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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수첩 [2018.03] ① 체육계의 성폭력, #미투, 그리고 미래

글 남상우

 

나는 운동하기 편한 나라가 좋다. 우리 자식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떠한 걱정 없이 운동만큼은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다. 이러한 희망에 걸림돌 하나가 바로 성폭력이다. 최근 문화계와 정치계에서 일어난 미투 운동을 보면 암울해진다. 체육계에 생긴 고름이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진

 

체육계는 성폭력에 취약한 구조

운동 연습 중이다. 남자 코치가 고등학생 여자 선수의 몸을 만진다. 혹은 여자 코치의 손이 중학생 남자 선수 몸을 더듬는다. 선수 입장에선 애매하다. ‘어? 이거 뭐지?’ 기준이 애매하니 뭐라 말하기도 애매하다. 괜히 말했다간 찍힐까 겁난다. 신체적 접촉이 필수인 스포츠이기에 이러한 접촉은 전부터 자연스러웠다. ‘아닐 거야······’ 외면하고 넘어간다. 이게 반복되면 성적 감수성이 떨어진다. 행위는 친숙해진다. 운동 이외의 상황에서 나타나는 성폭력은 명징하다. 합숙소에 있는데 감독이 선수에게 안마 좀 하란다. 성적인 내용이 담긴 물건도 보여준다. 이상한 그림을 메시지로 보낸다. 강압적으로 성행위를 하려 한다. 이런 옷이 어울릴 것 같다며 치근댄다. 이런 경우는 명백히 성폭력이다. 신고해야 한다. 지금 당장 문을 박차고 나가 이 문제를 만천하에 공개해야 한다. 아! 그런데 어떻게? 부모님? 학교? 구단? 경찰? SNS? 대한체육회? 대학 강사 시절, 한 여자 선수와 상담을 했다. 위 두 사례를 모두 경험했다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의뢰하더라. 내가 뭐라고, 나 역시 힘없는 ‘강사’였기 때문에 같이 분노해주는 선에서 상담은 끝이 났다. 신고하라고 말해주자니, 이 학생의 선수 생활 유지가 불확실했다. 참으라고 말하자니 심리적으로 먼저 무너질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싫습니다.” 할 수 있다면 이리 말하고 최대한 멀리하라는 하나 마나 한 조언이 이어졌다. 지금 한국 체육계 상황이 대충 이렇다.

 

한국 체육계의 성폭력 실태를 숨기는 구조적 문제

여고생 운동선수 10명 중 3.5명이 성희롱을 경험했다. 신체적 희롱이 가장 많다. 가해자의 76%는 지도자다. 권력형 폭력이다. 2008년에 이루어졌던 한 연구의 결과다(주종미, 2008년). 2010년에 이루어진 연구에서도 결과는 비슷하다(조욱연, 2010). 심지어 남학생들도 성희롱과 폭력을 경험했다(평균 29%). 2012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에 성폭력으로 접수된 신고 상담 건수는 184건이다. 평균 잡아 1년에 40~45건 정도의 성폭력 사건이 접수된 것이다. 물론 ‘신고’된 건수만이다. 신고 되지 않은 경우를 고려하면 체육계 성폭력 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프로스포츠에서 대학교 체육계열 학과를 거쳐 중학교 운동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성폭력을 모두 고려했을 때에는 현재보다 3배는 많을 것이라 보는 이도 있다. 체육계 내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선 크게 세 가지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지도자가 발휘하는 절대 권력이란 구조, 그들만의 연대로 이루어진 조직 문화란 구조, 신고가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가 그것이다. 대학 진학이나 대회 출전과 관련한 권한은 대부분 지도자에게 귀속된다. 문제는 이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생살여탈권’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성폭력을 당하게 되었을 때 선수가 저항하기 어려운 이유다. 팀 스포츠 내 선수가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다른 학부모가 나서서 신고를 못 하게 막는 경우도 생긴다. 지도자가 잘리면 내 새끼가 대학에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체육계 내 형성된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도 문제다. 성폭력 문제를 팀 내 동료나 다른 지도자에게 말해도 돌아오는 답은 절망적이다. “조직을 위해 네가 참아라.” 이것도 ‘조직 관리’라면 관리다. 조직 내 주요 구성원들 대부분이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상황도 이러한 카르텔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그 조직의 상층부로 가려면 남자보다 더 남자 같아져야 한다. 성희롱 따위는 으레 그런 것으로 치부해야 여성도 체육계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다. 하긴, 모든 조직이 그렇긴 하다. 여자 선수가 성폭력을 당하면 신고할 수 있는 방법도 문제다. 대한체육회 내 ‘스포츠인권센터’가 있기는 하지만,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조직 입장에서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많은 선수가 자신들의 불공정한 사례를 대한체육회에 말하지 못한다. 보복이나 선수 생활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앞선 ‘5년간 184건’의 신고 건수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하는 이유다.

