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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도 ‘네, 고객님~’ 가슴에는 멍들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 [2020.04] 감정노동자의 인권
화가 나도 ‘네, 고객님~’ 가슴에는 멍들어요

글 김혜정(편집실)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 직무는 물론 직장 내 소통에 있어서도 ‘감정노동’이란 단어는 지금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른다. ‘감정노동’이라는 단어는 1983년 미국의 사회학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에 의해 처음 등장했다. 3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더욱 키가 커져 버린 감정노동에 대해 새로운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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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뒤에 감춰진 눈물

대중과 접촉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실제 본인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의지를 갖고 특정한 마음을 생산해내야만 하는 감정노동. 이러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우리는 감정노동자라 부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5년 실시한 「유통업 서비스·판매 종사자의 건강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감정노동자의 61%가 지난 1년 동안 고객으로부터 폭언·폭행·성희롱 등의 괴롭힘을 경험했으며 이중 96%는 의식적으로 고객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억누르는 감정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지난 2016년 연세대학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정노동자는 타 직업 종사자에 비해 자살 충동을 최대 4.6배 많이 느낀다.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봐도 2016년 15~64세 자살사망자 4,470명 중에서 ‘서비스 및 판매종사자’가 28.52%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지난 2014년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A 씨는 입주민과의 언쟁 과정에서 심한 모욕감을 느꼈고,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경비원 A 씨는 1달간 화상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자살을 시도한 것이 업무와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해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했다.

 

감정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이 중요하다

지난 2018년 10월 18일 ‘백화점 모녀 갑질 사건’으로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이하 산안법)’이 시행됐다. 산안법 제26조2항에는 고객응대 노동자가 고객의 폭언, 폭행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따른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사업주는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게 하는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전화상담원이 민원인에게 폭언을 당할 경우 전화를 끊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산안법 시행 1년 후인 지난해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가 감정노동자 2,765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2019년 감정노동 및 직장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감정노동자가 겪는 고통은 그대로였다. 응답자 중 여성 61.7%, 남성 56.8%가 감정노동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심리적 지지가 필요한 위험 집단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2018년보다 약 15%p 높아졌으며 여성은 0.8%p로 소폭 감소해 뚜렷한 개선을 확인하기 힘들다. 법에 대한 인지도 부족했다. 응답자 가운데 절반이 ‘감정노동자 보호법’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응답자의 70% 가까이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문제를 피할 권리·피해 발생 시 휴게할 권리·휴게 공간 설치·치유 프로그램·법률 지원·매뉴얼 등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업무가 다양하고 복합적인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감정노동자들의 직업 부류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그에 따른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제도들이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감정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법은 무엇을 할 것인지, 기업은 어떻게 할 것인지 세심한 대안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고객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고 노동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정노동자의 미소를 기대하는 대신, 그들의 노동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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