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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기 [2018.07] 판례로 본 환경권 - 도롱뇽은 왜 소송을 제기했을까?

인권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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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소송을 제기할까? 재판을 통해 법을 근거로 권리나 의무 등을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을 거쳐 결론이 난 사안은 판례로 남아 이후 비슷한 사안이 문제가 됐을 때 판단의 근거로도 적용되기도 한다. 환경과 관련된 판례들을 모아보았다.

 

환경은 자본과 싸운다

1993년. 인천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가까이 들어서는 아파트가 햇볕을 가린다며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당시는 환경권의 개념이 희박하던 때라 햇볕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권리가 맞는지의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았다. 결국 일조권은 인정되었고 현재는 건축물의 높이 제한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세기에 진행된 환경 관련 소송은 대개 대기업 혹은 공장이 지역을 오염시키고,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피해 사실을 입증하면서 보상을 받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로 알려진 PG&E 소송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나고야시 남부 도로변 주민 292인이 공장과 자동차 등이 배출하는 대기오염 때문에 기관지 질환이 생기거나 악화되었다며 도로관리자인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42억 엔의 피해 배상과 차량 배기가스 규제를 청구하기도 했다. 이 소송에서는 기업은 15억 엔을 배상하고 오염물질 배출량을 공개하며 국가는 차선 감축과 자동차 질소산화물 배출량 삭감 등의 대책을 추진하기로 협의했다. 환경 관련 소송은 환경권의 개념 확장에 큰 역할을 했다. 직접적인 피해 외에도 더 큰 개념의 환경 피해와 관련된 소송들이 진행된 것이다.

1997년 미국의 19개 시민단체는 환경보호청장에게 온실가스 규제권을 발동하라는 청원서를 냈으나 거부당했다. 시민단체는 재심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0년 후인 2007년 미 연방대법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매사추세츠 주 정부가 피해를 입었으며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입증되므로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규제로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다고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2004년 6월 11일 캐나다에서는 브리티시 콜럼비아 지방정부가 환경보호구역 내 화재로 산림을 훼손한 벌목회사를 고소했다. 화재로 소실된 나무가 갖는 원목으로서의 시장 가치가 아닌 숲 생태계, 맑은 공기 등이 갖는 자연 자원의 경제적 가치를 포함해 배상하도록 판결한 것이다.

 

도롱뇽, 재판에 실패하다

2003년, 경상남도 양산시 천성산에 사는 도롱뇽이 경부고속철도 공사 중지 가처분 소송에 도전했다. 천성산에 대규모 서식지를 이루고 사는 1급수 환경지표종인 꼬리치레도롱뇽이 고속철도 공사를 위해 산에 터널을 뚫으면서 살 곳을 잃을 위험에 빠진 것이다. 천성산 사찰의 승려들과 환경단체 관련자는 ‘도롱뇽의 친구들’을 결성해 착공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2006년 대법원은 ‘자연물인 도롱뇽 또는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로서는 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소를 각하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홈볼트 카운티 숲을 벌목하려는 목재회사에 맞서 환경정보보호센터가 카운티 숲에 사는 대리석무늬 바다오리와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대리석무늬 바다오리는 위기종 보호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고 자신의 권리로 소송을 제기한 원고 적격이 있으며, 바다오리 생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벌목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동물이 원고로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2004년 캐나다에서는 수질오염 법적 심사가 물에 투입된 물질이 아닌 물에서 사는 물고기 입장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환경단체가 승소한 사례도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아예 강이 법적으로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획득했다. 마오리족은 왕거누이강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1870년대부터 싸웠다. 2017년 뉴질랜드 의회는 이 강이 사람과 동등한 법적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명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강을 오염시킨다면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것과 같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 소송으로 승소한 사례가 흔치 않다. 환경권에 대한 인식 확장이 더딘 데다 외국의 경우처럼 환경단체가 연합하거나, 오리나 도롱뇽과 함께 소송을 할 수 있는 단체 소송 제도도 없기 때문이다. 인식이 판례를 만들고, 판례는 다시 인식을 만든다. 언젠가는 환경 관련 소송에서 도마뱀이 이기는 날이 올 것이고,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일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푸른 계곡과 그 사이를 흐르는 강물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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