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사형 폐지의 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성명 |
| - 사형집행 없는 30년을 앞두고,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법·제도적 논의를 진전시켜야 할 때 - |
□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창호)는 2026년 10월 10일 제24회‘세계 사형 폐지의 날’을 맞아, 사형집행 중단 30년을 앞둔 우리 사회가 사형제도의 향후 방향에 대한 공론화와 제도적 검토를 보다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고 다음과 같이 성명을 발표합니다.
□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내년이면 사형집행이 중단된 지 30년이 됩니다. 국제사회는 우리나라를 법률상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는 ‘사실상 사형폐지국(Abolitionist in practice)’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형사사법제도를 운영해 온 지난 30년의 경험은 단순히 ‘형벌 집행의 유예’라는 사실을 넘어, 극형을 실제로 집행하지 않고도 사회의 안전과 형사사법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음을 증명해 준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형제도의 법률적 존치 여부에 관한 논의를 한 단계 더 진전시켜야 할 시점입니다.
□ 국제사회에서도 사형제 폐지를 향한 흐름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국제엠네스티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전 세계 국가의 4분의 3에 달하는 145개국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을 폐지하였고, 이 중 113개국은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제를 완전 폐지하였습니다.
○ 우리 정부 또한 2020년 이후 유엔 총회의 ‘사형집행 모라토리엄 결의’에 찬성하는 입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 사형제 폐지 의견을 표명한 이래 일관되게 사형제 폐지의 필요성을 밝혀왔으며, 2018년에는 정부에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의정서(사형폐지 의정서)」가입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 한편, 사형제도에 관한 논의에서는 강력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 그리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국민의 요구 역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합니다.
○ 범죄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하고, 범죄를 예방하며, 재범을 방지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입니다. 따라서 사형제 폐지 논의는 피해자 보호와 국민 안전의 과제를 소홀히 하지 않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만, 피해자 및 그 가족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과 국가가 형벌로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제도를 유지하는 문제는 구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사형은 일단 집행되면 어떠한 사후적·사법적 절차로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비가역성(非可逆性)으로 인해 사형제도의 존폐 문제는 단순히 형벌의 강도를 선택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형벌권의 정당한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 특히 인간이 행하는 사법적 판단에는 오판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고, 실제 우리 역사에서도 2007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같이 사형이 집행된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가 밝혀져 사법적 오판이었음이 확인된 비극적 사례들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의 위험성은 사형제 존폐를 논할 때 결코 부차적으로 다룰 수 없는 요소입니다.
□ 대한민국은 이미 한 세대에 가까운 기간 동안 사형 집행 없이 형사사법제도를 운영해 왔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상 사형폐지’라는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법률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갈 것인지에 관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할 시점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정부와 국회는 그간 축적된 우리 사회의 경험과 국제인권기준, 범죄피해자 보호 및 국민 안전에 관한 다각도의 관점을 토대로 사형제 폐지에 관한 입법적·제도적 방향을 검토하고, 아울러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의정서(사형폐지 의정서)」 가입에 관한 논의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세계 사형 폐지의 날’이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의 반복을 넘어, 지난 3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과 생명권, 국가형벌권의 한계를 우리 사회가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모든 사람의 존엄과 생명권이 더욱 두텁게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필요한 역할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2026. 10. 10.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안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