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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수첩 [2018.08] ② 21세기 최악의 인도적 재난, 시리아 전쟁과 인권

글 김재명

 

21세기 접어들어 생겨난 최악의 인도적 재난이라 일컬어지는 시리아 유혈 충돌이 7년째 이어지고 있다. 시리아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상황인지는 통계를 보면 금세 드러난다. 해마다 5만~7만 명 가량의 사망자를 낳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자가 50만 명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국제연합(UN)조차도 2015년부터는 시리아 전쟁 희생자 집계를 포기한 상태다. 일반적으로 전쟁 연구자들이 널리 합의하는 전쟁 개념의 양적 기준은 ‘1년 동안 쌍방 사망자 1,000명’이다. 시리아는 이 기준선을 분쟁 발생 첫해인 2011년에 넘어섰고 2012년에서 2018년에 이르는 7년 동안 해마다 사망자가 1,000명을 훨씬 웃도는 ‘전쟁 중인 국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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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이어진 전쟁은 시리아를 석기시대로 되돌렸다. 피해 상황을 살펴보는 유엔 차량 행렬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제공

 

팔레스타인 웃도는 최대 난민 국가

전쟁은 난민을 낳는다. 시리아 난민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시리아 내전 7년을 맞아 3월 9일 발표한 ‘시리아 분쟁 7년’ 문서에 따르면, 국경을 넘은 난민은 560만 명에 이른다. 시리아 내전의 심각성은 시리아가 세계 최대의 난민을 배출한 국가라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시리아에서 전쟁이 터지기 전 총인구가 2,200만 명이므로, 시리아 국민 4명 가운데 1명이 피난 보따리를 싸고 국경을 넘은 셈이다. 시리아에서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의 난민은 팔레스타인 난민이었다. 유엔난민기구가 해마다 세계 난민의 상황을 집계해 발표하는 <글로벌 동향보고서>(Global Trends Report)에 따르면, 2017년 6월 시리아 난민이 팔레스타인 난민 숫자를 넘어섰다.

국경을 넘은 전통적 의미의 난민(refugee)들과 구별되는 국내 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약칭 IDPs)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시리아의 국내 실향민 숫자는 610만 명으로, 전 세계의 국내 실향민 4,080만 명 가운데 가장 많다. 국내 실향민은 국제구호기관의 도움도 받지 못해 국경을 넘은 난민들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 날마다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한다.

너무나 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낳았기에 ‘21세기 최악의 인도적 재난’이라 일컬어지는 시리아 전쟁의 문제는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리아 전쟁에는 저마다 이해관계를 지닌 여러 외부 세력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시리아의 참극이 몇 해째 이어져온 것은 중동 지역의 패권을 노린 외부 세력들의 개입에도 원인이 있다. 시리아 전쟁은 △유엔의 평화 조성 능력의 한계 △강대국들(미국, 러시아)과 △시리아 주변 국가들(이스라엘, 터키, 레바논)의 이해관계에 따른 개입 정책 △중동 이슬람 국가(사우디아라비아, 이란)들의 지역 패권을 노린 종파적 대리전 양상이 맞물린 가운데 시리아 국민들에게 전쟁의 고통을 더할 뿐이다.

비판의 화살은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시리아에 개입한 강대국과 주변국들로 향한다. 필리포 그란디(Filippo Grandi) 유엔난민기구 고등판무관은 2016년 UN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안토니오 구테헤스(Antonio Guterres)의 후임자이다. 그는 유엔난민기구가 3월 9일에 낸 보고서 ‘시리아 분쟁 7년’ 앞머리에서 시리아 시민들이 그동안 겪은 고난이 국제사회의 ‘부끄러운 실패’ 탓이라고 못 박았다. 시리아 전쟁을 끝내려는 국제사회의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가 굳건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엄청난 비극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그란디 고등판무관이 지적했듯이, 군사적 수단으로 시리아 전쟁을 끝내려면 패자와 희생자만 있을 뿐 승자는 없다. 어느 쪽에선가 “우리가 이겼다”고 선언하더라도 상처투성이일 뿐이다. 누가 이기든 희생자는 분명하다. 분쟁에 휘말려 생목숨을 잃은 시민들, 그리고 죽은 이를 기억하며 슬픔에 잠긴 채로 생존의 벼랑 끝에서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시민들이다.

