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 > 들여다보기 > 아픈 것은 나의 탓일까요?

들여다보기 [2018.07] 아픈 것은 나의 탓일까요?

글 배보람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한국 국민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이다. 인구 10만 명당 153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2016년 암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7만 8,194명. 생각해보면 내 주변에도 암 환자가 몇 있다.

 

1

 

 

어쩌면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

최근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친구는 자신의 어머니도 암 투병을 했다고 했다. 아, 유전이었구나. 대장암으로 40대 초반에 돌아가신 이모부는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끊었어야지. 어른들은 혀를 찼다. 미리 검진을 받았어야지. 보험 하나는 젊더라도 가입해뒀어야지. 규칙적으로 운동을 안 했으니까. 밥을 제대로 먹었어야지. 암 진단을 두고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니까, 네가 잘했어야지. 네가 무엇을 했어야지. 네가 책임져야지라고.

하지만 통계청의 이전 발표를 더 살펴보다 보면 의문이 든다. 대략 10년 전인 2007년에는 암 사망자수가 6만 7,561명이었다. 2016년과 1만 명이 넘게 차이 난다. 1996년에는 5만 2,370명, 1987년에는 ‘고작’ 3만 3.238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1987년에 비해 2016년 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4만 4,956명이나 늘었다. 지난 40년 사이에 개인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매일 아침 출근길에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쓴다. 퇴근하는 길에 침대에서 폐암의 원인 물질이라는 라돈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는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리다가 찝찝한 기분이 들지만 간편하니까 하고 넘긴다. 생리대를 사야 하는데, 유기농 면으로 만든 생리대를 사자니 가격이 부담스럽다. 급한대로 1+1 행사를 하는 것을 고른다. 화장품에서 발암물질이 나왔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 화장품을 고를 때는 성분을 확인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하고 사려 하지만 매번 뭔가를 살 때마다 성분을 확인하는 것도 일이다. 책장을 하나 새로 사려는데, 유럽 환경 기준이라는 것이 따로 있단다. 그런데 가격이 비싸다. 좀 더 좋은 것을 사고 싶은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지

이제 우리는 매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선택하며 유해성과 안전성을 고려하게 되었다. 원산지가 어디인지. 첨가물이 무엇인지. 어떤 인증 마크가 있는지. 모두 좋은 제품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안전한 것, 건강한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과 돈과 시간을 써야 한다. 유럽 환경 기준을 적용받는 침대를 골라야 하고, 인증 마크가 들어간 상품을 고르고, 공기가 좋지 않을 때는 공기청정기를 틀어야 한다. 정수기를 사용하고 필터를 교체한다. 왜, 시장에 나오는 물건을 안심하고 고를 수 없는가.

돈이 많다면 더 안전하고 건강한 상품을 쉽게 소비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모두가 안전을 살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불 능력에 따라 불안하고 걱정되지만 어쩔 수 없다. 유해 화학물질이 들어가 있다는 생리대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점심 도시락도, 마스크 없는 미세먼지 주의보도 견뎌야 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아프게 된다면, 누구를 탓할 수가 없다. 단 한 번도 나의 것이지 않았던 저 무한의 선택지들이 나를 비난한다. 그러니까 보다 안전한 것을 골랐어야지.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갔어야지. 그것을 선택하지 말았어야지.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지.

 

2

 

환경 위기의 시대, 환경 정의를 생각한다

지난해 폭염과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사망자와 폭염 영향을 분석해 발표했다. 언론 보도 1에 따르면, 서울의 폭염 평균 횟수가 2009년 1.84회에서 2012년에는 2.96회로 4년 동안 62.1% 증가했고, 이로 인한 사망 위험은 교육 수준이 낮고 가난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8% 높은 것으로 추산되었다. 또한 상대적으로 녹지 공간이 적은 데 사는 사람은 폭염으로 인한 사망위험률이 18% 높은 것으로 나왔다. 주거 공간의 환경과 경제적 수준에 따라 똑같은 더위도 다르게 맞는 것이다.

어떤 마을에는 공원의 비율이 높은데, 어느 마을에는 공장의 비율이 높다. 환경과 기후 위기가 사람들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소득과 지역 불균형에 따라 사람들은 차등적으로 생존의 기로에 놓인다. 환경 위기 사회에서 환경 보전과 환경 정의는,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야 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놓치지 말아야 할 문제다.

이미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모든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킬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지킬 권리가 있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후 1972년 스톡홀름 유엔환경회의는 환경 보전과 인간의 삶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국가와 사회가 이를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우리의 헌법도 35조를 통해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 보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오염의 불평등 그리고 책임

소득에 따라, 지역에 따라 아픈 것이 달라진다면 아픈 것이야 말로 개인의 탓이 아니다. 보편적 환경 문제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으며 동시에 취약하고 가난한 이들의 삶부터 위협하고 있다. 최근 쓰레기 대란을 통해서야,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던 플라스틱 폐기물이 중국으로 수출되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했다. 유럽연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럽이 수출하는 폐플라스틱 중 85%가 중국으로 보내졌다. 아일랜드의 경우 90% 이상을 중국으로 수출했다. 왜 중국의 국민들은 타국의 쓰레기 문제를 떠안아야 했는가. 한국으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왜 환경피해를 유발하는 시설들은 서울에 있지 않는가. 쓰레기 매립장이, 원자력발전소가, 공장과 시설들은 왜 대도시를 비껴가는가.

소비의 주체와 피해의 당사자는 왜 분리되어 있을까. 왜 이윤은 사유화되고 오염은 불평등하게 공유되는 걸까. 불평등한 구조속의 환경 위기는 모든 국민 그리고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환경 권리에 대해 다시 숙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의 환경운동은 생명과 안전의 권리를 보편적 권리로 인식하고 지키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동시에 인권 운동이다. 개개인의 삶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과 조건의 차이가 삭제되고 아픈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환경의 위기가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심각성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저항은 보편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는 정부를 향해야 한다. 이윤을 사유화하는 것만큼 그로 인한 오염의 책임을 기업에 물어야 한다.

 

배보람 님은 환경 운동 시민 모임인 녹색연합의 녹색사회팀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미세먼지로 하늘이 온통 뿌옇게 흐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도시의 전경사진과 산더미 같은 쓰레기들이 끝도없이 쌓여있고, 쓰레기에서 분출되는 유독가스같은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그 위로 허름한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무언가를 주워담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