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 > 인권수첩 > ① 나도 좋은 사람 만나 사랑하고 싶다

인권수첩 [2018.11] ① 나도 좋은 사람 만나 사랑하고 싶다

글 윤가브리엘

 

-

 

누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살다가 몸이 아프면 치료받고, 치료받아 건강해지면 일하고, 그렇게 일상을 지내다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며 살아야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이 평범하고 당연한 일들이 HIV 감염인(이하 감염인)에게는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할 것 같다.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내 몸속 어딘가에 있는 에이즈 바이러스 HIV(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는 10년 넘게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꾸준히 약을 복용해 바이러스가 억제됐고, 그 결과 혈액검사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고 있다. 치료제의 발달로 HIV/AIDS는 이렇게 긍정적으로 진화했다. 약만 잘 복용하면 아플 일이 없고, 건강관리만 잘하면 100년 인생도 가능하다. 전염성도 확률로 따질 수도 없을 정도로 희박해진다.

에이즈는 과거 치료가 안 되는 무섭고 위험한 병에서 이제 치료가 잘 되고 위험성이 매우 낮은 만성질환으로 변모했다. 치료제가 개발된 지 23년이 지나는 동안 전 세계의 수많은 임상 연구와 건강하게 살아가는 감염인들이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에이즈를 ‘무서운’ 병으로 인식하고, 감염인은 ‘위험한’ 인물로 간주된다.

졸지에 위험인물이 돼 버린 내가 갈 수 있는 병원은 감염내과가 있는 종합병원이다. 에이즈와 무관하게 감기에 걸렸거나 치과 등의 진료는 예약이 힘든 종합병원이 아닌 동네 병원을 이용하고 싶다. 하지만 에이즈에 무지한 대중들처럼 의료인조차 감염인을 위험한 인물로 여겨 진료를 거부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결국 1·2차 병원의 진료 거부를 피해 감염내과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가는데, 이곳에서도 타과 진료 수술 등을 거부하는 일이 생긴다. 중이염 수술을 거부하고 혈액 투석을 거부하고 치과 진료를 거부했다. 각기 다른 병원에서 발생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된 사건들이다. 진료 거부를 피해 종합병원까지 갔는데 또 진료 거부다. 상처 위에 또 상처를 얹은 감염인에게 남은 곳은 공공의료기관밖에 없다.

공공의료기관이 남아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종합병원에서 거부당한 감염인이 국립의료기관에서 중이염 수술을 받고, 혈액 투석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공공의료기관도 감염인을 거부한 적이 있어 마냥 안심할 곳은 아니다. 2014년 질병관리본부가 에이즈 환자의 장기 요양사업을 위해 지정한 요양병원이 환자 사망 사건, 인권 유린 등의 문제로 위탁계약이 취소됐다.

이후 전국 시·도립 요양병원 33곳에 감염인의 입원을 문의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요양이 필요한 환자는 아직도 갈 곳이 없어 종합병원에 단기 입원하며,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떠돌아다니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이 요양이 필요한 감염인을 거부한 것도 심각한 문제인데, 최근에는 재활 치료가 필요한 감염인을 거부한 사태까지 벌어졌다.

 

오로지 입장 금지

에이즈로 인해 시각장애와 편마비가 생긴 감염인을 담당 의사가 재활 치료하기 위해 국립재활원에 입원 의뢰했다. 국립재활원은 “해당 감염인의 면역력이 약해 격리실이 필요한데 일단 격리실이 없고, 다인실에 입원하려면 면역 수치가 200 이상 돼야 한다”며 입원을 거부했다. 앞이 안 보이게 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감염인은 재활 치료를 위해 약을 복용하면서 면역 수치를 200으로 끌어올렸다. 담당 의사가 다시 입원을 의뢰했다. 그런데 이번엔 관련 ‘과’가 없어서 안 된다는 이유로 또다시 입원을 거부했다.

