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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

마음 속 사람 [2018.11] 내전에서 피운 꽃
-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

인권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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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에 48명의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나라가 있다. 극심한 내전을 겪은 콩고민주공화국(이하 콩고)이다. 그곳에서 네 차례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이가 있다.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Rebecca Masika Katsuva),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49년 삶을 돌아다본다.

 

전쟁 도구 성폭력에 맞서다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는 1966년 5월 26일 콩고 동부지역 남키부주의 작은 마을인 카타나에서 태어났다. 무역업자와 결혼했고 상점을 운영하며 평범한 중산층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1998년 제2차 콩고 전쟁이 벌어졌다. 20여 년 동안 이어진 콩고 내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지역 분쟁이다. 그해 10월 무장한 남성들이 마시카의 집에 들이닥쳤다. 재산을 약탈하고 남편을 살해한 뒤 그녀와 두 딸을 성폭행했다.

“밤 11시경 모든 게 시작됐다. 이웃집에서 비명이 들렸지만 도망갈 데가 없었다. 마침내 그들이 들이닥쳤고 모든 걸 강탈했다. 남편의 토막 난 시신을 내게 모으게 한 뒤 그 위에 나를 눕혔다. 12명 째에 이를 무렵 옆방에서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어린 두 딸과 여동생의 목소리였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수일이 지나 깨어난 마시카는 그제야 딸들의 임신 사실을 알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1999년 마시카는 자신의 집을 ‘경청의 집’이라 이름 짓고, 교전 지역의 성폭행 피해 여성과 그 가족을 위한 피신처로 삼고 그들을 보살폈다. 국제인권단체가 그들을 지원했고, 그들의 집은 50채가량으로 늘어 마을공동체가 됐다. 그곳에는 평균 150~200명가량의 피해 여성들과 약 84명의 아이들이 생활했다. 이들은 공동체에서 농사를 짓고 함께 먹고 자고 학교에 다녔다. 마시카는 여전히 분쟁지역에 찾아가 피해 여성과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성폭행 피해로 태어난 18명의 아이도 입양했다.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그녀는 ‘마마 마시카’로 불렸다.

 

죽음의 땅에서 피어난 희망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콩고 전쟁에서 성폭행은 반군과 정부군 할 것 없이 전투의 한 방편처럼 태연하게 자행됐다. 시간당 48명의 여성이 성폭행 당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그렇게 전쟁의 최약체이자 희생양은 여성이었다.

마시카는 2006년 이후 세 차례나 더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전쟁의 참혹한 피해자이면서 생존자였다. 그녀는 2010년 국제앰네스티의 여성과 아동 인권상인 ‘지네타 세이건’ 상을 받았다. 끊임없는 공격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성폭행 생존자와 아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돌본 공로였다. 2012년에는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정신대문제대책협의외가 함께 설립한 나비기금 첫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삶이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끔찍한 일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모두 나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2013년 아일랜드 더블린 국제인권단체 ‘프런트라인 디펜던스’ 행사에서 그녀가 남긴 말이다. 2016년 2월 2일 향년 49세,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는 말라리아와 고혈압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세상과 작별했다.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는 전쟁과 폭력의 상흔에 굴하지 않고 가장 용감하고 기품 있게 저항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취약함의 총체였으며 동시에 희망의 총체였다. 덕분에 콩고의 여성들 또한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참혹한 죽음의 땅에 뿌리내린 그녀의 애민정신은 시들지 않는 값진 열매로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참 고생 많았다. 그녀의 49년을 위안한다.

 

 

이 글에는 반팔 원피스를 입고 커피콩을 두손에 담은채 다소곳이 앉아서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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