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 > 말속의 칼 > 노인이 싫은 나라 혐로(嫌老) 사회

말속의 칼 [2018.10] 노인이 싫은 나라 혐로(嫌老) 사회

인권편집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인을 ‘노인네’나 ‘영감탱이’라고만 불러도 난리가 났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더 심한 혐오 표현이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 틀딱(틀니를 사용하는 것을 빗댄 표현), 연금충 등의 표현을 써가며 ‘나는 저렇게 늙느니 죽겠다’고 말하는 젊은 사람들. 이 혐오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일러스트

 

혐오는 이유가 있는가

다른 모든 혐오가 그런 것처럼, 노인 혐오 역시 혐오를 선동하는 이들은 제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줄을 서지 않고 새치기하는 사람 열 명 중 아홉은 노인이고, 막무가내로 사람을 손으로 밀치는 노인도 적지 않아 기분이 상할 때가 많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또 지하철에서 일면식도 없는 노인이 “젊은 여자애가 어디서 다릴 꼬고 앉아 있냐”며 정강이를 차서 당황했다는 경험담을 털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이런 ‘꾸중’은 주로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는 약자, 즉 어리고 약해 보이는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많은 이가 지적하는 문제점이다.

특정 집단을 혐오 표현으로 부르는 이들은 대개 일부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절대 전체 집단이 아니다. 하지만 ‘맘충’이 그랬듯이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혐오는 해당 집단의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 된다. ‘~하지 않은 사람은 ??충이 아니다’라는 말이 늘 따라붙지만 예로 든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은 비단 노인만이 아니다. 무례한 젊은 사람도 있으며,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면 “나보다 직장 다니는 젊은 사람이 더 피곤하죠. 괜찮으니 앉아요”라는 노인도 적지 않다. 다른 노인이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 것 역시 대개는 노인이다.

노인이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될 때면 언제나 나오는 말이 있다. ‘누구나 늙는다. 지금 노인을 혐오하는 너도 시간이 지나면 같은 대우를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말은 공감을 얻지 못하며 해결 방법도 아니다. 오히려 청년들은 자신이 노인이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다.

 

노인이 되는 것이 두려운 사회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노인인권 침해와 그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했다.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 1,000명과 19~64세 청·장년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노년층보다 청년층이 상황을 더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9~39세의 청년층 80.4%가 ‘우리 사회가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있고 이 때문에 노인인권이 침해된다’고 대답했다. 같은 문항에서 ‘그렇다’고 대답한 노년층의 응답률이 35.1% 것을 감안하면 2배가 넘는 수치다. 노인-청년 간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청년층은 81.9%인 것에 반해 노년층은 44.3%만 그렇다고 대답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청년이 훨씬 더 심각하게 혐로 현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인식은 일자리나 연금, 복지 비용 등이 원인이다. 청년 56.6%가 ‘노인 일자리 증가 때문에 청년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고 했으며 77.1%는 ‘노인 복지 확대로 청년층 부담 증가가 우려된다’고 대답했다. 노인 세대 부양에 직접적인 부담을 지는 젊은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노인에 대한 반감이 결국 차별과 혐오를 낳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가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 문화에 대한 반감보다 젊은 세대에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노인 복지 혜택은 그 세대가 젊었을 때 내는 세금으로 미리 해결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는 이도 있다. 이런 경제적 해결책을 바탕으로 세대별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을 파악해 갈등 요소를 줄인다면, 지금 청·장년 세대가 노인이 되었을 때 혐로 현상을 지금보다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너도 늙는다’보다 실제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