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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권 [2018.08] 모두를 위한 디자인, 일상에 자유를 주다

글 이수진

 

‘장애인에게 편한 것이 모두에게 편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유니버설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체적 불리함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성별, 연령, 국적,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가 편하게 쓸 수 있는 제품과 사용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도 하며 유사 개념으로 ‘배리어프리 디자인(Barrier Free Design)’이라고도 한다.

 

왜 유니버설 디자인인가?

몇 년 전 라식 수술을 했을 때 일이다. 수술 직후에는 거의 앞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후유증이 심했다. 잠깐이지만 앞을 볼 수 없었던 그 시기의 세상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이전의 친근한 공간이 아니었다.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가 무엇인지, 안약은 제대로 넣고 있는 것인지, 또 곳곳에 높은 턱들은 왜 이리 많은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제까지 쉽고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작은 행동들이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수많은 편리함은 사용자가 본래의 행동 범주를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는 순간, 전혀 편리하지 않아진다. 문제는 이 사용자의 행동 범주가 사소한 부상을 입거나 하는 일상의 소소한 변화에 의해서도 너무나 쉽게 튕겨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특정한 디자인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디자인과 관련한 기본원칙을 뜻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를 가진 특수한 계층을 위한 특별한 조건이라기보다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의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이너는 대상에 일시적인 장애를 겪는 사용자를 비롯해 임산부와 어린이 그리고 노인을 포함한 우리 삶의 일부분 혹은 많은 부분과 소통해야만 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최초 움직임은 1960년 미국과 유럽에서 비슷한 시기에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베트남 전쟁으로 사상 유례없는 수의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자 이 엄청난 부상자들을 사회에 복귀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것을 미국형 유니버설 디자인의 태동으로 보고 있다. 한편 같은 시기 북유럽은 급속하게 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었으며 이 고령화된 사용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위한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주창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로널드 메이스(R. L. Mace) 교수이며 그 또한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연령과 능력에 관계없이 모든 생활자가 일상생활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디자인이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의 핵심이다.

 

장애인을 위한 욕실2

 

일상에 자유를 놓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고 있는 다양한 유니버설 디자인을 살펴보면 모든 생활자가 일상생활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핵심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손잡이 모양을 손의 방향과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양손잡이용 가위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휠체어를 탄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버스, 키가 작아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지하철 손잡이, 손아귀 힘이 약한 사람을 위한 레버형 손잡이 등이 있다.

다양한 차이점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는 환경으로 변해감에 따라 점차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환경과 제품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의 유니버설 디자인은 경제적 가치, 복지적 가치로서도 재평가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유니버설과 배리어프리 시장을 형성했으며 고령화 사회로 갈수록 이러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제품과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또한 복지적으로도 그 가치가 높은데,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삶의 질을 확보하고 인간의 권리를 회복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사회적 통합을 가능케 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더 크다 하겠다.

수년간 유니버설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며 느낀 것은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노년의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디자인, 노안으로 시력이 약해져 침대 머리맡에 놓인 약병에 적힌 글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될 나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유니버설 디자인이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디자인이 아닌 나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더 애정 어린 시선과 관심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Universal design과 Barrier Free Design’의 차이점
배리어 프리가 장벽을 명시함으로써 경계를 긋고 논의를 출발하는 반면 유니버설 디자인은 처음부터 보편성을 지향하는 차이가 있음.
(변민수, 남용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상반기 수시과제 자료집, 2007)

 

이수진 님은 새활용플라자 유니버설 디자인 자문단 및 배리어프리와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 (주)디자인리서치801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휠체어 이용자도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욕실 사진과 장애인과 노인 등 모두가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경사를 낮추고 미끄럼 방지 홈을 만든 경사로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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