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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인권위원회 [2018.08] 울타리 밖을 상상하는 연대

글 김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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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거의 1년 만에 다시 ‘인권’이라는 주제로 사람들을 만났다. 오랜만이라는 것보다 더 나를 조심스럽게 만든 것은 오늘 만나는 이들이 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군대 그리고 인권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로 인해 때로 불편해지고 힘들어지는 공공영역 근무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을 만나는 것이 유쾌한 일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의 여러 번의 강의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들은 단단한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인권침해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 그래서 상상 속 강의실은 군복을 입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각을 잡고 앉은 사람들이 있는 무채색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강의실에 들어서며 먼저 건넨 인사를 받아주는 밝은 목소리, 비슷비슷 짧지만 개성이 묻어나는 머리와 편안한 옷차림, 그리고 무엇보다 인권에 대한 관심으로 집중하는 눈빛과 쏟아지는 질문들은 ‘군(軍)’이라는 말에 담긴 나의 편견의 벽을 한순간에 무너뜨려버렸다.

스스로 인권교관의 역할을 찾아 이곳에 왔기 때문에, 또 그렇지 않더라도 맡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달랐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제 부족함과 잘못을 숨기기보다 인정하고 바꿔야 한다는 것, 잘잘못의 문제를 넘어 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5년부터 국방부와 매년 인권교관을 대상으로 인권 교육을 진행해 오고 있다. 군 인권교관들은 각자가 속한 부대에서 인권 교육을 진행한다. 올해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5일을 꼬박 교육에 투자할 정도로 열정을 쏟고 있었다. 연말까지 진행될 교육에 참가했거나 앞으로 참가할 사람은 모두 500여 명이다. 그날의 강의 주제는 인권교육방법론이었다. 인권을 위해, 인권을 통해, 인권에 대해 알려주는 인권 교육이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가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군인도 인권이 있을까

강의 중에 던져진 첫 번째 질문은 “군인도 인권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아요”였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17주년이 되어가는 지금 인권이란 사람 그 존재 자체이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여전히 그 ‘모든 사람’에 나와 다른 심지어 나 자신을 포함하는 일을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 분명히 인권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에는 ‘모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고 언제 있을지 모를 전쟁에 대비해야만 하는 군인은 제외, 미성숙한 존재인 청소년은 제외,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의 주체가 되기 어려운 노인은 제외, 심지어 밖의 사람들에겐 모두 같은 군인일 뿐인데 안에서는 여성 군인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제외, 이제 막 입대한 신입 병사는 제외, 직업 군인은 제외…

질문을 던진 그는 군 시설이 보안 시설이라는 이유로 사진 촬영이 가능한 휴대전화를 시설 내에서 휴대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예로 들며 그 정도는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인권이 침해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내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되물었다. “정말 모든 장소를 외부인에게 보여줄 수 없나요? 식당이나 교육장 내부도? 가까이에서 꽃이나 얼굴을 찍어서 도저히 찍은 장소를 알 수 없는 경우에도 보안시설에 대한 부적절한 외부 공개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는 없지만 외부 유출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을 텐데,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어쩌면 모두가 그 규정을 어길 수 있다는 가정으로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린 휴대전화의 휴대를 전부 금지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조치일까요?”

종종 사람들은 묻는다. 인권이 충돌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제한이 필요하면 제한해도 되는 것 아닐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늘 하나다. 그 상황을 잘게잘게 나눠보라고, 각 당사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 또는 그 당사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그러면 이해관계의 충돌은 발견되지만 지켜야 할 가치의 순서가 보이고, 서로 존중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풀어나갈 실마리가 보일 것이라고. ‘원래 그런 것’은 없으며, 인간의 존엄보다 우선 할 가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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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에서 나오는 힘

두 번째 질문은 우리를 허탈하게도 했지만 ‘함께’의 중요성도 알려줬다.

“달라지지 않을 것 같고, 문제의식은 있지만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만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고,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런 질문은 거의 모든 교육에서 나온다. 인권침해를 당한 당사자들은 여러 번의 두려운 경험으로 인해, 그리고 직간접적으로 반(反)인권, 비(非)인권, 무(無)인권의 문화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 단단해 보이는 구조로 인해 체념을 먼저 학습하고 순응이 몸에 배어서다. 하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와 함께하고픈 사람들에게 내뱉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권 교육 방법의 실제 사례를 보여주기 위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해 2005년 개봉한 단편 애니메이션 <별별이야기 1> 중 ‘동물농장’을 봤다. 농장 밖에서 혼자 생활하는 염소가 농장 안에서 살고 있는 양들과 친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번번이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다 자살을 결심한다는 내용이다.

교육은 영화를 보다가 염소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순간 화면을 멈추고 그 이후를 상상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과 다르다(열등하다: 염소에게는 곱슬곱슬 멋진 양털이 없고, 보기 흉한 뾰족한 뿔이 있기 때문에)는 이유로 염소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양들에게 똑같은 차별이나 고통의 순간을 경험하게 하거나 외톨이 염소를 위해 한 무리의 염소 떼를 준비한다고 한다. 아니면 양 무리 속에서 특히 용감하거나 평등사상으로 무장한 멋진 양이 나타나 염소가 양떼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한다. 그것이 권선징악이고 현재의 틀을 크게 무너뜨리지 않는 방식이며 영웅의 탄생배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상에 커다란 물음표를 던진 이들이 있었다.

“그냥 염소가 처음 시도했던 것처럼 자신의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여러 번 교류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양들 몇몇이 서서히 설득, 이해되어 결국엔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결론으로 가면 너무 뻔한 정답 같아 별로인가요?”

“꼭 염소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야 할까요? 울타리는 보호도 의미하지만 갇힘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울타리 밖 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양들에게 그 즐거움을 이야기해줘서 양들도 울타리 밖의 세상을 상상하게 하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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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들의 대답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끊임없이 그 가치와 필요성을 설명해내야 하고, 또 이미 짜인 틀을 가끔은 완전히 새롭게 뒤집는 상상을 그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함께 시작할 수 있는 단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충분하다. 5일 동안 새로운 도전에 두렵고 설렐 참가들에게 내가 더운 여름 시원한 바람 같은 지지로 늘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는 이유다.

 

김태은 님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군인의 복무사진과 군화에 짓밟히는 ‘인권’이라는 글씨의 그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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