 

리비아와 시리아의 차이

시리아가 전쟁 상태에서 엄청난 희생자를 냈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제각기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며 시리아 문제를 바라만 볼 뿐 내전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진정성 있는 관심을 보여주지 못해왔다. 시리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소극적 태도는 리비아의 내전에 무력 개입했던 서구 사회의 대응 방식과 대조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리비아에서 내전 양상이 벌어지자, 국제사회는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Gaddafi)의 폭압으로부터 리비아 시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 논리를 내세워 무력 개입의 길을 열었다. 국가 주권이나 국가 안보도 중요한 개념이지만 그에 앞서 ‘인간 안보’의 가치가 더 중요하며 국제사회가 이를 지켜줘야 마땅하다는 것이 알투피(R2P) 논리의 핵심 내용이다. 이에 따라 2011년 3월 2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1970, 1973)이 통과됐고, 북대서양 조약기구 나토(NATO)의 공군력이 리비아 정부군을 공습함으로써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힘을 보탰다.

서구 강대국 지도자들은 리비아에 대한 무력 개입은 ‘인도주의적 개입’의 성격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리비아처럼 똑같이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무장 충돌이 벌어졌고, 리비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린 시리아에 대해선 개입을 망설여왔다.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시리아 개입 결의안에 반대할 것이란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위에서 살펴본 R2P 논리를 못 들이댈 것도 없다.

1999년 발칸반도의 마지막 분쟁 지역이었던 코소보에서 나토(NATO)가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 없이 무력 개입에 나섰던 것처럼, 또는 2011년 리비아를 공습했던 것처럼, R2P 논리에 따라 시리아에 대해 독자적인 무력 개입까지 가능했음에도 소극적이었다. 시리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무력 개입이 무조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은 물론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시리아의 내전을 하루빨리 종식시키려면 군사 개입이 최우선이 아니며, 외교적인 중재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대목에서도 국제사회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한다.

전쟁 초기만 해도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독재 체제는 흔들렸다. 하지만 체제 내부의 단결과 러시아를 비롯한 외세의 군사적 지원에 힘입어, 독재자 아사드는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2016년 무렵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힘의 균형은 깨졌고, 미국과 사우디아리비아 등 지원 세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통합력이 없는 반군은 이제는 수세 국면이다. 시리아 전쟁은 자칫 정부군의 승리로 끝날 조짐마저 보인다.

시리아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고 21세기 최악의 인도적 재앙이 더 커지는 것을 막으려면 어찌 해야 할까. 늦었지만 군사적 해법이 아닌 정치적 해법이 바람직하다. 유엔은 이제라도 정치적 해법으로 시리아 전쟁을 끝장내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흐름대로 시리아 정부군이 군사적 해법으로 전쟁을 끝내도록 해선 안 된다. 하지만 시리아에 개입한 주요국들의 입장이 서로 엇갈린다. 그런 탓에 아사드에게 권좌에서 물러날 명분을 만들어주거나, 물러나라고 압박하지 못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한계로 꼽힌다.

 

‘아랍의 겨울’을 끝내려면

끝으로 짚어볼 사항은 전쟁 범죄이다. 국제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면 시리아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전쟁범죄를 덮어주긴 어렵다. 독재자 아사드가 퇴진을 거부하는 배경은 전쟁범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아사드가 저지른 전쟁범죄 목록은 길다. 화학무기 사용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전쟁범죄는 공소시효나 국적에 관계없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사법권’ 논리가 국제법계에서 힘을 얻는 마당에, 아사드를 전쟁 범죄자로 붙잡아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법정에 세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좀 더 시일이 지나야 될 일처럼 보인다.

지난 1994년 후투-투치족 사이의 내전이 벌어졌던 아프리카 르완다에선 국제사회가 개입을 외면하는 바람에 100일 동안 80만 명이 희생당했었다. 르완다 참상 후 20년이 흐른 지금, 시리아도 르완다와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의 소극적인 개입 탓에 민초들의 희생이 갈수록 커가고 있다. 시리아에 몇 년째 이어지는 ‘아랍의 겨울’을 끝내려면 이제라도 국제사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김재명 님은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와 성공회대 겸임교수로 분쟁 지역의 실상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를 돌아보고 있는 유엔의 차량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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