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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담긴 풍경 [2018.03] 평등의 권리는 만 20세 이상에만 적용되나요?

글 김가을길

 

<전국학생인권실태조사>1)에 따르면 학생 인권 침해 최다 상위권 지역은 대전, 울산, 경북, 부산, 인천 다섯 군데다. 인천을 제외하면 모두 비수도권 지역으로, 2010년 경기도, 2011년 광주와 서울, 2013년 전북에서 학생 인권 조례가 제정된 것에 비해 학생 인권에 대한 관심도가 덜한 일부 비수도권 지역의 학생들은 1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인권침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진

 

부산지역 학생 인권 침해 사례

그렇다면 학생 인권 침해 5대 상위권 지역으로 자랑스럽게 자리매김한 부산의 학생 인권 현실은 어떨까? 다음은 2017년 ‘부산학생인권대나무숲’을 통해 고발된 ‘ㄱ’고등학교의 강제 야간 자율 학습 사례다. “기숙사생은 밤 12시까지 강제 야자를 하고 기숙사에 가면 아무리 빨리 잠 들려고 해도 1시쯤에 자게 됩니다. 보통 여유 있게 자면 1시 반쯤인데 아침 기상시간이 6시 40분이니 결국 기숙사생들은 하루에 약 5시간을 자고 나머지 시간에는 깨어 있기를 강요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졸리고 피곤해도 수업시간에 절대 엎드리지 못합니다. 졸고 있으면 눈치를 주고 자지 못하게 합니다. 심하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지 말라는 소리를 듣거나 체벌당합니다.” 실제로 부산은 강제 학습 ‘우수’ 5대 지역으로, 전체 학생 중 66%가 방과 후 학교, 보충수업, 야간 자율 학습 등 강제 학습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했다.

 

청소년 참정권을 통한 학생 인권 향상 효과

이렇듯 학생 인권 침해가 심각한 지역임에도 학생 인권 조례가 제정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근본적인 원인은 지역 보수 세력의 반발이다. 학생 인권 조례가 가장 초기 제정 단계에 들어갈 무렵, 부산에서는 ‘부산 학생 인권조례 제정 반대 시민 연합’이 출범하였다. 몇 년째 이어진 끈질긴 반대 운동 끝에 교육감은 2017년 11월 21일 부산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선거 과정에서 학생 인권 조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추진을 위해 점검을 하다 보니 부정적 여론이 컸다”며 사실상 학생 인권 조례 공약을 포기했다. 학생인권조례 정책 시행의 가장 큰 당사자인 청소년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비해, 대부분이 성인 유권자들로 구성된 지역 보수 세력 연합은 너무나도 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정책의 변화

2016년 겨울, 뜨거웠던 촛불의 현장에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2017년 우리의 힘으로 새 대통령을 뽑는 ‘장미대선’에 청소년은 함께하지 못했다. 청소년이 투표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청소년의 권익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정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육정책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많은 시간을 거쳐 수많은 입시 제도 변화가 있었지만, 결국 정말 중요한 ‘청소년의 삶’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특정 소수 계층의 모두가 투표권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어느 정치인이 그 계층의 어려움을 들여다보려고 할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의 원칙은 ‘평등’이지만, 우리사회에서 ‘평등’의 권리는 만 20세 이상에게만 주어진다.

 

참정권과 함께 빼앗기는 것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주 근거는 ‘청소년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청소년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행법상 청소년은 선거권, 피선거권뿐 아니라 유권자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정치적 권리들을 함께 박탈당하고 있다. 실제로 2012년에는 한 청소년이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지지 선언을 SNS에 업로드 한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청소년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위법이 되는 사회에서, 그 누가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이건, 삶에서 ‘정치’를 빼놓을 수는 없다. 투표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이다. 야간 자율 학습, 특성화고등학교 실습, 청소년의 경제권, 부모로부터의 학대 등 그 모든 일들이 청소년이 삶을 살아가며 겪는 정치적 의제들이다. 내 삶에 대한 결정권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만큼 비민주적인 일은 없다. 청소년 참정권이 가지는 의미가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끊임없이 ‘유권자로의 자격’을 제한해왔다. 어느 시대에는 성별이, 안정적인 수입이, 세금을 낼 만한 능력이, 인종이 그 자격을 대신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선거가 평등으로 나아가기까지 남은 단 하나의 ‘자격’이 있다. 이것을 깨고 다음 걸음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김가을길 님은 청소년 참정권이 당연해지는 세상을 꿈꾸면서, 현재 촛불청소년인권법 제정 부산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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