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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속의 칼 [2018.08] 법률 용어 속의 차별, 혐오 표현

글 이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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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는 힘이 있다. 사회에서 이미 널리 쓰고 있지만 이미 그 안에 혐오와 차별이 담겨 있는 단어들은 부지불식간에 사회 기저에서 혐오를 재생산하는 힘을 가진다. 특히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법률, 법전 안에서 사용하는 차별적 언어들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법률 용어가 만드는 낙인

『대한민국 헌법』 제34조에는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여기서 ‘장애자’는 ‘장애인’의 차별 표현이다. 두 말의 어휘적 의미는 별 차이가 없지만 ‘장애자’의 ‘자(者)’가 ‘놈 자’로 풀이되는 점 때문에 ‘장애인’과 달리 ‘장애자’는 비하적, 차별적으로 인식된다. 대부분의 법률에서는 ‘장애인’으로 바뀌어 쓰이는 데 비해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는 ‘장애자’라는 차별 표현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다.

『형법』 제269조는 ‘낙태의 죄’와 관련해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낙태’라는 말은 형법 외에도 『약사법』,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등 법률과 시행령에서 쓰인다.

‘낙태(落胎)’는 “태아를 인공적으로 자궁에서 없애버림”의 뜻으로, 태아를 강제로 떨어뜨려 죽게 만든다는 의미 자체가 이미 관련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관련된 사람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러한 법률 용어와 달리 의료계에서는 중립적인 ‘임신중절’을 쓰고 있으며, ‘낙태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임신한 사람이 주체적으로 임신 지속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뜻에서 ‘임신중단’이라는 표현을 쓴다.

‘미혼모’라는 말이 쓰인 법률도 많다. ‘미혼모(未婚母)’는 “결혼을 하지 않은 몸으로 아이를 낳은 여자”의 뜻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 있으나 대응 남성형인 ‘미혼부’는 사전에 없다. ‘미혼모’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행위를 ‘아주 큰 잘못’으로 본 것이다. ‘미혼모’는 그런 큰 잘못을 혼자 책임져야 할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표현인 셈이다. 법률 용어로서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법률 용어의 검토가 필요하다

과거의 『군형법』에는 ‘계간(鷄姦)’이라는 말이 쓰였고, 개정 법률에서는 ‘항문성교’로 바뀌었다. 그동안 쓰였던 ‘계간’은 남성 간의 성행위를 동물 ‘닭’에 비유해 표현한 것으로 ‘차마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라는 비하와 혐오의 함축적인 뜻을 갖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랑’을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로 정의함으로써 성소수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처럼 ‘계간’이라는 표현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군대에서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반발과 부정적 시각이 많은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동물 행위 차원의 ‘계간’이 사라지고 ‘항문성교’라는 용어가 법률에서 쓰임으로써 관련 인간 행위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법률 용어 또는 법률의 언어는 이해하기 쉽고, 친숙하며, 논리적이고, 어문 규정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표현, 인격을 비하하는 표현, 부도덕한 사람 또는 범죄자로 낙인찍는 표현들은 인권 보호에 앞장서야 하고, 최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할 법률 용어로서 어울리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의 잘못한 행위에 대한 규제와 적절한 처벌 내용을 잘 규정해두었더라도 법률이 인권을 경시하거나 침해하는 언어를 써서는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든 바와 같은 문제 표현들이 얼마나 더 들어 있는지, 우리의 법률 언어가 얼마나 인권 친화적인지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이정복 님은 대구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로 <한국 사회에서의 차별 언어>, <사회적 소통망의 언어문화 연구>를 발간, 다양한 언어문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평등, 공정을 상징하는 여인이 눈을 가리고 천칭을 들고 있고, 그 주변으로 판결을 내릴 때쓰는 판결봉, 법전, 법원, 휠체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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