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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3 <특집> [2019.07] 보편적 출생 등록, 모든 아동의 권리

글 이탁건

 

모든 아동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자신의 출생 사실을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아동의 출생 등록을 보장하는 ‘보편적 출생 등록 제도’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이주아동은 한국에서 출생했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에 출생 신고가 막혀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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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락 없는 출생 등록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 제2항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모든 어린이는 출생 후 즉시 등록되고 성명을 가진다(제24조 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보편적 출생 등록 제도’ 또는 ‘보편적 출생 신고 제도’라고 불리는 제도가 바로 모든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제도다.

출생 등록은 아동 권리 보장의 첫 단추라고 불리기도 한다. 자신의 출생 사실이 공적인 장부에 등록돼야만 연령, 가족관계, 국적 등 법률상의 신분이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출생 등록의 유무와 상관없이 태어나면 당연히 인간으로서 지위가 인정된다. 하지만 공식적인 등록 절차가 없다면 자신의 법률상 신분을 증명하고 인정받기 힘들어진다. 아동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국가가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방접종,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 등의 국가 안전망 안에 포함되기도 힘들다. 영아 유기, 신생아 매매 및 불법 입양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도 국가가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의 법과 제도는 한국 국적 아동들의 출생 등록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지 않다. 자녀의 출생 신고에 대한 책임을 1차적으로 부모에게 맡기고 있는데, 부모가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 국가의 감독과 개입이 미흡하다. 2016년 개정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아동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검사가 부모 대신 아동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으나 아직까지 이 조항이 적용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경우 정부가 아동의 출생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애초에 부모가 자녀의 출생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든 알리지 않은 경우라면 국가가 이를 알기 어렵다. 많은 국가에서 아동의 출생 사실을 부모의 선택과 무관하게 국가가 인지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에 ‘출생 사실 통보 의무’를 갖게 한다. 즉, 분만에 관여한 의사 등 의료기관이 공공기관에 아동의 출생 사실을 통보하게 하는 것이다. 일단 출생 사실을 인지한 공공기관은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신고를 조속히 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지난 5월에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 정책’에 포함된 ‘누락 없는 출생 등록’이 바로 이러한 방식의 제도로 보인다. 이러한 제도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면 최소한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아동들의 출생 등록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출생 통보제가 도입되면 미혼모들이 병원에서의 출생을 기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출생 신고가 강제되면 미혼모에 의한 아동 유기가 확대될 것이라는 선입견을 뒷받침할 실증적인 근거는 없다. 미혼모가 고립된 상태에서 출산하지 않도록 사회적·제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원칙을 기본 전제로 해야 한다. 또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신뢰 출산제’ 등 보완적인 장치의 도입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주아동 출생 등록

아동의 출생 등록에 있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외국 국적 아동들의 출생 등록이다. 한국의 법과 제도는 외국 국적 아동들의 출생 등록에 대해 정해진 것이 전혀 없다. 한국 정부는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들은 본국 대사관을 통해 출생 신고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출생 신고하기 어려운 외국인이 많다. 본국 정부의 고문·체포 등의 박해를 피해서 한국으로 도망친 난민들, 아직 난민 지위가 결정되지 않은 난민 신청자, 인도적 체류자 등이 대표적이다. 자신에 대한 박해의 주체였던 정부를 찾아가 자녀의 출생 사실을 신고하기 힘든 난민도 많다. 또 난민들의 출생 신고를 대사관이 제대로 처리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난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자국 대사관에서 출생 등록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해 출생 신고를 포기한 아동들이 존재한다. 미등록 체류 상태라는 이유로 대사관에서 출생 등록을 거부한 경우, 부모의 국적부가 말소돼 자녀의 출생 신고가 불가능한 경우, 부모 국가의 법에 따라 미혼모의 자녀는 출생 등록이 불가능한 경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외국 국적 아동의 출생 등록이 되지 않는 사례가 계속해서 목격되고 있다. 자신과 무관한 사정으로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들은 사실상 무국적 상태에 놓여 어느 국가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각종 유엔 인권기구들의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 의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바로 외국 국적 아동에 대한 ‘보편적 출생 등록 제도’의 부재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대사관에 출생 신고하면 된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외국 국적 아동에 대한 출생 신고 제도를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로 ‘사회적 합의의 부재’라는 이유를 대고 있다. 대사관에서 출생 등록이 불가능한 아동들이 있다는 사실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모든 아동의 출생 사실을 등록해야 한다’는 매우 단순한 당위보다 ‘사회적 합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출생 신고만으로 아동에게 한국 국적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며, 보편적 출생 등록 제도 도입이 한국 사회·경제 구조에 큰 부담이 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심의 중 한국 정부 측의 “보편적 출생 등록 제도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라는 취지의 답변에 대해 한 위원은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에 대해 왜 사회적 합의를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결국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해 한국 내 출생한 모든 아동이 국적 및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출생 등록이 되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하며, 1년 내로 권고 이행 경과를 보고할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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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에 대한 국가 의무

국내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의 출생 신고를 위해 활동하는 여러 국제기구 및 시민단체(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제아동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아동인권위원회, 사단법인 뿌리의 집, 사단법인 두루, 세이브더칠드런, 안산시 글로벌청소년센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유엔 난민기구,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이주민센터 친구, 재단법인 동천, 플랜코리아 등)들은 ‘보편적 출생 신고 네트워크’를 꾸려 캠페인과 입법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보편적 출생 신고 네트워크’가 주장하는 제도 개선은 “모든 아동의 출생 사실이 등록되고, 아동이 자신의 출생 사실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외국 국적 아동의 출생 등록을 위해서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모든 외국인이 단속의 두려움 없이 출생 신고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은 미등록 체류 이주민 등을 발견한 공무원이 이 사실을 출입국·외국인청에 통보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자녀의 출생 신고를 하려는 부모에 대해서는 이 의무를 면제하거나 제한해야 실효성 있는 출생 등록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단체들이 몇 년 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외국 국적 아동의 출생 등록에 대한 법 개정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의 출생 등록’에 대한 일부의 격렬한 반대도 여기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영토 내의 아동에 대해 국가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의 문제이다. 여러 인권 조약에 기록된 국제 기준은 출생한 모든 아동들이 최소한 자신의 출생 사실을 등록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추구하는 ‘포용국가’가 ‘외국인 아동’의 최소한의 인권에 대해서도 포용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탁건 님은 재단법인 동천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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