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 > 특집 > 인권을 위해 세계가 정한 첫 번째 약속 - 세계인권선언

특집 [2016.12] 인권을 위해 세계가 정한 첫 번째 약속 - 세계인권선언

글 이기규

 

아이완



┃  인권, '사람'에 대한 존중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인권'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낯선 말이었다. 인권이란 말을 아예 알지 못했던 시대도 있었고 인권보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인권이란 말이 등장할 정도로 우리에게 인권은 매우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권친화도시'임을 강조하고 각 시ㆍ도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있다. 인권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인권이란 말은 점점 익숙해지고 있지만 인권을 나와 상관없는 단어로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인권은 사람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라고는 머릿속으론 이해하지만 인권이 나의 삶과 어떤 관계인지는 잘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더욱 낯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세계인권선언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인권선언이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유대인 학살과 같은 야만적인 전쟁 범죄를 목격해야 했다. 전쟁 기간 내내 세상은 죽음과 공포, 굶주림으로 가득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1945년 참혹한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 세계 사람들은 크나큰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세상 어느 누구도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면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은 결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이러한 교훈은 이후 1948년 세계인권선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2년간 작성, 1400번의 투표


세계인권선언은 1개의 전문과 총 30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문의 내용은 세상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인 인권이 세계의 정의와 평화의 기준임을 확인하며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이 전 세계가 달성해야 할 인권의 공통 기준을 담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1조와 2조는 세계인권선언의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1조는 인간의 존엄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으며, 2조는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아야 하며 누구나 선언에 나온 모든 권리를 누려야 함을 명확히 하고 있다.

  3조부터 21조까지는 자유로운 한 사람으로서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와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적시했으며. 22조부터 27조까지는 사람들의 일하고 쉴 권리, 문화생활의 권리와 사회보장을 누릴 권리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28조부터 30조까지는 세계인권선언이 추구하는 세상을 다시 한 번 밝히고 인권을 위한 모든 사람의 책임을 강조하며, 다른 사람의 인권을 파괴할 수 있는 인권은 존재하지 않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세계인권선언이나 선언 속 내용이 강대국의 문화나 의도만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가 아닐 수 없다. 세계인권선언은 단순히 승전국인 몇몇 나라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인권선언의 제정 과정을 보면, 선언은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58개의 유엔 가입국이 모두 참여해 만든 역사적인 결과물임을 잘 알 수 있다.


  1947년 1월부터 1948년 12월까지 2년 동안 유엔 가입 58개국은 선언을 완성하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와 문장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수많은 논쟁과 회의 속에서 유엔 가입국들은 총 1400번의 투표를 했고 이를 통해 선언의 내용을 하나하나 완성했다. 이런 오랜 노력 끝에 세계인권선언의 전체 30개 조항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은 50개국의 찬성으로 채택되었다. 8개 나라의 기권표는 있었지만 반대하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다른 의견은 존재했지만 선언의 의미와 가치를 반대하는 나라는 없었다. 즉 세계인권선언은 나라와 문화, 종교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인권의 세계 기준으로 인정받았다는 말이다.



인권을 위해 세계가 정한 첫 번째 약속 - 세계인권선언2

진덕영



┃  인권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


물론 세계인권선언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인권선언은 그 자체가 강제성을 띠는 협약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또 68년 전의 시대가 가진 인권 문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조항이기 때문에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미흡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2조의 차별 금지 항목 중엔 장애, 비장애, 성적 취향과 성 정체성, 나이 등 최근의 민감한 인권 문제의 항목들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또한 선언문 내용 중간 중간에 남녀차별적인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적인 한계이지 세계인권선언이 추구하는 가치가 글자 그대로 제한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인권선언은 인권에 대한 세계 모든 사람의 첫 외침이라는 면에서 그 의의가 사뭇 크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인권선언은 세계 인권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세계인권선언을 만든 이후로 인권에 대한 의식은 점점 더 높아졌고 그에 따라 인권의 영역은 더욱 더 많은 권리와 내용들로 확장되어 갔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인권선언 이후에 수많은 인권협약이 새롭게 제정되었고 선언에 제대로 담기지 못한 인권 문제들은 구체적인 국제인권협약 속에 포함되고 있다.

  68년이 지났지만 세계인권선언의 각 조항은 여전히 그 의미가 있다. 선언이 제기한 인권 문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인류 모두의 과제이며 한국에서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세계인권선언은 우리 사회의 인권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척도실을 보여준다.



인권을 위해 세계가 정한 첫 번째 약속 - 세계인권선언3

김승윤



┃  세계인권선언 - 나, 너, 우리의 권리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으나 제대로 된 국가의 구조와 보호를 받지 못해 수백 명이 희생된 세월호 사건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의 권리를 명시한 세계인권선언 3조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깨닫게 한다.

  법적으로는 학교 체벌이 금지되었지만 해마다 심각한 체벌 문제가 뉴스에서 오르내리고, 가정에서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끔직한 아동학대 사건을 다룬 신문기사를 보고 있으면 비인도적 형벌을 금지하는 세계인권선언 5조의 내용이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 보인다.


  구의역 사고로 대표되는 수많은 비정규직의 문제, 그들이 처한 임금차별과 강도 높은 노동, 고용불안의 문제들은 노동의 권리를 명시하고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받을 권리와 쉴 권리를 명시한 세계인권선언 23조, 24조의 권리 내용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무시되고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물론 세계인권선언이 우리 사회의 인권 현실을 보여주는 척도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인권선언은 우리가 우리 사회의 인권문제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게 해준다.  세계인권선언 전문을 포함해 1조, 29조, 30조는 전 세계의 인권문제 해결에 대해 모든 국가가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인권 존중을 위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개인의 의무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바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전 세계 사람들의 믿음이 모여 세계인권선언을 만들어낸 지 68년이 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세계인권선언은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인권이 단지 남의 나라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인권선언의 각 항목은 우리 삶과 연결된 문제이고 우리가 외면하지 않아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bar


 이기규 님은 <인권배움터 봄+1> 회원이며 서울 초동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더 많은 인권이야기 보기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