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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인권위원회 [2018.10] 난민, 생소한 이름의 새 이웃

글 유소연, 이상희

 

일러스트

 

인권상담조정센터에서 근무하다 보면, 민원을 통해 특정 시기의 핫 이슈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올해 여름 초입부터 우리를 달군 이슈는 단연 ‘제주도의 예멘 난민’이었다. 6월의 마지막 이틀간 우리는 한껏 ‘뜨거워진’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들을 만났다.

 

아흐마드를 만나다

난민들을 상대로 한 상담은 이틀간 진행되었다. 첫째 날은 제주이주민센터에서 만났고, 둘째 날은 난민들의 숙소로 직접 찾아갔다. 질문은 크게 네 가지였다. 주거, 생계 등 시급히 지원 필요한 사항은 무엇인가? 출도제한으로 인한 피해는 어떤 내용인가? 임시취업을 하는 데 어떤 어려운 점이 있는가? 현재, 인권침해나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면, 어떤 일을 겪었는가? 난민들과 상담하기에 앞서 언어가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제주난민센터 측에서 통역사를 제공해주었다. 통역사는 두 명이 한 팀을 이루었다. 우리가 한국어로 질문을 하면, 제1통역사가 한국어를 영어로, 다시 제2통역사가 영어를 아랍어로 통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우리 팀의 아랍어 통역사는 예멘 난민 당사자인 아흐마드(가명)였다. 한국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질문에, 예멘에서 한국 드라마를 매우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제주도에 올 때 아내와 8개월 된 아들과 함께 왔다며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히 이즈 쏘 큐트(He is so cute)!” 아빠를 닮아 커다란 눈이 매우 예쁜 아기였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아흐마드는, 한국에 오기 전 공항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난민들이 예멘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교사, 학생,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트 관리자, 자동차 정비사 등 다양한 직업이 등장하였다.

법무부는 예멘 난민들에게는 특별히 취업허가를 내준 상태였는데, 대부분이 어업 분야로 취업이 연계되고 있었다. 이마저도 일자리가 없어 난민 중 일부만이 취업 가능했다. 그러나 어렵게 취업을 하고도 금방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번 바다로 나가면 뱃멀미를 참으며 배 위에서 며칠씩 지내야 하고, 하루 18시간씩 몇 십 ㎏이 되는 짐을 들고 날라야 하기도 했다. 배타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적응하기에는 매우 힘든 조건이다. 먹고사는 것이 어딘들 힘들지 않겠냐만,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한들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힘이 갑자기 샘솟을 리는 없다.

아흐마드의 경우에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기 때문에 며칠씩 집을 비워야 하는 고기잡이 일보다는 적은 돈을 받더라도 아침저녁 출퇴근할 수 있는 직업을 얻고 싶어했다. 마침 다행히 건물 청소 일자리를 구해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센터사진

 

 

그들은 무상 지원을 바라지 않는다

난민들 중에는 건강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당뇨나 신장 질환 등 긴급한 의료 조치가 필요한 사례들부터, 예멘에서 총에 맞아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진단서와 몸에 난 상처를 우리들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전쟁이라는 힘든 경험을 한 사람들인지라 몸이든 마음이든 한번 찾아온 병을 쉬이 떨어내지 못하는 듯했다.

한국에 온 이후로 차별이나 인권 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한국 사람들이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해주고, 친절하다고 입을 모았다. 포털사이트의 기사 댓글이나 상담센터로 들어오는 민원 내용을 보면 난민에게 적대적인 의견이 많았는데, 난민이 직접 만난 한국인들은 다들 친절하다니 조금 의외이면서도 다행이었다. 이 점이 출도제한 해제가 필요한 이유가 될지 모르겠다. 난민들을 일반 국민으로부터 계속 격리시키다 보면 국민들이 난민을 직접 접하며 이해할 수 있는 기회마저 가지지 못하고, 왜곡된 정보를 통해 받아들인 부정적인 이미지만 남게 되지 않을까? 사실 우리도 이들을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면, 인터넷이나 각종 SNS에 올라오는 정보들이 진실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다음날은 우리가 직접 난민들이 지내는 숙소에 찾아가 상담을 진행했다. 비가 오는 데다가, 이날 오후에 제주시청 앞에서 난민 수용 반대집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해서 이주민센터로 찾아오는 난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숙소는 제주도의 평범한 동네에 위치해 있어, 밖에서만 보면 예멘 사람들이 단체로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아마도 다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히 지내는 듯했다.

난민들의 주거 형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자비를 들여 호텔에 묵거나, 제주도민의 집에서 신세를 지거나, 제주이주민센터에서 제공하는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주거 문제 역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는데, 호텔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머지않아 돈이 다 떨어질 상황이었고, 집을 내어준 제주도민들은 지쳐가는 상황이었으며, 이주민센터 역시 무제한으로 쉼터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주도민의 집에서 지내고 있던 난민들은, 신세를 지게 되어 집주인에게 매우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시급히 지원이 필요한 사항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다들 공통적으로 주거, 생계비, 취업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출도제한이 풀려 일자리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자연스레 취업 문제가 해결 될 것이고, 취업해서 돈을 벌면 생계비와 주거비 모두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들은 무상 지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센터 사진

 

 

그들의 문제, 우리의 문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난민신청자들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출도제한조치이다. 그러나 급격한 국내 난민신청자의 증가로 인하여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신청자들의 출도 허가가 보류되었고 2~3개월이 지나도록 다른 방법 없이 제주도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이다. 제주도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500여 명의 난민 신청자들은 난민 수용 여부가 확정되기 전까지 ‘어떻게든 섬 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대다수의 예멘 난민이 예멘에서 가지고 온 재산을 이미 제주도 체류 비용으로 지출하여 당장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당장 오늘 밤 잘 곳이 없어 길거리로 나앉게 되는 처지의 난민신청자들도 있었다. 체류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고 고정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한정된 지역에서 그 많은 일자리가 당장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관광지라는 특성상 제주도의 물가는 난민신청자들이 긴 기간동안 감내하기 힘든 수준이다.

이 와중에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일자리가 있어도 어업 등의 고된 육체노동이라 난민신청자들이 거부하고 있다는 내용의 뉴스들이 퍼져나갔다. 과연 정말 난민신청자들이 일명 ‘3D 업종’이라 불리는 일자리들을 거부하고 있어서 생활고를 겪고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정말 ‘출도제한조치’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는지, 오히려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난민신청자들과 내국인 간의 오해가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궁금했다.

숙소에서의 집단 상담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틀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작별인사로, 취업 면접을 앞둔 아흐마드에게 행운을 빈다고 짧게 인사했다. 좀 더 길게 그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었으나 짧은 영어 실력이 못내 아쉬웠다.

우리가 난민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동안, 광화문에서는 ‘자국민 안전과 자국민 보호, 진짜 난민 보호, 가짜 난민 추방’이라는 구호를 내건 난민수용반대 집회가 열렸다.
난민을 수용하면 자국민이 위험해지는 걸까?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난민’이 될 수 있는 자격은 과연 무엇일까? 난민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은 비단 몇몇 단체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2018년 6월 13일부터 한 달 동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하여 난민법 폐지 청원에 참여한 사람이 71만 명을 넘어 게시판 개설 이래 최고 기록을 세웠다.

난민의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당장에 시급한 주거와 의료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난민 인권 향상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소연, 이상희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담조정센터에 근무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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