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 AI가 안고 있는 노동 문제...‘더 나은 일자리’ 약속하려면 플랫폼 노동자 보호부터
세계은행은 AI가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세계은행의 대표 보고서인 세계개발보고서의 올해 제목도 ‘인공지능의 약속(The Promise of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세계은행은 10월 18일까지 방콕에서 열린 연차총회부터 그다음 주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AI·디지털 정상회의까지, AI가 ‘더 많고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잠재력이 있다고 알려 왔다. 그렇다면 이 약속이 노동자에게 현실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플랫폼 노동자의 사례는 경종을 울린다. 전 세계 수백만 ‘긱 노동자’에게는 AI를 비롯한 알고리즘이 이미 상사나 다름없다.
알고리즘이 관리하는 플랫폼 노동
휴먼라이츠워치가 미국에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불투명하고 수시로 바뀌는 알고리즘으로 임금을 정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신의 수입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알 수 없다. 고객 평점은 일감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시스템에 반영되지만, 부당한 점수에 이의를 제기할 기회는 거의 없다. 노동자는 계정이 정지돼도 명확한 사유를 듣기 어렵고, 결정을 뒤집을 권한이 있는 사람과 접촉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결정의 불투명성과 이의 제기 절차 미비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들은 노동자를 통제하면서도 노동자가 단순한 독립 계약자일 뿐이라고 주장해, 오래전부터 확립된 사용자 책임을 피하려 한다.
현재 70여 개국에서 영업하는 우버를 보자. 우버는 대체로 운전기사를 자영업자로 취급하며, 자사는 기사와 고객을 이어 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요금을 정하고 일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좌우하는 것은 우버의 시스템이다. 운전기사를 노동자가 아닌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면 최저임금 보장도, 사용자가 부담하는 사회보험료도 없다. 회사는 업무를 지휘하면서 비용과 위험은 상당 부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휴먼라이츠워치 연구진이 레바논과 멕시코, 파키스탄, 영국, 케냐, 인도, 걸프 지역 등 여러 플랫폼과 국가에서 조사한 결과, 플랫폼 노동자의 경험은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노동자들은 하루 사이에도 수입이 크게 오르내리는 임금 기록을 보여 주었고, 차량과 연료, 그 밖의 장비에 들어가는 상당한 비용도 상세히 설명했다. 어떤 날은 비용이 수입을 넘어섰다. 일하다 다친 일부 노동자는 몇 달씩 소득 없이 지내며 가족과 친구에게 기대거나 빚을 내 버텼다.
델리의 한 배달 노동자는 배달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금전적 불이익을 받는다고 말했다. 배달을 서둘러 하려다 오토바이 운전자와 부딪힐 뻔해 브레이크를 밟았고, 그 바람에 넘어져 팔이 부러졌으며 치료비도 부담했다. 그는 “회사에서 받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 사례는 이 시스템이 노동자의 피해를 어떻게 키우는지 보여 준다. 알고리즘 관리는 노동자가 위험을 감수하도록 압박하고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지만, 그 위험으로 인한 부상의 결과는 노동자가 떠안는다.
이렇게 불안정한 노동 방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만큼, 기업이 기술로 노동을 관리하는 방식을 강력히 규제하고, 노동자의 임금과 안전, 사회 보장에 대해 기업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이런 규제는 최소한 노동자의 권리가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받도록 하는 알고리즘 관리 관행을 금지해야 한다.
플랫폼 경제 협약 채택
새로운 국제 노동 협약은 이런 보호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지난 6월 유엔 국제노동기구(ILO)의 국제노동총회에서 각국 정부와 노동자, 사용자 대표는 찬성 406표, 반대 8표로 ‘플랫폼 경제에서의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제193호 협약’을 채택했다.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알고리즘 관리를 규율하는, 구속력 있는 최초의 국제 노동 기준이다.
이 협약은 비준국 정부가 노동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자동화 결정에 대해 노동자가 서면 설명을 요청할 수 있도록 보장하게 한다. 임금을 주지 않거나 일감 접근을 끊는 결정에 대해서는, 인간의 개입이 적절히 수반되는 심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임금과 안전, 사회 보장, 단결권에 대한 보호 장치도 두고 있지만, 일부 보호는 고용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보다 각국 정부는 고용 형태가 올바르게 분류되도록 조치해야 하며, 그 기준은 기업이 계약서에 붙이는 명칭이 아니라 실제 업무 수행 방식과 보수 지급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이 조항들은 기술이 노동자를 관리하는 방식과 기업이 노동자에게 지는 책임을 함께 다룬다. 세계은행이 AI에 기대하는 ‘더 나은 일자리’의 일부를 가늠할 구체적인 잣대가 되는 셈이다.
플랫폼을 넘어 퍼지는 알고리즘 관리
문제는 승차 공유와 배달에 그치지 않는다. 비공식 고용 여성 네트워크 위고(WIEGO, Women in Informal Employment: Globalizing and Organizing)의 연구에 따르면 긱 노동화는 가사노동과 미용 서비스, 데이터 노동으로 번졌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도 알고리즘의 통제를 받으면서 직장 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제한돼 있다. 국제노동기구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물류와 보건 의료 같은 전통적인 일터에서 알고리즘 관리가 이뤄지는 사례를 기록했다. 이런 분야의 노동자도 이 시스템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받고, 결정에 효과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각국 정부는 새 협약을 비준하고 노동자의 참여 속에 협약을 이행해야 하며, 노동시장 전반에서 노동자에게 해를 끼치는 자동화 관리 방식에도 대응해야 한다. 세계은행은 자문과 재정 지원으로 이런 노력을 뒷받침해, 정부가 노동자 보호 규정이 실제로 지켜지도록 하고, 노동자가 임금이나 일감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방콕과 서울에서 말하는 ‘더 나은 일자리’는 생활임금, 병이나 부상으로 일할 수 없을 때의 보호, 근로조건을 협상할 힘을 뜻해야 한다. 이는 집행이 뒷받침돼야 하는 권리다. AI를 홍보하는 기관들에는 이 약속을 현실로 만들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