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 > 영화 돋보기 > 혐오를 넘어선 소수자들의 투쟁기

영화 돋보기 [2018.05] 혐오를 넘어선 소수자들의 투쟁기

편집부

 

혐오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소수자들은 쉽게 지워진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업적을 세우기도, 애써 세운 업적을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 이성애 중심 세계 안에서 성 소수자들은 자신을 감추어야 살아남는다. 대부분의 저항과 투쟁이 ‘가시화’로부터 시작되는 이유다. 보여야 존재를 알리고 불합리를 지적하고 인정을 획득할 수 있다. 지워졌던 존재의 역사를 복구하는 것은 그래서 종종 전복이고 투쟁이다.

 

두 영화의 포스터입니다

 

 

미 우주 개발 계획을 이끈 여성들

영화 <히든 피겨스>
감독 데오도르 멜피
출연 타라지 P. 헨슨(캐서린 존슨), 옥타비아 스펜서(도로시 본), 자넬 모네(메리 잭슨)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12월 17일. 미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비행사들을 지구궤도에서 비행시킨다는 내용의 ‘머큐리 계획’을 발표한다. 아무도 가 보지 못한 우주 환경에 최초로 인간을 내보내겠다는 창대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1961년 4월, 첫 우주인의 영광은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에게 돌아갔다. 우주 개발 경쟁에서 한발 뒤진 미국에겐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인재가 필요했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머큐리 계획에 참여한 세 명의 흑인 여성 이야기다. 존 글렌, 닐 암스트롱 같은 남성들의 이름만 줄줄이 새겨진 미국의 우주 개발 역사에 거대한 획을 그었던 세 사람은 NASA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평가되는 천재 수학자 캐서린 존슨, NASA최초의 흑인 여성 책임자 도로시 본,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 메리 잭슨이다. 이들의 이름은 오랜 시간 백인 남성이 주도해 온 기록에 의해 가려져 있었고, 영화는 그들이 만든 역사를 생생한 이야기와 시대 재현을 통해 복구한다.


마틴 루서 킹의 시대이기도 했던 1950~60년대, 미국은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이 일상화된 공간이었다. 흑인은 버스의 앞자리에 앉을 수 없었고, 흑인과 백인은 화장실도 식수대도 따로 썼다. 이런 사정은 첨단의 기술과 천재들이 모였다는 NASA도 다르지 않았다. 유색인종은 별개의 건물에서 일하고 별도의 휴게실과 화장실을 써야 했다.


여성의 사정은 좀 더 심각했다. 10년을 하루같이 일해도 승진 대상에서 누락되었고, 중요한 회의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되기 일쑤였다. 영화는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이중의 차별에 맞선 세 사람이 끊임 없는 노력과 지치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마침내 편견을 극복하고 성취를 이뤄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다.

 

질병을 통해 드러난 차별과 혐오

영화 <필라델피아>
감독 조나단 드미
출연 톰 행크스(앤드류 베켓), 덴젤 워싱턴(조 밀러)

 

질병은 종종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메르스가 크게 유행했던 수년 전, 사람들은 전염원을 밝히는 과정에서 자기 안에 내재된 혐오를 그대로 표출했다. 해외여행을 갔던 여성은 비난을 받고 해외 출장을 갔던 남성은 이해를 얻는 여론 속에 질병 예방을 위한 원칙은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질병을 둘러싼 차별과 혐오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에이즈(AIDS)다. 질병 발생 초기 미국에서는 모든 외국인이 보균자로 의심받았고, 마침내 동성애자들이 낙인을 떠안았다. 1980년대 미국에서 에이즈는 동성애의 다른 이름으로 통했고, 성 소수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또 하나의 억압이 되었다.


할리우드 주류 영화로서는 최초로 에이즈 문제를 다룬 영화 <필라델피아>는 성 소수자이자 에이즈 환자인 변호사 앤드류 베켓과 그를 돕는 또 다른 변호사 조 밀러의 이야기다. 에이즈에 걸린 사실이 밝혀지면서 회사에서 해고된 베켓은 법정 투쟁을 결심하고, 싸움을 마다 않는 변호사 밀러를 고용한다. 영화는 두 남자를 통해 에이즈라는 질병을 둘러싼 편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배제와 외면이 곧 혐오임을 이야기한다.

의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사람들은 이제 에이즈의 원인이 HIV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안다.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전염되지 않으며 꾸준한 투약과 관리로 병세를 호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수차례 보도됐다. 그러나 여전히 에이즈를 향한 시선에는 편견이 묻어있다. 특히 에이즈의 원인이 동성애라는 편견은 1980년대의 미국을 건너 이제 2018년 대한민국에서 활약 중이다. 혐오를 향한 저항과 성취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히든피겨스와 필라델피아 영화 포스터가 있습니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