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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이 말하는 인권 [2020.04] 내가 동물단체 활동가가 된 이유

글 김솔 활동가(동물자유연대)

 

동물단체에서 일하다보면 어쩌다 동물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묻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질문에 곧잘 “동물이 좋아서”라고 답변을 해왔지만, 지금은 그렇게 대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동물이 좋아서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함께 사는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유기동물에게로 이어졌고 이후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의 구조·보호 활동을 하다 보니 동물과 관련된 문제들의 근원적인 원인을 해결하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동물권 활동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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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동물

흔히 좋아하는 동물을 떠올리면 개와 고양이를 떠올린다. 간혹 어린 시절 키우던 햄스터나 토끼 등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모두 ‘반려’동물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동물은 비단 반려동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농장에서 사육되는 돼지부터 동물원에 전시된 사자, 실험에 이용되는 쥐, 자연에서 살아가는 멧돼지까지 우리는 수많은 동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각각 농장동물, 전시동물, 실험동물, 야생동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이런 구분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분류된 것인데, 이 편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동물은 여러 종류의 고통을 겪는다. 고개를 돌릴 수조차 없는 비좁은 철장에 갇힌 어미돼지는 새끼를 낳는 기계로만 사용되고, 10평도 채 안 되는 전시관에 갇힌 사자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끊임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이렇듯 동물이 겪는 다양한 고통은 단순히 개와 고양이만을 생각하며 활동해온 이전의 나에게는 어색하고 두려운 일들이었다. 그렇기에 이전에는 동물단체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묻던 질문에 대해서 “(반려)동물이 좋아서”라고 답했다면, 이제는 “종에 관계없이 모든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로 바뀌게 됐다.
모든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단순히 동물 보호 활동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내가 먹어오던 많은 것들이 동물로부터 얻던 것이고, 내가 사용하던 많은 물품들이 동물 실험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식습관에서부터 평소에 무심코 사용하던 작은 물품의 사용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출발한 것이 바로 비거니즘(veganism)이다.
비거니즘은 종차별을 넘어 모든 동물의 삶을 존중하고 착취에 반대하는 삶의 방식이자 철학이며,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비건(vegan)이라고 한다. 현재 비거니즘은 과거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이들을 유별난 별종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비거니즘은 인권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최근 군대 입대를 앞둔 한 학생이 군대 내 채식 선택권을 보장해달라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여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군대에서 제공되는 식단에는 비건을 위한 채식 식단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군대가 무슨 레스토랑이냐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식단을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군대 내에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본인의 신앙과 신념에 따라 종교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것처럼 동물을 착취하지 않겠다는 개인의 신념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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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권리는 왜 보장되어야 할까?

사람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마당에 동물의 권리까지 지켜주어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과거에도 있어왔다. 양반과 노비가 전통처럼 여겨지던 시절, 흑인 노예가 인권을 외치던 것이 이상해 보이던 시절, 여성은 소유권과 참정권조차 없던 시절부터 말이다. 사회에는 언제나 기득권자와 비기득권자가 있었고, 비기득권자의 권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 차별주의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신분, 색깔, 성별에 따른 차별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동물도 종에 따른 차별을 넘어서서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하지만 왜 대우받아야 하는 걸까? 나는 “모든 동물이 본래 자연스럽게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자연에서 살아가던 동물들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다. 돌고래는 본래 수십 km를 헤엄치며 살아가는 동물이지만, 아쿠아리움에 갇힌 돌고래는 수 m 밖에 안 되는 수족관에 갇혀 살아간다. 닭은 본래 평평한 땅을 밟으며 무리 내에서 계층을 이루며 살아가지만, 농장에 사육되는 닭들은 A4 용지 한 장 크기의 철장 케이지에 갇혀 살아간다. 모든 동물은 각각의 자연 환경에 맞게 진화해왔고, 본래의 습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때에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많은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서 본래 습성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다. 자연에서 진화해온 인간은 동물의 한 종으로써 다른 동물의 자연적 습성을 빼앗을 권리가 없으며, 만약 빼앗은 권리가 있다면 이를 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동물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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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단체 활동가로서

앞서 말했듯이 모든 동물을 종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하기란 어색하고 두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아직 동물단체 활동가로써 부족한 점도 많다. 비거니즘이 아닌 페스코(pesco, 육식은 하지 않고 유제품, 알, 해산물은 먹는 채식의 한 종류) 채식까지만 실천하고 있다는 점은 동물단체 활동가로써 부끄러운 치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물권 활동에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비건이 된다면 고통 받는 동물들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기간 내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각각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해나가는 것이 동물의 고통 경감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일반 축산물이 아닌 동물복지 축산물을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일반적인 달걀을 소비하는 대신 동물복지 농가에서 낳은 달걀을 소비하면 보다 많은 닭들이 철장 케이지 대신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다. 동물 털을 사용한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구스 다운 패딩은 거위의 털을 산 채로 뽑아 만들기 때문에 동물에게 큰 고통을 유발한다. 고통을 기반으로 만든 패딩이 아닌 신소재로 만든 패딩을 입는 것도 동물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것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동물의 고통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본다면 그 자체만으로 동물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루는 구조한 동물을 데리고 동물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진료를 기다리던 중 우리 단체 회원이 나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셨는데, 곁에는 한 쪽 다리를 저는 강아지를 안고 계셨다. 작년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한 강아지를 우리 단체를 통해 입양한 회원이었다. 어찌나 강아지를 아끼던지 강아지의 눈빛만 보아도 행복함이 느껴졌다. 일 년 전에는 먼지와 배설물 속에서 하루하루 새끼를 낳는 기계로만 사용되던 강아지가, 이제는 새로운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동물권 활동가들은 다들 이런 마음이리라 생각한다. 고통에 마주한 한 생명이 새로운 삶을 찾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동물권 활동가로서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인 듯하다.

 

 

김솔 활동가는 동물자유연대에서 농장동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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