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동안 인권 교육을 못 하거나, 덜 해서 인권에 대한 공감이 이토록 부족한 것일까? 대체 어디서부터 인권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사상은 영국의 대헌장 마그나카르타(1215년)에서 등장하기 시작해 미국 독립선언(1776년), 프랑스 인권선언(1789년)을 거쳐 2차 대전 직후 UN이 세계인권선언(1948년)까지 내놓으면서 보편적 인권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개념을 선언한다고 해서 현실이 그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인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차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들은 인권을 유린한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새로운 법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더봄, 2016년)는 영국 법률가 필립 샌즈가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외할아버지 가족의 삶을 들여다본 회고록이자, 인권과 정의에 대한 개념이 탄생한 뉘른베르크 재판을 둘러싼 법정드라마다. 한글 번역본 부제는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하는 죄’의 기원’이다.
“개인의 안녕이 모든 법의 최종 목표이다.”
‘인도에 반하는 죄’ 개념을 만든 법학자 허쉬 라우터파하트의 주장이다. 국제법의 인도주의적 발전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그가 이런 주장을 할 당시에는 국가가 국민을 차별하고 고문하고 죽일 수 있던 시절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당연하지 않던 때다. 책은 리비우(Lviv)라는 도시를 무대로 시작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동쪽 외곽의 ‘렘베르크’였다가, 1차 대전 직후 신생 폴란드의 ‘로보프’,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소비에트의 ‘리보프’, 독일군 점령 후 다시 ‘렘베르크’,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리비우’로 불리는 도시. 인권법 전문가인 저자는 2010년 리비우 대학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았다. 인권과 정의에 대한 개념으로서 ‘인도에 반하는 죄’와 제노사이드에 대한 강연. 리비우는 마침 저자의 유대계 외할아버지가 살았던 도시였다. 무엇보다 저 두 개념을 만들어낸 라우터파하트와 라파엘 렘킨이 공교롭게도 리비우 대학에서 법을 공부한 선후배였다. 책은 나치에 점령당한 그 도시의 사람들이 맞이한 가혹한 운명을 추적하고,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어떻게 저 개념이 탄생하는지 살펴본다.

1938년 도로 바닥을 닦으라는 학대 속에 유대인은 대학 입학과 전문직 진출이 금지됐다. 사업체는 보상 없이 몰수됐다. 1942년 트레블링카 강제수용소로 가는 열차에서 내린 이들은 플랫폼에서 강제로 옷을 벗고. 머리를 밀었다. 그들의 머리카락은 매트리스 만드는데 사용됐다. “말케의 삶은 열차에서 내린 뒤 15분 만에 끝이 났다.” (91쪽)
말케는 저자의 증조할머니다. 이야기가 뚝 끊기듯, 순식간에 문장이 끝나버려 당황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세 자매도 이 때 함께 삶이 끝났다. 1943년, 리비우 인근 주키에프의 유대인 3500명은 숲속 빈터에 줄을 서서 2km를 걸어간 뒤 총살됐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쥐새끼 취급을 받던 시절이다. 말그대로, 쥐처럼 박멸 대상이란 게 사실 글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다. 리비우를 비롯해 폴란드 지역 총독이던 한스 프랑크의 일화를 보자.
‘프랑크는 두 군인에게 다가가 무엇에 사격을 했는지 물었다.
이것은 아내와 친구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을 동반하는 사교행사로서의 게토 방문 장면이었다.’(347쪽)
프랑크가 거의 절멸시킨 폴란드의 유태인들 중에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의 가족들이 있었다. 저자 필립 샌즈의 가족도 있다. 너무 거대한 말살은 개별적 사연을 따지기 어려울 수 있는데, 필립 샌즈는 한 명 한 명 추적했다. 각 개인의 삶을 현미경처럼 들여다 보면, 비극은 좀 더 구체성을 갖춘다. 라우터파하트와 렘킨, 한스 프랑크는 결국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만났다.
‘제노사이드’를 창안한 렘킨이 꽂혔던 건 1915년 아르메니아인 120만 명이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튀르키예에서 학살당한 사건이었다. 어떤 국가가 자국민을 죽이지 못하도록 막을 조약이 없었고, 주권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통치권을 의미했던 시절이다. 렘킨은 ‘특정 민족과 계급의 사람들 그리고 국가, 민족 또는 종교집단, 특히 유대인, 폴란드인, 집시 및 다른 집단을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정 점령 지역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민족과 종교 집단의 말살’을 명확하게 제노사이드라는 범죄로 규정했다.

이런 개념의 등장은 환영받았을까? 국제사회의 룰을 바꾸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알고보면, 각국 정부는 저마다 이기적이다. 소수민족과 약소국민을 평등하게 취급한다는 미국 윌슨 대통령의 특별 협정 제안의 경우, 영국이 반대했다. 미국 흑인, 남부 아일랜드인, 플랑드르, 카탈로니아 등 여러 집단에 권리가 주어지는 것을 각국별로 우려했다. 국제법 전문가로서 국제인권장전을 모색한 라우터파하트의 접근도 한계가 있었다. 법령 초안에는 신체 및 행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평등권 등 시민권에 관한 9개 조항이 포함됐으나 고문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 등은 빠졌다. 남아프리카 차별정책과 미국 일부 주의 흑인 참정권 배제 등이 걸림돌이 되자 타협한 결과다.
‘인도에 반하는 죄’가 있고 없고 문제의 중요성은 우리 역사에서도 깨닫는다.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우리 국민들은 막대한 수탈과 참혹한 피해를 당했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외에도 수없이 많은 학살과 살상, 착취와 유린이 있었다. 명백히 ‘인도에 반하는 죄’였지만 제국주의 일본 지도자 중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뉘른베르크의 나치 전범들과 달리 도쿄 국제군사재판에 기소된 일본 전범들은 모두 침략전쟁에 관한 범죄에 대해서만 처벌받았다.
‘인도에 반하는 죄’를 단죄해야 한다는 것이 20세기 중반의 과제였다면 21세기 초에는 차별금지법이 핵심이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어크로스, 2025년)의 저자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노키즈존’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가 ‘노차이니즈존’까지 등장하는 세태를 진지하게 경고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편견(bias)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편견은 혐오표현(hate speech)으로 이어지고, 차별(discrimination)로 고용, 교육 등의 영역에서 불이익을 주는 단계로 진행했다가, 혐오범죄(hate crime)까지 갈 수 있다. 그 다음이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20세기에 충분히 학습했다.
2013년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법안을 철회했던 정치권은 이후 법안을 다시 발의하는데도 오래 걸렸다. 논의와 진통이 길었던 만큼 공론화와 입법 작업에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법이 제정된다고 하루아침에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최소한 변화의 발판은 만들고 보자. 노키즈, 노차이니즈 영업의 자유를 말하는 업장 사장님께 말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공존할 의무가 있다고. 그리고 차별금지법에 반한다고.


글_ 정혜승 ㅣ 북살롱 오티움 공동대표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