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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도서관 [2020.04] 예외적 존재들의 인권 투쟁

글 박진 활동가(다산인권센터)

 

누군가는 숨겨진 존재로 태어나고, 낯설고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숨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을 제약하는 조건들에 주저앉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불행 속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이름표처럼 붙여진 타자화된 딱지 앞에서 과감히 자신을 드러냈다. 그리고 내 몸이 문제가 아니라 “나를 문제라 하는 당신들이 문제”라 외쳤다. 인권은 이들의 투쟁으로 발전했다.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

바버라 립스카 · 일레인 맥아들 지음 / 정지인 옮김 / 도서출판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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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원인을 찾는 데 헌신했던 미국 국립정신보건원 산하 인간두뇌 수집원 원장 바버라 립스카는 정신질환을 겪는다. 그는 “정신질환을 대하는 가장 적절한 태도는 공감과 치료법을 찾으려는 헌신임을 깨닫게 하는 일에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난해 ‘조현병 범죄’라고 불리는 사건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언론의 보도가 나올 때마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책임의 대상이 됐다. 가해자들이 더 이상 정신병원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질책이 떠돌았다. ‘정신질환으로 생활하는 모든 사람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암시하지 말 것’과 ‘조현병 등 정신건강 및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찍는 표현을 피할 것’ 등의 언론보도 준칙을 둔 해외의 경우처럼,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없으면 피하기 힘든 여론 재판이었다. ‘조현병’은 이 곳을 함께 살아가는 나와 우리에게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뇌의 병’이다. 저자는 조현병을 치료하고 남은 종양과 방사선의 여진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는 등산용 지팡이를 사고,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법과 균형이 어긋난 새로운 세계에서 타이핑하고 글 읽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생애를 포기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이 질환을 만날 수 있다. 그럴 때 모든 일상이 무너지지 않고, 병동에 갇히지 않고, 만나고 화해하고 치료하는 법을 이제 우리는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숨지 않는다 - 세상에 가려지기보다 세상을 바꾸기로 선택한 11명의 이야기

박희정, 유해정, 이호연 지음 / 한겨레출판

 

 

2

 

한부모, 장애인, 북한을 떠나 한국에 머무는 사람, 홈리스, 조현병 환자, 성폭력을 용인한 학교와 싸우는 청소년 페미니스트들. 11명 여성들의 서사로 채워진 책이다. 세상은 그들을 위험하고 적대하거나 하찮아서 보이지 않았거나, 발칙한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발 딛고 선 세계를 변화시키려 행동하거나 다른 세상으로 탈주함으로써 세계의 변화를 꾀한다. 저자는 이들이 ‘행위자’로 살아온 주체임을 강조한다. 그들이 만들어 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삶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모험이고 그들이 얼마나 용감한 탈주자인지 알 수 있다. 김복자 씨는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지만 음식을 고를 때에는 자신에게 가장 최선의 것을 고르는 사람이다. 그는 매일의 삶에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고 있다. ‘가장들의 몰락’으로만 기억되는 ‘노숙인’ 개념으로는 복자 씨 사정을 살필 수 없다. 복자 씨의 사정을 따라가다 보면 빈곤과 젠더는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믿던 임경미 씨의 아빠는 경미 씨가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해내자 변하게 된다. 장애 때문에 갇혀 있었다면 이룰 수 없는 변화들을 경미 씨가 보여줬다. 경미 씨는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면 미래가 생긴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의 하루는 주변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이 책을 읽으며 쓸모없는 경험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이야기들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예외적 존재들의 예외로 인해 세상이 조금씩 바뀌었음을 깨닫게 된다. 숨지 않은 존재들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그들이 오롯이 살아낸 삶이 꾹꾹 담겼기 때문이다. 이들의 인권 이야기는 꽤 수다스러워 읽는 내내 정겹다.

 

 

박진 활동가는 다산인권센터의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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