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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수첩 [2018.05] ① 당신과 나, 로힝야 난민의 희망

글 신혜인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 지구촌 어딘가에는 난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인종, 종교 또는 정치나 사상의 차이로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난민’.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로힝야 난민의 실상을 전한다.

 

영화배우 정우성 씨가 난민촌의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로힝야 난민들의 지금

 

오롯이 그리고 당연히 한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과정이지만,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피신하는 난민들은 대부분 충격과 공포, 완전한 체념의 단계를 거친 후 다시금 일상을 살아갈 기력을 회복한다. 그 동력이 되어주는 것은 희망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은 더 나을 것이라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지만, 태어난 국가로부터 보호받지도 존재를 인정받지도 못하고, 국제 사회의 외면을 받고, 때로는 오늘날의 핍박이 당연한 역사적 결과라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하는 로힝야족에게도 과연 희망이 있을까?


지난해 8월 발생한 폭력 사태 후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로힝야족 난민의 수가 67만 명을 넘었다. 방글라데시 동남부에 위치한 휴양도시 콕스바자르에 세워진 쿠투팔롱 난민촌은 불과 몇 개월 사이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난민촌이 되었다.
로힝야족의 안전한 귀환과 시민권 및 법적 신분증 제공 문제에 대해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정부가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동안에도 난민들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눈앞에서 가족이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집이 불타는 것을 목격한 이들에게 도망치는 것 외에 다른 선택권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2017년 12월, 유엔난민기구(UNHCR)의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정우성 씨와 함께 방글라데시에 위치한 쿠투팔롱 난민촌을 찾았다. 하루에 몇천 명씩 국경을 넘어오는 긴급 상황은 어느 정도 해소된 뒤였지만 여전히 많은 난민이 새로이 도착하고 있었다. 이들을 위한 임시 거처를 세우는 속도가 이들의 도착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많은 가족이 난민 등록지역(registration site)에 며칠씩 머물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난민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참담했다.


그간 여러 난민촌을 방문했고 난민들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한 번도 낙담했던 적이 없다.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한 채 난민이 되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평화를 되찾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 아이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 스스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게 되는 것. 난민들은 각기 다른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소박한 꿈이 난민과 우리를 다르지 않게 했다.

 

하지만 로힝야족 난민들은 달랐다. 남편이 눈앞에서 칼에 찔려 죽는 것을 목격했다는 임산부. 자신을 제외한 버스의 탑승객 전부가 총살당하는 것을 지켜봤다는 소녀. 듣기 괴로울 정도로 잔인하고 끔찍한 경험을 나눌 때도 대부분의 로힝야족 난민은 울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마치 타인의 이야기를 전하듯 감정의 동요도, 삶에 대한 의지도,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꿈도 없는 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로힝야족이 보호받지 못한 이유

 

로힝야족 문제는 최근 불거진 것이 아니다. 그 시작은 19세기 제국주의 시절로, 오랜 전쟁 끝에 미얀마를 식민지화한 영국이 오늘날의 방글라데시인 당시 영국령 인도 벵골 지방에서 살던 로힝야족을 미얀마로 이주시키며 갈등의 씨앗을 심었다. 영국은 미얀마의 다수 종족인 버마족을 쫓아내고 로힝야족을 이주시키는 것으로 보다 손쉬운 식민통치를 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버마족은 일본군과 손잡고 영국군과 싸웠고, 영국은 로힝야족을 무장시켜 버마족과 싸우게 했다. 그 결과 로힝야족은 미얀마 전역에서 많은 버마인을 학살했고, 이후 두 종족은 원수가 되었다. 불교와 이슬람교라는 서로 다른 종교도 둘의 사이를 더욱 벌려놓았다. 영국의 식민 지배가 끝나자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라카인주 일대로 밀어냈으며 이들을 불법 이민자로 규정하고 박해해왔다.


이런 역사적 이유로 국제사회는 그간 미얀마 정부에 로힝야족의 보호 문제를 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로힝야’라는 표현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8월 시작된 미얀마군의 탄압 이후 로힝야족 문제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과 태도에 변화가 감지되었다. 역사나 정치가 아닌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로힝야족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탄압을 반인륜적 범죄로 규탄하고 유엔의 현지 조사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제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의 인권 침해를 ‘대량 학살’의 가능성이 있다며 강력히 규탄했다.

 

로힝야족 난민의 희망

 

국제사회는 로힝야족 난민 지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우기를 앞두고 어려움이 예상되자 유엔 난민기구는 지난 3월, 로힝야족 난민을 위한 미화 2억 3,800만 달러의 추가 기금을 각국 정부에 요청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요청액의 12%에 해당하는 2,800만 달러가 모금되었다. 이 기금을 통해 로힝야족 난민 2,000가정이 폭우 피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으며, 6만 가정이 우기에 대비해 거처를 강화할 수 있는 대나무와 노끈, 플라스틱 시트 등을 받았다.


로힝야족 난민의 구호 활동을 위해 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던 유엔 난민기구 콕스바자르 사무소는 직원 230명이 넘는 사무소로 확장되었다. 이 역시 각국의 지원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오랜 박해에 지치고 당장의 귀환이나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로힝야 난민의 희망은 어쩌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마련되어야 하는 지도 모른다. 이들이 삶에 대한 의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삶을 이어 나가고 꿈을 꿀 수 있도록 우리가 이들의 희망이 되어주어야 한다.

 

국제사회가 정치적 해결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로힝야족 난민이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도록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로힝야족 난민에게 희망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쿠투팔롱 난민촌을 나서는 길에 우리 일행은 연을 날리는 소년과 만났다. 찢어진 비닐봉지와 빈 페트병으로 만든 연을 날리며 소년은 밝게 웃고 있었다. 우리가 이 소년의 웃음을 지켜줄 수 있다. 우리가 이 소년의 희망이다.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소년이 비닐로 만든 네모난 연을 들고 밝게 웃고 있습니다.

 

신혜인 님은 유엔 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에서 공보 담당관으로 일하며 세계 난민들의 어려움을 알리고 있습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배우 정우성 씨가 로힝야족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어 신기해하는 사진과 난민촌에서 한 소년이 연을 날리며 즐거워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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