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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제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특집] 깊이읽기 [2020.04]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
하지만 배제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글 김성연 사무국장(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선거권을 보장해 온 긴 역사 안에서 공직선거법안에 발달장애와 관련한 이야기가 규정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법에서 정하는 연령이 되면 누구에게나 투표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왜 유독 발달장애인은 그 평등한 유권자의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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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정권이 중요한 이유

1948년 5월 10일 민주적 선거제도가 도입되어 최초로 국회의원 선거가 시행된 이후 70여 년 동안 수천 번의 선거가 치러졌다. 더 많은 국민이 편안하게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선거 제도를 확대하고 관련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이렇게 선거와 관련한 긴 역사의 시간 속에서 장애인의 한 표를 지켜내기는 어렵기만 했다. 그리고 행사할 수 없는 투표권의 수만큼 장애인을 고려한 국가정책은 언제나 가장 마지막 순서를 지키게 됐다.
참정권은 국민이 주권자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다. 참정권을 통해 국민은 국가의 의사형성과 정책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고, 국가권력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가가 시행하는 모든 정책과 제도, 법과 관련한 결정에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국민주권의 상징적 표현인 동시에 국가를 향한 권리행사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역사 속에서 참정권은 많은 투쟁과 희생을 통해 권리 행사 주체 범위를 점점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선거권이 보장되는 첫 선거가 치러지며 전 세계는 드디어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참정권을 행사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최근 국내에서도 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하향 조정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2019년 1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약 50만 명의 청소년이 새롭게 참정권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오랜 시간 청소년단체와 인권단체들의 투쟁으로 결국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선거가 도입된 이후 장애인은 선거권을 갖기 위해 투쟁할 이유가 없었다. 금치산제도가 존재할 당시 금치산판정을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는 국가적인 대원칙에 따라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평등한 선거권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평등한 선거권은 평등하지 않았다. 장애인은 아주 오랜 시간을 ‘선거권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어서’ 싸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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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라는 말조차 없는 공직선거법

선거와 관련한 절차와 방법은 모두 공직선거법을 기본으로 한다. 결국 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하고 투표용지가 그저 한 장의 종이가 아닌 온전한 권리가 되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의 내용 안에 그 근거를 담아내야 한다. 하지만 2020년이 된 오늘까지도 법안에는 장애인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편의 제공은 의무사항으로 규정되어있지 않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자유롭게 접근하여 투표할 수 있는 투표소의 설치, 청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을 위한 선거 방송에서의 수어 통역 제공, 투표소에서의 수어 통역 제공, 장애유형에 맞게 제공되어야 하는 선거 공보물. 이 모든 것들이 아직도 공직선거법 안에서는 ‘해야 한다’가 아닌 ‘할 수도 있다’로 규정되어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공보물 제공’ 정도가 ‘해야 한다’는 의무로 규정되어 있는 유일한 내용이다. 정당의 합의가 공직선거법 개정의 가장 큰 요건이 되는 상황에서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편의 제공이 의무로 법안에 담기지 못한 큰 이유는 여전히 그들에게 장애인은 권리의 주체이기보다는 정책 과정에서의 시혜의 대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장애인의 참정권은 제대로 된 의무조항도 갖고 있지 못하지만, 그래도 다른 장애 유형의 경우 필요한 내용이 법의 한편에 언급은 되고 있다. 그런데 아예 공직선거법안에서 단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는 장애 유형이 있다. 발달장애다.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위해 필요한 것들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의 선거권을 이야기할 때 판단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공직선거법안에서 고려조차 되지 않은 것은 아마 발달장애인이 투표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동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투표소를 찾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후보자를 판단하는 것일까? 대부분은 후보자의 정책이든 얼굴이든 말투이든, 그냥 내 마음에 들어서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런데 우리는 발달장애인의 선거권 행사에만 엄격한 판단의 기준을 들이밀면서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하고 그들의 권리를 빼앗았다. 결국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행동은 발달장애인의 투표권에 대한 뿌리박힌 편견을 없애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한 표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확인일 것이다.
선거 과정은 큰 틀에서 두 가지 절차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관련한 정보를 제공받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선거 관련 공보물, 선거 방송, 거리 유세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는 투표하러 가는 날이다. 투표소 접근, 투표소 내 기표 절차, 투표소 환경, 투표 방법에 대한 안내 등이 기본적으로 점검되어야 한다. 사전 투표와 본 투표 모두에 대한 상황점검이 필요하다.
현재 발달장애인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정보 접근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발달장애인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했던 참정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집으로 배달되는 공보물이 너무 어렵고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지 않아서 투표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투표소 근처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고 발언한 내용이 있었다. 선거 공보물이 왔지만 가족들이 모두 발달장애인이어서 너무 어려워 내용을 알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현재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읽기 쉬운 공보물’을 제작하는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 결국 발달장애인은 후보자에 대해 꼼꼼하게 판단하고 싶어도 관련 자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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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접근의 제한

2016년 총선에서 선거관리위원회는 처음으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안내문과 영상을 제작하고 2017년 대선에서는 투표소를 찾은 청각발달장애인에게 투표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안내 책자를 제공하여 투표소에서의 절차를 안내했다. 이처럼 선거관리위원회가 법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발달장애인의 선거권과 관련해서 다양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모색해나가면서 많은 편의 제공이 지침으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정당의 기호나 후보자 얼굴을 전혀 확인할 수 없고, 숫자와 이름만으로 만들어져있는 투표용지를 받는 상황에서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근본적으로 보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선거는 더 이상 발달장애인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발달장애인이 투표권에 대해 알고 있다. 이제 그들이 투표를 잘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는 일만 남았다.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읽기 쉬운 공보물을 제공하고, 투표소를 찾아가는 것부터 투표 절차까지 꼼꼼하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 안내판, 안내 책자, 무엇보다 투표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절차의 마지막에 후보자의 얼굴과 정당 기호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림투표용지가 제공된다면 발달장애인은 의미 있는 한 표로 역할을 다할 것이다. 2020년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선거가 그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김성연 사무국장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서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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