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참정권운동, 거리로 나오다 (1912)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나라는 1893년 뉴질랜드이지만, 여성참정권운동의 대표국가는 그보다 한참 후인 1928년에야 여성의 투표연령을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한 영국이다. 이는 영국의 여성참정권운동이 가장 격렬했기 때문인데, 바로 이 운동의 지도자가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 1858~1928)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 모두 여성참정권론자들이었는데, 남편인 리처드는 존 스튜어트 밀과 함께 영국에서 처음으로 여성참정권 법안을 만든 변호사였고, 세 딸들은 함께 운동을 조직하고 투옥되는 등 여성참정권 운동에 헌신했다.

시위도중 체포되고 있는 에멀린 팽크허스트(1914)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활동하던 20세기 초 영국은 보수당과 자유당이 교체되면서 법개정을 통해 참정권을 확대해나갔는데, 어느 정당이 들어서더라도 여성의 참정권은 매번 의회에서 부결되었다. 그러자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이제껏 사용하던 서명과 청원 방식을 버리고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조직하여 좀더 과격하고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운동을 펼쳐나갔다.

WSPU 회합 모습
처음에는 여성참정권에 관한 글을 발표하기 위하여 내각 각료들의 회합을 무산시키고 선거를 방해하던 WSPU는, 1912년 3월 1일 런던 중심가 피카딜리 거리를 비롯한 주요거리에 위치한 건물의 유리창을 모조리 박살내는 것을 시작으로, 국립미술관의 작품을 손상시키고 전화선을 끊고 전철에 불을 지르고 유명 정치인의 집을 불태웠다. 이 과정에서 체포·구금이 잇따랐고, 투옥된 운동가들은 정치범 대우를 요구하며 옥중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호스를 이용하여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다가 반대여론에 부딪혀, 단식하는 죄수를 일단 석방시켜 감시하다가 다시 잡아가둘 수 있게 하는 법을 제정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도 1908년 처음 감옥에 수감된 이후 1913년에만 이 법에 따라 석방 및 체포를 12차례 되풀이했다.

WSPU의 '말보다는 행동'은 달리는 경주마에 뛰어드는 것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1913년 6월 4일 WSPU 회원인 에밀리 데이비슨이 경마대회에서 질주하던 말을 향해 뛰어나갔다. 이 말은 당시 국왕이었던 조지 5세 소유였고 에밀리 데이비슨의 외투에는 VOTES FOR WOMEN 이 적혀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는 폭발하여 장례식을 거대한 시위행렬로 만들고 런던을 전쟁 상황으로 몰아갔다.

왼쪽에 쓰러진 이가 에밀리 데이비슨이다
이같은 여성참정권운동진영과 정부와의 극단적 대치를 해소시킨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영국의 참전을 지지하면서 여성참정권운동을 잠정 중단하고 여성들에게 전시체제에 협력할 것을 독려했다. 이러한 변화는 당장 그녀의 두 딸로부터도 거부되었는데, 이들은 어머니의 여성운동을 부르조아 여성운동으로 규정하고 반전운동과 사회주의에 몰두하였다.

어쨌든 전쟁이 끝나고 전시기간 동안 여성들의 협조가 인정되어 영국은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21세부터 투표권을 인정받은 것은 이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후였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평등한 선거권을 규정한 법률이 시행되기 한 달 전인 1928년 6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전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쟁이 이를 가속화시킨 것은 역사적으로 분명하다. 실제로 1914~1939년까지 28개국이 여성참정권을 인정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프랑스 등이 이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영국과 함께 여성참정권운동이 격렬했던 미국에서는 이 운동이 영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미국의 여성참정권운동 지도자인 수잔 B.앤서니(Susan B. Anthony)는 투표권이 없는 채로 투표에 참여하여 체포되는 등 시위에 나서기도 하였으나, 여성참정권운동의 목표를 헌법개정에 두고 의회와 대통령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이는 식으로 운동을 전개하였다. 미국에서 여성의 동등한 투표권을 허용하는 수정헌법 제19조가 비준된 것은 영국보다 빠른 1920년이었다. 이 법은 오늘날에도 수잔 B.앤서니 수정헌법으로 불린다.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둘째딸 실비아 팽크허스트 기념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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