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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괜찮아도 괜찮아요”

인터뷰-동행 [2018.03] 미투가 바꾸고 있는 세상
“안 괜찮아도 괜찮아요”

인터뷰 유제이 사진 봉재석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보화 책임연구원

 

미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바꾸고 있다. 단순히 성폭력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부지불식간에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후진적인 문화를 걷어내는 중이다. 그래서 어떤 전문가들은 한국사회는 미투 이전과 미투 이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투 이전과 이후 모두 성폭력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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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반갑습니다. 요즘 미투 운동 때문에 많이 바쁘실 것 같은데요. 미투 운동 이전과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 바빠지셨나요?

김보화 책임연구원(이하 김보화) 많이 바쁘죠. 전에도 다들 바쁘게 활동했지만 요즘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웃음) 그런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다른 곳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얘기해봐도 그래요. 원래 상담 하나가 끝나면 정리를 위해서 잠시 시간을 두는데 그럴 새도 없이 전화가 계속 와요. 저희 활동가도 광화문에 있는 시민공동행동에서 여성 단체 활동가들 모임이 있다고 해서 갔다가 한 달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요(웃음). 체감상은 두 배에서 세 배 정도 바빠진 것 같아요.

 

인권 일단 미투의 의미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ME TOO를 ‘나도 당했다’고 번역해서 기사를 쓰는 매체가 적지 않은데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 중점을 두는 표현이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미투의 옳은 번역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보화 2006년 여성인권 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시작했던 배경을 생각해보면 유색인종이나 소녀 등 폭력에 취약한 여성을 위해 시작했는데요. 지금과는 뉘앙스가 약간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나도 너에게 공감하고 도울게’라는 캠페인이었어요. 저희는 굳이 그 상황을 표현해야 한다면 피해를 ‘입었다’라고 하거든요. ‘당했다’고 하면 피해 당사자에게만 초점을 맞추니까요. 그래서 ‘나도 공감하고, 함께하고 싶다’처럼 함께 아픔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표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권 미투의 고발 내용은 주로 성폭력입니다. 성폭력이라고 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강간처럼 매우 직접적인 성행위를 동반한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폭력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요?

김보화 저희 여성단체들이나 여성학에서 쓰는 성폭력은 넓은 정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상대방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성적 언어나 행동, 성희롱부터 강간과 추행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를 성폭력이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성폭력은 강간이고 성희롱은 성적 희롱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나눠서 쓰는 곳도 많아요. 일단 저희는 성폭행이라는 단어는 잘 쓰지 않아요. 성폭행이라고 하면 행위, 물리적인 폭행이 강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성폭력에서 력, 힘에 의한 것은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넓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의 경중에 의해 피해 정도가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편견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희 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피해의 경중과 상관없이 피해자의 트라우마가 크게 남는 경우는 2차 피해가 많았을 때였어요. 피해를 받았을 때 가족이나 친구, 경찰에서 어떤 지지나 반응을 보였느냐에 따라 회복에 차이가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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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미투 운동이 막 시작되었을 때와 약간 시간이 지난 지금을 생각하면 반응들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미투 운동을 희화화하거나 ‘지겹다’, ‘펜스룰이 정답이다’ 등의 반응들이 조금씩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김보화 어쩔 수 없죠. 지겨운 사람은 지겹겠죠. 사실 저 같은 사람은 지금 상황이 걱정 반, 기대 반이거든요.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직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얘기가 많아요.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저희 같은 활동가들이 더 잘해야 할 텐데, 그리고 피해자들을 더 많이 보호해야 할 텐데 같은 생각도 하고요. 지겹다는 사람들은 뭔가 걸리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미투를 희화화하거나 펜스룰을 이야기하는 건 2차 가해죠. 그런 사람들은 본인의 강자성을 과시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인권 분위기가 초반과 조금씩 달라지면서 ‘얼굴과 실명을 공개해야 진짜 미투’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보화 유독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만 사람들이 진짜 피해자, 진짜 성폭력을 판단하려고 해요. 모든 사람이 판사나 검사가 되려고 하죠.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어?’, ‘피해를 입었는데 왜 계속 회사를 다닌 거야?’ 같은 얘기도 하고요. 저는 미투 이전이나 지금, 앞으로 성폭력 피해를 말하는 사람 모두가 미투 운동가이자 폭력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신변 공개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요. 피해자가 용기가 없어서 SNS에 폭로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형사 고소만 할 수 있어요. 조용히 사과문만 받을 수도 있고요. 그것도 미투거든요.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고, 해결하려고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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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2차 가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피해자에 대해 2차 가해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2차 가해에서 피해자를 보호할 방법 혹은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김보화 요즘 참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저는 가장 좋은 방법은 ‘2차 가해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해요. 물론 이런 질문들이 피해자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건 알지만, 여기에 대해 얘기를 하면 나중에 피해자에게 ‘이런 방법들이 있는데 넌 왜 못하니?’ 같은 말을 할 수 있거든요. 상황이나 맥락이 저마다 다른 상황이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방법 같은 건 없어요. 그래서 말할 때 굉장히 조심스럽고요. <보통의 경험>이라고 저희가 펴낸 낸 책이 있어요. 피해자가 상황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상황을 이끌어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마음먹기, 법률 등에 대해 자세히 엮었으니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권 지금까지의 미투 운동을 평가한다면, 또 지금까지의 페미니즘 운동이 추구했던 것과 지금 상황을 비교한다면 어떨까요?

