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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수첩 [2018.10] ②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사회

글 윤애숙

 

무허가촌

 

가난한 이들과 부유한 이들의 소득 변화가 사상 최악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18년 1/4분기 소득 10분위(소득상위 10%)의 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7%가 늘어난 반면, 소득 1분위(소득 하위 10%)의 소득은 12.2%가 하락했다. 직전인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하면 106만 7,000원에서 84만 1,000원으로 무려 21%나 감소했다. 상위 소득의 증가 폭과 하위 소득의 하락 폭 모두 관련 통계가 있는 2003년 이후 가장 크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정부의 대책

정부는 지난 7월 13일 제56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이하 위원회)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우리 사회 가장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운영 방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회의다. 그러나 회의 참가자들은 현재 빈곤층의 삶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위원회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의 선정 기준과 보장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 중위소득을 겨우 2.09% 인상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18년 역사상 세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구체적인 금액으로 보면 수급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1인 가구의 최대 생계급여가 2018년 50만 1,000원에서 51만 2,000원으로 고작 1만 원 상승하는 의미이다. 최악의 빈곤층 소득 감소 결과가 발표됐는데도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위원회가 수급자들의 삶을 개선해야 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7월 18일에는 빈곤층 소득 하락 대책으로 저소득층 일자리·소득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소득 지원 대책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계획 조기 시행과 소득 하위 20%에 대한 기초연금 조기 인상을, 일자리 대책은 노인일자리 확대와 자활사업 참여유인 제고를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계획 조기 시행을 통해 해소를 기대하는 사각지대는 겨우 7만 명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는 부양의무자가 장애인인 경우 생계·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가 노인인 경우 생계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매우 조잡한 내용이다.

수급당사자의 여건보다 부양의무자의 여건을 우선시하고, 이에 따라 임의로 순서를 정하는, 논리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기초연금 조기 인상에도 여전히 기초생활수급자 노인들은 기초연금 금액만큼 수급액이 깎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가 계속된다.

자활사업은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한 이들 중 정부에서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한 수급자들이 참여하는 일자리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2019년부터 자활근로 참여자의 급여 단가를 최저임금 대비 현행 70%에서 80% 수준으로 인상하고,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생계급여 수급자에게 자활근로소득의 30%를 소득인정액에서 공제하여 환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활사업 참여자들은 최저임금 대비 57%, 39%로 매우 낮은 급여를 받고 있어 80%로 임금이 상향되는 이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2004년 자활사업 도입 당시 자활사업 일자리의 급여는 가장 높은 일자리의 경우 최저임금 대비 125%, 가장 낮은 일자리도 85%였다. 이번 대책의 내용은 제도 도입 초기에 시행하던 수준보다도 후퇴했을뿐더러, 최저임금의 의미도 퇴색시키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을 바꾸기 위한 진짜 대책

빈곤사회연대는 여러 단체와 함께 빈곤층의 삶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대책을 요구안의 형태로 이미 여러 번 전달했다. 빈곤층의 소득이 하락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요구안을 전달했고, 위원회가 열리기 전 수급자들의 삶에 대한 책임감 있는 논의를 촉구하며 요구안을 전달했다. 그동안 전달했던 요구 내용을 짤막하게나마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우선,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의 조속한 이행이 필요하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정부에서도 인정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사각지대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대통령의 공약이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조속한 폐지를 직접 약속했다.

그러나 임기 일 년 반이 지나도록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로드맵조차 발표되지 않고 있다. 2015년 7월 교육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고, 올해 10월부터는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다. 그러나 수급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의 폐지는 여전히 요원하다.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지체 없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가 시급하다.

둘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낮고 까다로운 선정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 2015년 7월 개별급여를 도입하면서 정부에서는 급여별 선정 기준에 상대적 지표를 활용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결정된 기준 중위소득 대비 급여별 선정 기준은 기존의 낮은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설정하고, 심지어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 또한 매우 낮아 개편 전 최저생계비 인상률에도 미달하고 있다. 또한 살고 있는 집의 보증금마저 재산 기준을 적용하여 소득으로 환산하는 이해할 수 없고 복잡한 소득인정액 산정 방식으로 인해 제도에 접근조차 못하는 이도 많다. 지나치게 낮은 선정 기준과 복잡한 제도 운영 방식은 굳건한 장벽이 되어 수급이 필요한 이들을 사각지대에 가둔다. 법이 명시한 대로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난할 때 신청할 수 있도록 선정 기준을 즉각 개선해야 한다.

셋째, 강제근로 폐지와 안정적인 공공일자리 도입이 필요하다. 자활사업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 빈곤층의 자립과 자활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실상은 모순된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근로능력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결과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나오면 자활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생계급여가 제한된다. 사실상 노동이 강제되고 있는 셈이다. 2010년 도입된 근로능력평가 업무가 2012년 12월 국민연금공단으로 이관되면서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되는 비율이 무려 3배가 증가했다. 갑자기 근로능력 있는 사람들이 수급을 신청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받은 이들은 일하기 곤란한 상황이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이의신청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수급권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거나 건강을 크게 해치기도 한다. 수급자가 자립·자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참여를 원하는 이들에게 장벽 없이 제공되어야 하고, 기간의 제한이 없어야 하며, 참여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참여했을 때 실제 삶이 개선될 수 있는 임금과 조건이 제공되는 일자리이다.

 

남은 것은 행복의 의지와 결단

최근 <한겨레>의 올해 온열 질환자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건강보험 가입자 10만 명당 온열 질환자는 4.96명, 의료급여 수급권자 10만 명당 온열질환자는 19.19명으로 4배 가까이 많았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해서 아프고, 가난해서 죽고 있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2조의 7에 따르면 ‘최저생계비’란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그러나 빈곤층의 현실은 소득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건강하지도 못하고, 문화적인 삶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의 가혹한 현실은 이미 드러난 지 오래고, 정책이 가야 할 방향도 명확하다. 남은 것은 정부의 의지와 결단뿐이다

 

윤애숙 님은 빈곤 없는 세상, 누구나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위해 싸우는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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