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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기 [2018.09] 제도와 현실 사이, 난민법

글 황필규

 

시리아 난민보트

 

2015년, 시리아 난민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해변가에 놓인 한 시리아 난민 아동의 죽음을 보면서 국민들은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파리 테러를 거치면서 정부와 언론은 시리아 난민을 반드시 도와줘야 할 피해자에서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기 시작했다. 약 30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단지 시리아 출신 성인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 반년 가까이 억류됐다. 정부는 난민을 공포의 대상으로 낙인찍고 폐쇄된 공간에 가두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우리의 난민 문제 해결 방식

2018년, 예멘 난민들이 제주공항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다. 평소보다 많은 수의 난민에 정부는 당황했다. 정부는 출도제한조치로 이들을 제주도에 가뒀고, 의식주를 해결할 길이 없어 거리로 나섰던 이들은 곧바로 두려움과 편견의 대상이 됐다. 혐오 세력이 가세하면서 무슬림 난민은 여성과 자녀의 안전, 일자리 보호에 대한 위협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정부는 범죄 우려 등에 ‘특별순찰’, ‘마약검사’, ‘SNS계정 제출’로 대처했고, 난민 추방 주장에 대해 ‘국민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메시지로 답했다.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 국민에 대한 위협 세력으로 낙인찍고 이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

한국은 정치적 박해를 피해 조국을 떠나야만 했던 난민들이 만든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나라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의 공식 난민지원기구 중 하나인 유엔한국재건기구(UHKRA : 1950년~1960년) 등이 국내 난민/피난민 보호에 나서주지 않았다면 한국은 계속 존립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정치적 난민이었던 김대중 씨는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현재도 ‘한국 국민’인 다수의 탈북자가 난민에 대한 국제적 보호를 필요로 하고 있다. 국가의 성립과 그 존립, 국가의 지도자, 국민의 보호가 국제적인 난민 보호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져왔던 한국에서의 난민 보호는 역사적, 시대적 지상명령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1992년 12월 3일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했고, 난민법을 제정했다. 한국은 난민협약 가입 후 거의 10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최초의 난민을 인정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인구 10,000명당 난민수용 인원은 0.04명으로, 전 세계 모든 난민 수용국 중 139위에 해당한다. 한국의 난민심사 결정자 대비 난민인정자 비율인 난민인정률은 통산 4.1%이고, 2017년 기준 난민인정률은 1.51%에 불과하다. 2017년 전 세계 24.1%, 유럽연합 33%, 그리고 트럼프 정권하의 미국 난민인정률이 약 40%에 이르는 것과 비교할 때 난민의 보호를 논하기에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난민신청자 제도를 악용하는 소위 ‘불법체류자’라는 바라보는 인식이 난민 관련 행정을 지배하고 있다. 난민으로서 본국에서 박해 가능성이 있는지 만을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짜 난민신청자로 이들을 낙인찍고 이들에게 2차적인 가해를 가한다.

 

난민을 ‘인정’하기까지

‘난민’의 인정은 박해 가능성의 입증을 핵심으로 한다. 기존 일반적인 법체계와 뚜렷이 구별되는 입증과정에서의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난민신청자에게 유리한 사실을 확보하고 제시할 의무가 심사 당국에게 있다는 점, 난민신청자 진술의 신빙성을 전제로 그 사실 여부가 불분명할 때에는 ‘유리한 해석에 의한 이익’을 난민신청자에게 부여한다는 점, 박해 가능성이 50%보다 낮더라도 어느 정도 합리적인 가능성이 있다면 난민인정이 되어야 한다는 점 등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정부와 법원도 형식적으로는 이러한 법리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하나 기존 결정례들의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이 부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은 난민인정 절차의 공정성, 투명성, 신속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이것이 제도의 남용을 방지하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우선 1차 난민심사를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난민심사관은 전국적으로 38명에 불과하고 이들 대부분은 짧은 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부실한 통역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난민신청자의 진술의 온전한 전달, 출신국 정황 정보의 정확한 파악, 난민협약과 난민법의 취지에 맞는 난민 인정과 법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갖춘 난민심사관, 통역인 등이 확보되어야 한다.

현재 난민 심사에서의 이의신청기관은 난민위원회다. 그런데 이는 결정기관이 아니라 단순한 심의기관에 불과하고 위원 구성도 대부분 난민법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소수의 정부 관료와 민간인으로 되어 있다. 사실상 서면심의가 원칙이고 난민신청자가 직접 진술할 기회는 보장되지 않는다. 난민신청자가 제출한 자료가 아닌 담당 공무원의 보고서만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한 번 심사할 때 수백 건을 다룬다. 이의신청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능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다. 이의신청 절차가 독립된 불복 절차로 기능하려면 무엇보다 1차 심사기관인 법무부로부터의 인적·물적 독립을 보장하고 충분한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난민법은 ‘난민’의 정의에 ‘대한민국에 입국’을 포함시키면서 난민신청자가 입국 전 출입국항에 있는 경우는 난민신청자가 아닌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즉 입국심사 통과 전 난민 신청 시에는 이에 대해 난민 심사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회부/불회부 절차라는 기이한 제도를 두고 있다. 불회부 결정을 통해 난민심사는 회피되거나 거부된다. 2017년에는 단 10%만이 회부결정을 받았다. 회부/불회부 절차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이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불회부 사유 최소화, 구제절차 마련, 처우 개선, 구금 최소화 등이 시급히 요구된다.

 

난민 구출 장면

 

사회통합 그리고 난민

난민법의 ‘인도적 체류’는 난민협약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국제적인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충적 보호’를 규정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난민법은 사실상 인도적 체류 자격 심사 및 부여 여부 모두를 법무부 장관의 재량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도적 체류 자격이 부여되어도 단지 체류할 수 있고 취업 허가를 신청할 수 있을 뿐이다. 인도적 체류 제도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보충적 보호’에 걸맞게 난민인정절차에 준하는 절차가 보장되어야 하고, 그 처우에 있어서도 난민인정자에 준하는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난민신청자의 권리는 극히 제한되어 있고 포괄적 지원 계획은 없다. 생계 지원과 취업 허가 모두 당국의 재량 사항으로 규정되어 있고, 기타 사회적 지원도 원론적인 언급 정도만 있을 뿐이다. 난민 법령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까지도 걸릴 수 있는 난민인정절차에서, 한국에 존재하는 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2017년 난민신청자 중 약 5%에 대해서만 생계비가 지급되었다. 생계 지원과 취업 허가제도의 개선을 통해 난민신청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생존의 위협이라는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난민인정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회 통합을 통한 예측 가능하고 정신적·물질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사회 통합을 위한 특별한 고민과 계획이 부재하다. 단순히 기존 법제상의 사회보장 등의 적용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은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 난민인정자들이 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난민인정자들이 처한 경제, 사회, 문화적 어려움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지원을 제시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난민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그저 보통 사람일 뿐이고, 다만 박해받을 위험성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놓였고 따라서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일 뿐이다. 머물 수 없기에 떠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상황에 놓인 보통 사람들, 난민을 사람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우리의 편견과 공포, 혐오와 차별을 극복할 수 있다.

 

황필규 님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난민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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