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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속의 칼 [2018.11] 다문화를 겉핥는 혐오 발언

글 장한업

 

유럽평의회가 1995년에 발간하고 2016년에 개정한 상호문화교육 『교육 자료집(Education Pack)』에 의하면 현대 사회의 현실을 ‘차이’라고 규정한다. 현대 사회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차이가 점점 부상하고 있다. 이는 민족, 국적, 종교, 성, 성 정체성, 장애, 언어, 문화 등 많은 영역에서 대두된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주의, 사회집단 중심주의, 민족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타인의 차이를 부정하거나 무시한다. 다시 말해 차이를 가지고 차별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차별은 개인적, 제도적, 문화적, 언어적 차원 등 여러 방면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이중 언어적 차원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그것은 곧 혐오 발언으로 이어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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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200만 시대,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혐오 발언은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억압을 부추길 목적으로 이뤄지는 의도적인 폄하, 위협, 선동 등을 담은 발언을 말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 발언이 급증하고 있다. ‘새끼’, ‘튀기’, 반쪽짜리 한국인’, ‘너희 나라로 돌아가’ 등 목적 없는 혐오 발언이 난무한다. 혐오 발언을 줄이기 위해서 는 외국인들이 어떻게 한국에 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 지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1990년대까지 한국은 이민이 많은 나라였다. 재외 동포가 743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54년 한국의 경제력은 아프리카 최빈국 수준이었다. 그렇게 가난에 찌들다 못해 1960년대부터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이 시작됐다. 도시에는 공단이 만들어졌고, 농촌에서는 새마을운동이 펼쳐졌다. 그렇게 밤낮으로 일한 결과 놀라운 속도로 경제력이 성장했고 마침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한편 기적의 뒷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했다. 이제 먹고 살 만하게 되자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소위 3D업종은 외면받기 시작했다. 시골에 살던 여성들이 도시 공단으로 취직하기 위해 상경하면서 농촌에는 노총각 문제가 심각해졌다. 일명 농촌과 도시 사이에 ‘사회적 공백’이 생겨난 것이다. 결국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결혼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 외국인은 2016년 2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충청남도 도민 수와 맞먹는 숫자로, 남한 인구의 4%에 해당한다.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출산율은 전 세계 최하 수준이며, 고령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2030년에는 외국인 주민의 비율이 10%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10%는 매우 의미 있는 수치다. 외국인 주민이 10%를 넘어서면 내국인과 외국인의 갈등은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이때 갈등은 사회적 혼란을 양산하고 경제를 악화시켜 엄청난 액수의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게 된다.

예상이 맞다면 그때를 대비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12년 남짓이다. 다가올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뭔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출산율을 높이는 일, 고령화를 막는 일? 하나같이 어려운 일이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100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더 하락했다. 서울의 합계 출산율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고령화는 자연적인 현상이라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다.

이제 남은 방법은 내국인과 외국인의 관계를 개선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관계 개선은 누가 주체가 되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당연히 절대 다수인 한국인의 몫이라 할 수 있다. 4%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의 사람에게 관계를 개선하자고 하면 비웃음만 살 뿐이다. 또한 우리가 외국인들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단지 수 때문만은 아니다. 관계 개선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한국 생활이 힘들면 귀국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다. 살아도 여기서 살아야 하고,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 한다.

 

차별을 조장하는 너와 나의 차이

내국인과 외국인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한국인의 단일의식부터 완화해야 한다. 한국인의 단일의식은 엄청나게 강하다. 단일의식은 지난 50년간 실시해 온 단일성 교육의 소산이다. 1968년부터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나라의 발전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는 국가주의를 주입했고, 1972년부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통해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할 인간을 만들었다. 결정적인 것은 초·중등 교과서였다.

교과서란 교과서에는 하나같이 ‘자랑스러운 단일민족’, ‘우수한 단일민족’이 언급됐다. 암기 위주의 교육 체제에서 교과서의 위상은 절대적이었고, 학생들은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이 표현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러한 일련의 교육적 조치로 인해 한국인은 너나 할 것 없이 매우 강한 민족 중심주의자들이 돼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족주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중심적이듯 모든 민족도 자기중심적이다. 다른 민족을 자기 민족보다 앞세울 멍청한 민족도 없다. 따라서 민족 중심주의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지나칠 때 발생한다. 민족주의가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를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기고, 다른 민족의 문화는 열등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런 사람들에게 다른 민족과의 차이는 그저 없애거나 축소해야 할 정도쯤으로 여겨진다. 결국 차이가 차별을 낳는 셈이다.