 

스포츠계 성폭력을 근절하는 방법

“체육계에도 곧 미투 터진다.” 한 국회의원의 말이다. ‘나도 고발한다’를 뜻하는 미투 운동이 전 사회적으로 일어나면서 관심이 집중되는 또 한 곳이 바로 체육계다. 성폭력 문제의 핵심인 권력 구조가 철저히 위계적이기 때문이다. 문화계뿐 아니라 체육계에도 곧 엄청난 사건이 터질 것이란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의외로 잠잠하다. 촉발되는가 싶다가 그대로 묻혀버린 리듬체조 코치의 성폭력 보도를 제외하곤 체육계에서 세간의 이목을 받을 만한 사건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건 복잡한 문제다. 어릴 때는 이게 성폭력인가, 하다가 넘어간다. 몇 년 넘게 운동하면서 이젠 돌아갈 길이 막막해져 그냥 참는다. 10년 가까이 운동만 했는데, 성폭력 고소했다가 내 선수 생활 끝나면 어쩌나, 걱정되어 입을 다문다. 더 나이가 들면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다. 더 심각한 건, 미래를 위해 참으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나온다는 사실이다. 지금 미투 운동에 참여해서 SNS나 언론에 터트리고 싶어도 ‘이게 주목을 받을까’ 싶은 생각에 그냥 또 참기도 한다. 각개전투식 방식에 의존하면 해결이 나지 않는 문제가 바로 성폭력이다.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구조적 문제는 ‘구조’로 풀어야 한다. 인식은 구조의 변화로 가능하다. 성폭력을 하면 바로 소멸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걸 관장할 기구가 ‘독립적’으로 세워져야 한다. 외압에도 불구, 신고와 조사, 처벌 기능까지 겸비한, 그런 독립적 기관 말이다. 예를 들면, ‘스포츠공정인권위원회’ 같은 것? 기관만 있으면 될까? 감수성 문제도 동시에 길러가야 한다. 기관 설립으로만 이 문제에 접근하면 많은 이들에게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의 인식만 만들어준다. 궁극적 지향점은 ‘여성 선수도 하나의 인간이다’란 관점이다. 어릴 때부터의 교육도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럼으로써 문화의 층위를 변화시켜야 한다. 인식과 행위의 공유된 형태가 문화다. 현재 선수들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인권 교육 같은 사업은 지도자, 선수, 학부모까지 점점 더 확대해야 한다. 교육의 힘은 의외로 세다.

 

체육계의 성폭력 해결은 장기적 프로젝트

전 사회적으로 펼쳐지는 미투 운동이 의미 있다 보는 이유는 사람들의 인식에 한 공간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과거엔 그랬다. ‘건드려도 별 탈 없겠지.’ 무감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건드리면·····?’ 뒷감당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인식 속에 ‘뒷감당’이란 공간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큰 힘을 발휘한다. 행동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체육계에서도 곧 일어날 미투 운동이 야기할 인식의 변화가 기대되는 이유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인식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며칠 전에 택시를 탔을 때 기사와 미투 운동과 관련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기사의 인식은 명료했다. “재수가 없던 거죠.” 인식이 ‘뒷감당’에 머무르면 이런 답이 나온다. 이제는 ‘여성도 남성과 같은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라는 인식이 뿌리내려야 한다. 지금까지는 아직 ‘뒷감당’ 수준이다. 그것도 아주 미약한 수준으로. 즉, ‘여성 선수를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이라는 인식이 괄호 안에 있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잠잠해지면 이 괄호는 언제든 삭제된다. 제도를 만드는 ‘구조적 접근’과 교육을 이용한 ‘문화적 형성’의 두 축을 중심으로 긴 호흡을 가져가야 할 것 같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숨을 멎게 할 정도의 충격적 사건과 그에 따르는 여러 논의가 반복됨으로써 바뀔 수 있다. 체육계 미투 운동을 기대할 필요도 없이, 지금부터라도 관련 논의와 행동을 취하자. ‘닥치면 그때 하지’라는 습관의 감옥을 오늘 당장 탈출하자. 우리 아들딸들이 운동하기 편한 나라를 만드는 작업,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남상우 님은 스포츠 강국보다는 운동하기 편한 나라를 그리는 스포츠사회학자로서, 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 정책개발실에서 체육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달리기를 하려는 선수의 뒷모습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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