김보화 이 미투 운동은 조직된 게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이거든요.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만큼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고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내가 말할래’ 할 수 있는 임파워먼트가 생긴 거죠. ‘내가 촛불로 대통령도 바꿨는데’ 같은 마음도 있고요. 수십 년 동안 활동해온 분들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예요. 그리고 이전 정부에 비해 성 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는 데다, 제일 보수적인 조직 중 하나인 검찰에서 문제가 제기된 것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관련 단체들이 수십 년간 얘기했던 것들이 며칠 만에 이뤄지는 상황이기도 해요. 이렇게 한순간에 바뀌는 걸 보면 저희들은 감동받기도 하고요. 저희 소장님이 ‘법을 바꾸는 건 생각보다 쉽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건 어렵다’고 늘 얘기해왔고 저도 공감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어렵다는 ‘인식의 전환’이 되고 있어요. 언론사가 보도할 때도 ‘이런 단어를 써도 될까요?’하는 문의를 해오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겠다는 거잖아요. 또, 기존에 계속 생산되어 왔던 우리의 연구나 운동이 갑자기 세상에 많이 알려지고 있기도 하고요. 그간 해왔던 일들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사실도 힘이 나요.

 

인권 지금까지 사회적 관심을 끄는 미투 운동 사례는 대부분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유명인이나 일정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하지만 ‘나는 말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야’, ‘내가 말하면 안 믿을 거야’라는 생각에 아직 고민하거나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김보화 이런 건 고민하시는 분의 현재 마음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나 얘기하고 싶은데,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의 뉘앙스라면 손을 덥석 잡고 ‘나 엄청 열심히 들을 거야’ 할 수 있겠죠. 가까운 친구 혹은 전국 180개의 성폭력 상담소에서 말하면 되고요. ‘말하고 싶지 않은데 말해야 할 것 같아’의 분위기라면 말 안 해도 됩니다. 말을 해도 용감한 사람이고, 말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꿋꿋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당신은 생존자니까요. 괜찮아도 괜찮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울어도 되고 안 울어도 되고요. 그 모든 감정들은 치유와 생존의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감정이에요. 어떤 감정이건 간에 상담소나 주변의 친구 같은 지지 그룹과 함께 치유 방법을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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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해설.

이 글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보화 책임연구원 사진과,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과 여성인권단체 관계자들이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기자회견 사진과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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