국립재활원의 변명은 황당했다. 거부 이유가 관련 ‘과’인 감염내과가 없는 것이라면, 당뇨환자나 암 환자들도 관련 ‘과’가 없어서 재활 치료를 거부하는지 묻고 싶다. 거부하지 않는다면 관련 ‘과’가 있는지 묻고 싶다. 국립재활원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잊은 것 같다. 이참에 상기시키자면 국립재활원은 재활 치료를 하는 곳이지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다. 일터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약을 잘 복용해서 건강해지면 일을 해야 한다. 일해야 살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또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일해야 한다. 하지만 감염인을 거부해 이미 쫓겨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소문이 나서 견딜 수 없게 된다.

또 직장에서의 무분별한 에이즈 검진이 감염인의 일할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에이즈 검진이 포함된 직장 내 건강검진은 감염인에게 직장 해고 검진이나 다름없다.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의 건강검진에 에이즈 검진이 포함돼 있으면 감염인은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렵게 입사 시험에 합격했어도 입사 전 채용 신체검사에 에이즈 검진이 포함돼 있어서 입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비감염인은 직장을 선택할 때 최우선으로 임금이나 노동 조건 및 전망 등을 고려하지만 감염인은 직장 건강검진에 에이즈 검진이 포함돼 있는지를 살핀다. 직장 건강검진에 에이즈 검진을 포함하는 건 법적 근거도 없고 이유도 불분명하다. 오히려 불법에 해당된다. 아래 조항은 벌칙조항이다.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HIV 검사 결과를 요구해서도 안 되고, 검진기관 또한 HIV 검사 결과를 사업주에게 알리지 않는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8조 2(검진결과의 통보)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관한 검진을 실시한 자는 피검진자 본인 외의 자에 대하여 검진 결과를 통보할 수 없고(제1항)”,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관한 검진 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제3항)”고 규정하고 있다.

법에서 감염인의 취업을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 예방법 제18조(취업의 제한) 1항에는 “감염인은 제8조제1항에 따라 그 종사자가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는 업소에 종사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감염인이 성매매를 못 하게 하기 위해 성병 및 에이즈 검진을 해야 하는 업소에 취업을 금지한다. 하지만 이 업소에서 성매매가 아닌 주방 일이나 음식, 음료를 나르는 등의 단순한 종업원으로 일할 수도 있는데, 아예 취업을 금지하는 건 차별이다.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

한국 사회에서 감염인은 위험한 인물이면서 부도덕한 인물이다. HIV의 주된 감염 경로가 성 접촉이란 이유로 에이즈는 성적 문란함의 결과물로 낙인찍혀 있다. 사람들은 감염인과 성관계를 하면 전염될 거란 공포가 있다. 그 공포에 부합한 법 조항이 예방법 제19조 전파 매개행위의 금지 조항이다. 이 조항은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 매개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이를 위반할 시 처벌한다. 체액을 통한 전파 매개행위가 성관계를 의미하는데 이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를 통해 바이러스가 미검출되면 전파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고, 여기에 콘돔까지 사용하면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약을 복용한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해도 전파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전파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의 성관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건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다. 또 감염인이 전파 매개자란 편견을 조장하고, 낙인을 심화시킨다.

더 큰 문제는 이 법 조항을 악용해 감염임을 고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법 조항은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인 1987년 예방법을 처음 제정할 때 만들어졌다. 의학이 발달한 지금으로선 시대에 뒤떨어진 법 조항이다. 감염인이 약을 잘 복용해 치료하면 건강하게 아이도 낳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감염인은 차별과 인권 침해를 당해도 문제 제기가 어렵다. 자신이 위험하고 부도덕한 인물이란 이미지를 드러내야 하고, 해결 방법도 소송 말고는 딱히 없다. 감염인을 차별로부터 보호할 법과 제도가 절실하다. 보건복지부는 예방법에 에이즈를 이유로 진료 거부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의 차별금지 사유에 병력을 넣어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감염인의 차별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인권증진을 위한 의견도 피력해야 한다.

비감염인은 할 필요도 없는 말을, 감염인은 온몸으로 외친다. “나는 아플 때 제대로 치료받고, 건강한 몸으로 당당하게 돈도 벌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고 싶다.”

 

윤가브리엘 님은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의 대표이자, HIV/AIDS 감염인 인권 활동가입니다.

 

 

이 글에는 에이즈를 의미하는 빨간 리본을 사람들이 포근하게 감싸안은 손모양의 사진이 있습니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