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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바꾸는 일상 [2018.10] 다른 이름, 같은 정신. 동등한 명예를 달다

인권 편집부

 

koica 카자흐스탄 활동

 

여태까지 군 기관이 아닌 곳에서 병역 복무한 공익근무요원은 사망·부상 시에도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을 수 없었다. 국가를 위해서 복무한 건 마찬가지인데 군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차별은 정당한 것일까?

 

병역의무 이행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명예?

박사과정 수료를 한 학기 앞둔 한 대학원생이 2002년 3월 병역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잠시 휴학하고 입대했다. 그리고 외교부 산하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발탁되어 신병 교육 훈련을 받은 후 카자흐스탄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카자흐스탄 어느 지역의 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주 임무였다.

구한말 조선인들이 강제 이주되었던 곳이기에 그는 더욱 성실한 자세로 강의에 임했다. 한국어과 신설을 위해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한 달여 전, 비극이 일어났다. 2인조 강도가 숙소에 무단 침입하여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병역의무를 수행하다 어느 날 갑자기 빛을 잃고 세상을 떠난 그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고 기리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그렇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국가유공자라는 명예를 얻지 못했다.

이러한 KOICA 국제협력요원의 사망 사례는 단 한 번에 그치지 않았으며, 대개 ‘단순 사망’으로 처리되었다. 나라를 위해 병역을 수행했으나 이들은 고맙다는 흔한 말조차 듣지 못한 채 스러졌다. 그 배경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10여 년 늦게나마 되찾을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일정 자격 요건을 충족한 병역의무 대상자가 군 복무를 대신하여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서 지원 및 활동할 수 있는 공익근무제도를 운영해왔다. 국제협력요원으로 선발되면 개발도상국에 파견되어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일반 병사들과 달리 국가유공자 심사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국가유공자법이 행정관서에서 근무한 공익근무요원에 한해 심사 자격을 부여한 탓이다. 이러한 규정은 KOICA 국제협력요원 제도가 폐지된 2013년에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유족들은 단순 사망 처리된 배경이 바로 법적인 제한 때문이라고 억울함을 토로해왔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오랜 논의 끝에 지난 8월 제29차 상임위원회에서 사망한 국제협력요원이 국가유공자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국가유공자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제협력요원은 복무 기관이나 지역이 행정관서요원과 다를 뿐 국익을 위해 병역의무를 이행했으며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자’이므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들은 국익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양성한 인력인 동시에 복무 관할 및 지원의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점도 군인과 다름이 없다. 국제협력요원을 국가유공자 심사 대상에서 원천 배제하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평등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외국에서 복무하다가 국제협력요원이 희생되는 사례가 단 한 번에 그친다는 보장은 없다. 때문에 이제라도 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고통받아 온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물질적인 보상도, 10여 년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 가족이 나라를 위해 일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가 아닐까?

국가인권위원회는 사망한 국제협력요원이 국민으로서 동등한 명예와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보훈처와 병무청에도 적극 협력할 것을 요청했다. 이번 권고한 개정안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한다. 희생에는 경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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