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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송 활동가(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인권이만난사람 [2020.04] 정치에 ‘19금’은 없다
김윤송 활동가(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글 성상영 기자(문화저널21) / 사진 이용기, 촛불청소년 인권법제정연대

 

4·15총선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비롯해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이 만19세에서 만18세로 내려온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 확대의 중요한 한 걸음을 떼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자 당사자인 김윤송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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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한국은 청소년 참정권의 갈라파고스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선거권을 19세부터 줬다. 심지어 오스트리아는 16세에 선거권을 부여한다. 우리나라에서 선거 연령을 낮추자는 주장은 2000년도 무렵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선거 연령을 한 살 낮추기까지 20년이 걸렸다.
2016년 말과 2017년 초 사이 촛불집회를 계기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만들어졌다. 청소년인권을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김윤송 활동가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촛불집회 참가 연인원 1,600만 명 속에는 청소년도 상당수 있었고, 이들은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정치적 주체임을 선언했다. 윤송 씨에 따르면 청소년인권의 출발점은 참정권이다. 그는 청소년의 인권이 법률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청소년은 직접 참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말에서 보듯 이용되는 존재였어요. 진정으로 청소년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덕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이었죠. 아무리 이상한 법이든, 또 이상한 요구든 청소년들의 요구를 궁금해하고 제도에 반영하는 것이 시작이기 때문에 참정권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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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기만 했던 국회 담장

청소년 참정권이 청소년인권의 출발점이라면, 선거 연령 하향은 참정권의 기초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민의의 전당으로 여기는 국회의 담장은 높았고, 때로는 편견과 냉소적 시선을 견뎌야 했다. 물론 사회의 관심조차 받기 어려웠다. 급기야 청소년이 국회에서 삭발과 농성까지 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나고서야 언론과 정치권은 이들의 요구에 주목했다.
윤송 씨는 기자 없는 기자회견도 많이 했고, 정당들을 찾아다니면서 입당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를 비롯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활동가들은 팀을 나눠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의 300개 의원실을 모두 찾아다니며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의원들의 답변을 요구했다. 2018년 3월 윤송 씨를 포함해 청소년 3명은 국회 앞에서 삭발을 감행했다. 그로부터 꼬박 1년 9개월이 지나서야 공직선거법이 바뀌었다. 윤송 씨는 ‘절박함’으로 표현했다.
“18세 선거권은 다른 청소년 관련 의제들과 비교하면 사회적 지지도나 인지도가 높은 편이지만, 누구도 이것을 굳이 총대 메고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누군가의 인권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반응이 많았고요. 삭발과 농성을 해야 할 만큼 절박했죠.”
청소년들의 직접행동을 곱게 보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이들은 청소년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봤다. 그는 청소년이라서 받는 시선이나 무례한 질문 때문에 상당히 힘들었고, 평소 같았으면 웃고 넘길 일도 그때는 화가 많이 났다고 고백했다. 특히 농성 중인 청소년들에게 반말부터 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가르치려고 드는 이들도 많았다. 윤송 씨는 고민했다. 색안경을 낀 채 청소년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가 찾은 해답은 ‘똑똑해 보이는 편이 낫다’였다.
“제가 멍청하게 보이면 ‘애들이 그렇지, 선동 당했다’고 할 것이고, 제가 똑똑해 보이면 ‘쟤는 똑똑하니까 선거권을 줘도 되는데 나머지 애들은 안 된다’고 해요. 어차피 18세 선거권에 반대할 사람은 반대할 텐데 이왕이면 똑똑해 보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유별나게 성숙한 애’라는 시선은 여전히 걱정스러워요.”
어떤 사람들은 선거 연령 하향을 당리당략으로만 접근했다. 하지만 그는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조차 청소년들이 보수정당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18세 선거권에 찬성한다고 말한 걸 지적하며 누군가의 투표 행위를 ‘잘한다’, ‘못한다’고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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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선거권, 이제 시작일 뿐

4·15총선에는 2002년 4월 16일 이전에 태어난 사람부터 투표할 수 있다. 선거권이 있는 만큼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글을 올릴 수 있다. 정당에 가입하거나 후원금을 낼 수도 있다.
이전보다 정치 활동의 폭이 넓어지면서 새롭게 유권자가 된 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거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시·도교육청과 학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모의투표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교육당국은 선거법 위반 예방이나 투표 절차 교육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하지만 윤송 씨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행간에서 ‘청소년=미성숙’이라는 등식을 과감히 깰 필요가 있다고 일관되게 강조했다. 선거법을 위반해 처벌받는 ‘어른’은 대개 “잘 몰라서 그랬다”는 해명을 내놓는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미성숙함의 잣대일 수 있느냐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윤송 씨는 “필요한 것은 청소년 유권자들에 대한 존중이고 가장 좋은 것은 직접 투표를 해보는 것”이라고 답한다.
미성숙 담론을 조금이나마 벗어나 보자는 취지로 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선거 연령을 만16세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다만 18세 선거권을 입법 요구안으로 낸 데에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가 있었다.
“16세보다 더 낮춰서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18세 선거권에도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만큼 여러 사람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18세라도 선거권을 보장해야 참정권의 벽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죠.”
즉 18세 선거권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청소년 참정권을 폭넓게 보장하려면 피선거권 제한도 낮춰야 하고 정당 가입과 활동,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 현행법상 정당 가입이 가능한 연령은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로 규정되어 있다. 그는 다른 나라처럼 정당 가입 연령을 법으로 규정하지 않고, 청소년들도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날까지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했다.
“18세 선거권은 정치인의 시혜가 아니라 청소년인권운동 20년의 성과이자 그동안 기억되지 못한 사람들이 이룬 것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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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영 기자는 인터넷 종합일간지 문화저널21에서 경제·노동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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