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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원칙을 살피다

책속의 인권 [2018.12] 지금 그리고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원칙을 살피다

글 이지선

 

인권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개발한 개념이다. 차별과 배제, 억압과 학살이 아무렇지 않던 시절을 통과해오면서 어떻게든 공존해보려고 만들어낸 언어다. 당연하게도 하나의 개념이 언어로 정착해 온전히 모두의 것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세계인권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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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그리고 인권의 역사를 만든 목소리

 

제랄드 게를레 외 그림
목수정 옮김
문학동네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를 담다

지난 2016년, 목수정의 번역을 통해 새롭게 독자를 만난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 세상에 나온 세계인권선언 전문과 각 조항을 아티스트들의 일러스트와 함께 꾸린 책이다. 부제에 쓰인 그대로 인권에 대해 말하는 국내외 저명인사의 말들, 그리고 각계각층의 일반인 99명의 이야기를 실었다. 역사 속 인물부터 내 옆의 누군가까지 아우르는 말의 모음들은 짤막하지만 제법 큰 울림을 준다. 그 안에 역사의 장면들이, 오늘의 풍경이 서려 있기 때문일 테다.

생각해보면 이 책의 탄생은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그 순간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세계인권선언만 해도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시작된 인류 공존을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고, 그 이전인 1789년 이미 프랑스에서는 혁명의 와중에 인권선언을 선포했었다. 그래서인지 세계인권선언 제1조와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는 상당히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동등한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나며, 인류애의 정신으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며 살아간다.
사회적 구별은 오직 공공의 필요를 위해서만 허용된다.


 

혼란할수록 중요한 것은 기본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아직 자유와 존엄은 모두의 몫이 아니다. 이성과 양심은 필요에 따라 동원된다. 인류사는 그렇게 이뤄져왔다. 이해관계가 얽힌 세상사는 종종 합리성을 허수아비로 만든다. 사람들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선언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은 힘이 센 쪽으로, 가진 것이 많은 쪽으로 자꾸 기울어간다. 그러므로 선언문 하나가 가진 힘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발표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세계인권선언은 당위로 직조된 말잔치라는 비판을 받았고, 받고 있다.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서슴지 않는 이들이 국가의 수장 자리에 오르고 혐오범죄가 횡행하는 세계에서 인권은 여전히 휘발되기 쉬운 상태로 놓여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 당위의 언어들이 중요하다.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원칙과 기본이 중요한 법이다.

 

소란을 위한 단단한 원칙

언제나 그랬지만, 차별과 혐오 그리고 인권을 이야기할 때 더욱 소란한 한해였다. 연초부터 갑질 논란으로 사회가 들썩이더니 수년간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확장돼 온 여성들의 목소리는 ‘미투(Me Too) 운동’과 ‘동일범죄 동일처벌’, ‘낙태죄 폐지’ 문제를 기점으로 들불처럼 커졌다. 곳곳에서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혐오의 목소리도 볼륨을 높였다. 전국 각지에서 진행된 퀴어축제 현장엔 혐오와 차별을 말하는 이들이 달려가 훼방을 놓았고, 난민 문제를 둘러싼 배제의 언어들이 인터넷 게시판마다 쏟아졌다. 모두가 인권을 말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말하는 것은 아닌 상황. 원칙과 기본이 부족한 우리 사회가 드러내는 적나라한 풍경이었다.

세계인권선언 작성을 이끌었던 엘리노어 루스벨트는 말했다.
“너무 작아서 세계지도에서 보이지도 않는 곳. 내가 사는 집, 내가 사는 동네, 내가 다니는 학교, 내가 다니는 회사…. 작은 곳에서 인권을 구하는 시민들의 힘이 없다면 더 큰 세계에서의 진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권을 구하는 길은 쉽지 않다. 인권에 대한 보편적 개념에 대한 공감과 동의가 부족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집에서, 동네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인권을 구하는 목소리가 없다면 더디게 진보해온 인류의 역사는 빠르게 후퇴하고 말 것이다. 소란해서 반가운 한해였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좀 더 소란해져야 한다. 세계인권선언은 그 소란을 위한 단단한 원칙이 돼줄 것이다.

 

 

이 글에는 세게인권선언 책 이미지가 있습니다. 책 표지는 많은 사람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한 사람 어깨 위에 한 남자가 올라서서 한 소녀를 두 손으로 받치고 있습니다. 소녀는 토끼를 안고 있고 토끼는 당연한 우리 권리를 찾기 위해라고 쓰인 피켓을 높이 들고 있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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