예를 들어 2012년 언론에 소개된 정 군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정 군의 아버지는 러시아로 유학을 갔고 거기서 러시아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불행하게도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정 군 형제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 서울에 사는 조부모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서울로 데려왔다. 정 군이 학교에 들어가자 정 군은 차별의 대상이 됐다. 친구들은 정 군에게 ‘러샤’, ‘튀기’, ‘러시아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며 따돌렸다. ‘러샤’라는 말은 ‘러시아’의 약자라고 쳐도, ‘튀기’는 정말이지 심한 욕이다. 본래 이 말은 수사자 라이언과 암호랑이 타이거 사이에 태어난 ‘라이거’처럼 동물에게나 쓰는 말이다. 이런 말들은 칼이 되어 정 군의 가슴을 찔렀다. 정 군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마침내 자퇴하고 말았다. 정 군은 할머니의 권유로 검정고시를 치렀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곳도 다르지 않았다. 무시와 차별은 계속됐고 정 군은 이를 견디지 못해 다시 자퇴를 택했고, 이번에는 가출까지 감행했다. 할머니는 가출한 손자를 찾으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죽음은 정 군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고, 마침내 인근 연립주택에서 수차례 방화를 시도하고야 만다. 그는 범죄자가 되어 법정에 섰고, 할아버지는 법정에 선 손자를 보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정 군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분명 한국 사람인데, 주변에서는 나를 한국 사람도 아니고 러시아 사람도 아니라고 한다. 나는 반쪽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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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긍정적 접근법, 문화 의식 성찰

위 사례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첫째, 정 군은 왜 무시와 차별을 받아야 했는가. 가장 큰 이유는 외모가 달랐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러시아 사람인 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 둘째, 누가 정 군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는 바로 ‘러샤’, ‘튀기’ 따위의 말로 놀린 아이들일 것이다. 셋째, 누가 이 아이들을 키웠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기성세대들이다. 어른들의 지나친 민족 중심주의가 자녀들에게 전수됐고, 자녀들은 물려받은 의식의 흐름대로 정 군을 차별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 사건의 공범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슬픈 이야기가 하나둘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외국인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해 무시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은 지금 4%라는 극소수의 입장이라 ‘더러워도 참고’ 있겠지만, 10%가 되면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마치 정 군이 무시와 차별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방화를 한 것처럼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일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나친 단일의식을 완화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일한 민족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2003년 일본 국립유전자협회에 따르면 한국인의 혈액에 한국인 특유의 DNA는 40.6%에 불과하고, 중국인 특유의 DNA가 21.9%, 일본인 특유의 DNA가 19%나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18.5%가 정체불명의 DNA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단일민족이 아니라 혼혈민족에 가깝다. 다만 비슷한 외모의 민족끼리 섞여서 겉으로는 표시가 잘 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문화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단일문화가 아니다. 우리 문화 중 단일문화라고 자처할 수 있는 것은 한글 정도일 것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김치는 임진왜란 전후로 일본에서 전래한 고추와 임오군란을 계기로 중국에서 전래한 호배추의 합작품이다. 그 속에 일본이 있고 중국도 있다. 결혼식에 가면 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어머니는 한복을 입고 하객을 맞는다. 한 사람은 서양식이고 다른 한 사람은 동양식이다. 장례식에 가도 마찬가지다. 남자 상주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여자 상주는 검은색 한복을 입는다. 조문객도 검은색 옷을 입고 오니 상주는 팔에다 완장을 차는 것으로 구별한다. 이것은 일본식이다. 서양에서도 장례식에 검은색 양복을 입지만 완장을 차지는 않는다. 거기서 완장을 차면 히틀러 추종자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가 단일민족이 아니고 단일문화를 가진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른 민족이나 그들의 문화는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 즉, 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것은 타문화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자문화에 대한 이해다. 이 부분이 전제되지 않은 한 다른 민족에 대한 이해는 한갓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차이를 긍정적으로 접근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문화 의식을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자신의 문화 의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 타인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렇게 받아들인 타인의 문화는 자신의 문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타인의 문화는 곧 자신의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화와 타인의 문화를 넘나들게 되면 감정 이입은 물론 역지사지의 능력이 생긴다. 이 능력을 갖추면 타인에 대한 무모한 혐오 발언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유럽의 상호문화교육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장한업 님은 이화여자대학 교수이자 다문화연구소 소장으로서 상호문화교육을 확산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는 커다란 저울의 한쪽에는 돈을, 다른 한쪽에는 두팔로 감싸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소년이 있습니다. 돈이 있는 쪽의 저울은 높이 위치한데다 예쁘고 좋은 집이 있고 ,소년쪽은 낮게 기울어졌고 주변에는 소년을 비웃는 듯한 표정의 가면들과 병아리들이 있는 그림과. 서로 다른 색상의 사람들이 손에 손을 맞잡은 그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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