁장 _
2018년도에 인권교육기획과장으로 발령이 났는데 그때 저에게 부여된 소임이 첫째,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교육 업무를 체계화하는 것, 둘째, 숙원사업인 인권교육원을 가시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기획재정담당관을 맡고 있는데, 국가인권교육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교육원과 관련된 예산과 조직이 잘 받쳐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진희 _
광주광역시에서 인권옴브즈맨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라는 행정 조직 안에서의 인권교육 과정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또 이 자리가 마중물이 되어서 국가인권교육원이 살아 움직이며 사람들의 삶에 가닿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합니다.
사회자 _
먼저 인권위의 국가인권교육원에 대한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할 건데요. 설립 초기부터 인권위가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해왔는지, 또 그동안 해온 인권교육들이 국내 인권교육 현장과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같이 발전해왔는지 짚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배경내 _
인권위의 3대 역할이 정책, 인권침해 조사와 회복, 교육입니다. 처음 설립할 때만 해도 인권교육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그림이 구체적이지 않았어요. 지금은 인권교육이 공공과 시민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는데, 그 과정에서 인권위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론 변화하는 인권 환경에서 인권교육의 사명이 무엇인지, 인권위가 방향을 잘 제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공공영역에서 인권교육이 확대되고 있기는 하지만,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동영상 시청으로 대체되는 분위기고요. 인권교육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인권교육과 학대예방교육과 같은 인접교육과의 차이도 선명하지 않은 상황이고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인권위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전진희 _
그동안 우리가 너무 인권을 권리 중심 혹은 지식 전달 위주로 교육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실제로 여러 현장에서, 의무적으로 매년 인권교육을 받음에도 계속 인권 침해가 일어나고, 현장이 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인권이 정말 우리 삶을 바꾸는 언어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어떤 언어나 메아리 형태로만 남아 있는 상황이 돼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자 _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인권교육의 제도와 수준이 어느 정도 지점에 와 있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전진희 _
17개 광역자치단체는 인권에 관한 기본 조례를 가지고 있고 공무원에게 연 1회 이상의 인권교육을 의무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도가 마련되는 것과 현장에서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다른 것 같아요.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가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를 촘촘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효제 _
인권 교육은 장기적인 과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인권 교육 자체가 조금은 긴 호흡으로 미래에 투자한다는 기본 관점을 가지고 쭉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바로 손에 잡히지 않는 결과라고 해서 절대 무시하시면 안 된다, 길게 하셔야 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회자 _
앞으로 인권교육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갖춰야 할 지향점은 무엇인지, 또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교육과정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효제 _
2.0 버전의 인권교육을 모색해야 합니다. 개별적 인권침해를 악화시키는 구조적 조건이 과거와는 극히 달라진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불평등, 극우 포퓰리즘, 정치적 양극화, 뉴미디어와 알고리즘에 따른 차별과 혐오, 기후생태 위기 등이 인권침해의 저변 조건을 이룬다는 사실을 균형 있게 알려야 합니다. 이런 점을 다루는 ‘교양필수’적 인권교육이 특정 주제를 다루는 ‘전공선택’적 권리교육과 병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배경내 _
우선 특권이나 이권, 차별과 혐오를 인권의 언어로 포장해 방패막이 삼는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인권위가 분명한 메신저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 째는 권리 충돌 담론이 의무교육 현장에 많이 퍼져 있는 만큼, 누가 더 피해자인지 겨루게 만드는 교육을 전면 재구성해야 합니다. 차별받지 않기 위한 권리에서 벗어나 차별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해야 하고, 공공영역의 종사자에게는 시민의 인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수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노동을 의미 있고 정의롭고 존엄하게 만들려면 어떤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지를 말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가해-피해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된 인권교육의 접근법을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현장에서 나타나는 반감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고, 인권에 대한 오해도 확산할 거라고 봅니다.

전진희 _
인권교육이 한 번 듣고 끝나는 교육이 아니라, 사고와 태도를 바꾸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에 대한 이해가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이고 그게 내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있을 때 지속성이 생긴다고 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국가인권교육원에서 모듈형 프로그램을 표준화하여 공무원 신규 임용 교육과정에 포함되도록 하고 이를 지자체 인재교육원에 보급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또 5·18 사적지를 돌아보면서 과거사나 국가폭력에 대한 공부를 하는 프로그램과 같이 지역의 역사나 현실에 맞는 참여형 프로그램도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자체에 보급하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_
국내 인권교육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어디까지 표준화하는 것이 좋을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한 인권의 여러 내용이 포함된 교육 과정이나 콘텐츠들을 사이버 교육 대신 교육원에 직접 와서 듣는 것의 장점에는 무엇이 있을지 여쭤보고 싶어요.
배경내 _
저는 인권교육에 얼굴이 있고 온도가 있고 목소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4.3항쟁에 대한 자료를 읽는 것과 실제로 생존자를 만나고 다랑쉬굴에 들어가서 단 10초라도 어둠 속에 있어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교육적 경험입니다. 지식으로 알고 있던 것이 몸으로 통합되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모든 인권 교육은 기본적으로 참여적이고 체험적인 성격을 가져야 해요. 어떤 형식의 교육이든 듣기만 하는 교육이 아니라, 핵심 질문이 있는 교육으로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조효제 _
사회자 _
국가인권교육원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가지고 공론의 장이 되려면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을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조효제 _
저는 인권교육이 최고 형태의 인권 옹호 활동이라고 주장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길게 보면 인권 정책과 인권교육이 커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인권교육은 법이나 제도, 인권위의 업무보다 더 포괄적인 인권을 사람들에게 알려 줄 수 있는 통로입니다. 예를 들어, 자유권, 사회권, 연대권, 이 모두를 합친 것이 진정한 인권이라는 점을 각인시키기만 해도 우리의 인권 의식과 사회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배경내 _
인권의 언어와 가치를 구체적인 당사자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시면 좋겠어요. 시대가 요청하는 인권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 이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사람들을 훈련하는 과정이 탄탄하게 제공되면 좋겠고요. 나아가 교육에 참여했던 사람을 다시 부르는 과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기획한 과제를 발표하는 시간이 한 과정의 마지막이라면, 실제 실험해본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후속으로 만들면 국가인권교육원이 일상의 실천을 응원하는 곳이 되지 않을까요?
전진희 _
인권교육을 할 때 많이 듣는 말이 짧게, 재미있게 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는데,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감정으로 느끼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국가인권교육원에서도 간단한 지식을 배우고 연극으로 참여해보는 식의 프로그램을 구성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교육이 재미있어지려면 추상적인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슈나 구체적인 질문들로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과정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김찬식 _
일견 국가인권교육원이라는 통합적 교육체계와 지역인권문화 확산이라는 분권적 가치가 상충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고, 저 또한 그에 대한 의문이 없지 않았는데 여러분들의 말씀을 듣고보니 생각이 많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국가인권교육원이 모든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인권가치 확산의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아낌없는 격려와 질책 당부 드립니다.
사회자 _
국가인권교육원이 그 가치를 높이고 큰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시고, 좋은 의견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_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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