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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돋보기 [2018.03] 세상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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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놀랍게도(!) 사람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흠결을 찾는다. 피해자를 평가하고 그가 성폭력을 당한 이유를 찾는다. 미투 운동에서도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피해자는 2차 가해를 당하고, 익명으로 폭로한 피해자는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영화는 이런 현실을 담는다.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피해자
미국의 워싱턴주 변두리 도시 버치필드, 그중에서도 변두리 작은 술집 게임 룸에서 한 여성이 3명의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남자친구와 싸우고 밤에 술집을 찾았던 사라는 사건 발생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고 마리화나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선정적인 옷차림으로 춤을 추는 등 ‘품행이 단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사라의 변호사이자 여성인 캐서린도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그래서 검사의 합의하에 단순 폭행 혐의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여기까지의 영화 내용을 보면 사실 별로 새로울 게 없다. 지금의 미투 운동이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하지만 고발한 피해자에게 ‘그러게 왜 따라갔냐’, ‘왜 바로 항의하고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느냐’는 질책부터 ‘먼저 유혹하고 나중에 고발한 거 아니냐’까지 걱정을 빙자한 2차 가해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피고인>은 1989년에 개봉했다. 거의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은 무섭도록 진화했다. 개인 PC가 보급되더니 인터넷이 생겼고, 이제는 스마트폰 사용도 보편화되었다. 30년 전과 지금은 생활의 편리함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 여성을 보는 시각은 그대로다. 영화 속에서 피해자 사라는 술에 취해서, 선정적인 옷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췄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윤간을 당했다. 사라는 폭행을 당하면서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주위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폭행 장면을 지켜보며 환호했다. 직접적으로 폭행을 한 세 사람은 물론, 주위에서 응원한 사람들까지 교사죄로 고발한 캐서린과 사라는 재판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묻힌 사건들을 꺼내어 들추는 일
영화 <스포트라이트> 역시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다. 미국의 보스턴에서 교구 내 사제들이 아동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보스턴 글로브’ 신문사는 이 문제에 대해 심층 보도를 하기로 결정한다. 심층 보도를 담당하는 팀이 ‘스포트라이트’ 팀이고,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몇 십 년에 걸쳐 이어지고 있던 성추행인데다, 교회가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있었던 터라 증거를 모으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성폭력 관련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는 증언을 꺼린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 팀의 끈질긴 노력 끝에 관련 사건의 증거와 증인들이 나타난다. 이 영화가 지금의 미투 운동과 연결되는 지점은 하나둘이 아니지만 오래전에 있었던 사건을 다시 세상에 내놓을 때 생기는 문제, 특히 피해자들이 증언을 망설이는 상황이다. ‘이미 지났는데’, ‘누가 믿어줄까?’ 하는 마음은 피해자의 성별과 나이를 막론하고 같다. 지금의 미투 운동이 의미를 갖는 것은 이렇게 혼자 아픔을 삭이고 있던 이들이 발언을 할 기회를 스 스로, 연대하며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영화의 많은 미덕 중 하나는 피해자의 얘기를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폭력이 발생했던 그 순간을 굳이 영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장면에서 트라우마를 일으킬 유사 사건의 피해자를 비롯해 관객 역시 끔찍한 순간을 눈으로 봐야 할 필요는 없다. 그간 성폭력을 다룬 영화가 사건 장면을 지나치게 자세히 다뤘던 것을 생각하면 꼭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스포트라이트 팀도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은 보도하지만 피해자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지는 않는다. 이래저래 지금 미투 운동을 이야기하는 언론사와 사람들이 한 번쯤 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피고인>에서 더 나아졌을지, <스포트라이트>만큼 피해자를 생각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영화 피고인과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사진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