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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권 [2018.10] 니키 드 생팔의 행복한 ‘나나’

글 이문정

 

작품1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은 화려한 문양으로 뒤덮인 풍만한 여성상인 <나나 Nana> 시리즈로 우리에게 익숙한 미술가이다.

‘나나’는 과거 프랑스에서 여성을 속되게 부르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단어다. 그런데 니키 드 생팔의 <나나>들은 그런 폄하로부터 자유로워 보일 뿐 아니라 즐겁고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나>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작업을 진행했을까? 사실 ?미술을 만나기 전까지- 니키 드 생팔의 삶은 행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는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 생활 방식을 고수했던 아버지로 인해 억압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열한 살 때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했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순탄하지 못했다. 성장 후 그는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육아의 어려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 때문에 괴로워했다. 끝내 그의 우울증은 입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그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가부장적 제도와 규범을 포함한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니키 드 생팔은 정신 병원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미술을 통해 자신의 공포와 분노, 울분, 상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는 어떤 대안도 얻을 수 없었던 그가 행할 수 있었던 최선은 미술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는 것뿐이었다. 그는 미술가로서의 활동에 전념했고 작업을 통해 성(性), 인종, 권력 등에 의해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정해지는 현실과 그것에 순응해야 하는 상황에 저항할 수 있었다.

그가 미술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1960년대는 보편적인 기준과 정답을 강요했던 전통적인 세계관에 대한 비판, 고정되고 경직된 위계 구조와 불평등을 조장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자기반성이 일어났던 때이다. 이런 시대적 변화 역시 니키 드 생팔의작업에 힘을 실어주었다.


 

작품2


니키 드 생팔을 미술가로서 주목받게 해준 <사격 회화 shooting painting> 시리즈는 아상블라쥬1)나 조각등에 물감 주머니를 설치하고 총을 쏴 물감이 흐르도록 하는, 퍼포먼스와 회화가 결합된 작업이다. 니키 드 생팔 자신이 겪었던 성폭력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권력,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죽이는 상징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그는 <사격 회화> 시리즈에서 당시의 냉전, 전쟁 등과 같은 정치·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내기도 했다. 한편 <밀로의 비너스 Venus de Milo>(1962)에서는 미의 상징인 비너스 상에 구멍을 내고 물감으로 더럽힘으로써 여성에게 부과되었던 미의 기준을 공격했다. 이는 감상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수동적인 여성의 범주에서 벗어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니키 드 생팔은 보편적인 미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 여성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여성상을 만들었다. 여성은 항상 착하고 유순해야 한다는 사회 통념을 거스르고 성적 대상으로 존재하길 거부한다는 의미였다. 또한 남성 중심적 사회가 강요해 온 착한 아내, 자애의 어머니로서의 삶이 여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은유하는 것이기도 했다.

작품3


임신한 여성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나나>는 니키 드 생팔의 이전 작업과 달리 매우 활기차고 역동적이다. 가슴과 엉덩이가 강조된 작품들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근원적 어머니, 긍정적인 여성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검은 나나 Black Nana> 시리즈는 역사 속에서 이중으로 타자화되고 소외되었던 흑인 여성의 전형성을 해체시켰다.

다양한 피부색의 <나나>들은 외모도, 성도, 인종도 인간 존재의 우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없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나>는 세상 속 모든 여성, 나아가 삶에 지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즐겁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것 같다.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삶은 의미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아름다운 존재라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니키드 생팔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을 꿈꿨다.

 

1) 아상블라쥬: 폐품이나 일용품을 비롯하여 여러 물체를 한데 모아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기법 및 그 작품.

 

이문정 님은 미술평론가이며, 한국 동시대 미술을 연구하는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의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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