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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게 월경할 권리

인권이 자란다 [2020.05] 깨끗한 물과 위생관리
안전하게 월경할 권리

글 김새롬 연구원(시민건강연구소)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공통으로 경험하고 있는 변화는 예전보다 손을 더 열심히 닦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국제사회는 유행 초기부터 손 닦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제대로 손을 닦을 수 없는 지역에서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상황을 우려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여성의 월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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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감염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물과 비누, 손 소독제 등 위생용품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로힝야 지역에 사는 86만여 명의 난민 중 생활용수에 접근할 수 있는 난민은 30%에 불과하다.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깨끗한 물을 일상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를 약 7억 8천만 명으로 추산한다.1)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안전한 물과 위생용품에 접근이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어떻게 월경을 하는 걸까? 몇 년 전 한국에서도 일회용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휴지와 운동화 깔창 등 대체물을 쓸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에 대한 소식에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
국제적인 수준에서 생각하면 안전하게 월경을 하지 못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일회용 생리대를 구할 수 없는 여성들은 다양한 물건을 이용한다. 나뭇잎과 옥수숫대, 해면, 잿가루, 말린 소똥, 헌 옷, 화장지, 신문지, 양말, 화장솜, 비닐봉지 등이다. 월경혈 흡수재료를 교체하는 장소는 대체로 화장실인데, 깨끗하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여성들은 곤란에 빠진다. 필요할 때 생리대를 교체할 수 없는 상황은 불쾌감뿐만 아니라 질염 등의 감염성 질병에 걸릴 위험을 키운다. 이런 상황이 월경혈을 더럽게 여기거나 생리를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와 결합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일회용 생리대를 살 수 없어 천 조각을 이용하고, 상수도 시설이 없는 학교에 다니는 소녀들은 월경하는 동안 피 냄새가 나서 놀림을 받거나 남녀 공용 화장실에 피를 묻히느니 결석을 결정한다. 이는 교육 중단으로 이어져 앞으로 삶의 기회를 심각하게 제한한다. 덥고 습한 밀집 공간에서 일을 해야 하는 의류공장에서는 월경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일을 나오지 말라고 강요하고, 기간 동안 보수를 주지 않는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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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s://www.themeteor.org/2018/07/17/the-hidden-shame-of-period-poverty/

 

오랫동안 배제된 월경위생과 관리

많은 국제기구들은 기본위생수준을 향상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을 알고 ‘상하수도와 위생을 위한 세계 캠페인(Water and Sanitation and Hygiene, WASH)’을 인권 보장을 위한 주요 활동으로 삼아왔다. ‘월경위생과 관리’는 여기서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2000년대 중반에나 들어서서 논의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유엔은 여섯 번째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로 ‘깨끗한 물과 위생’을 설정하고 2030년까지 모든 여성과 소녀들이 적절한 위생 환경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세부목표를 세웠다. 월경위생과 관리가 소녀들의 교육권과 노동권과 연관되고, 생식기 감염부터 임출산, 월경금기와 관련된 정신적 스트레스에 이르는 건강권과 직결된다는 새삼스러운 진실이 공개적인 문제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월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는 여전하다. 여러 문화권, 특히 아시아 지역에는 월경하는 여성에게 사원과 목욕탕 등 공공장소 출입을 금지하거나, 심지어 월경 기간 동안 난방이 되지 않는 월경 헛간(menstruation hut)에 격리하고, 그 추위로 여성이 사망한 사례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2)
우리나라에서도 생리대를 구매하면 검은 봉지에 몰래 담아 건네거나 월경이 갑자기 시작되면 ‘그거’를 수소문하고, 보이지 않게 생리대를 은밀히 주고받은 경험이 일상적이다. 문제는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대처하고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도 있다. 정규교육과정의 성교육과 보건교육이 월경을 다루기는 하지만, 위생과 증상 관리에 대한 내용은 충분하지 않다. 2019년 만14세~24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0% 이상이 월경 전후로 복부나 허리 등의 통증을 느꼈고, 통증이 아주 심한 응답자는 13.1%, 약간 심한 경우는 33.2%나 됐다. 하지만 월경용품 사용과 생리통 조절 등과 월경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대해 21.3%의 응답자는 그렇지 못하다고 대답했다.3)
월경 중에 경험하는 증상은 매우 다양하고, 이런 증상들은 종종 여성의 일상을 침범한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고, 불규칙한 월경으로 계획했던 일이 틀어지거나, 과도한 식욕 혹은 식욕 부진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런 월경불편감을 적절하게 개선할 수 있는 의약품이나 의료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하고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은 건강보조식품이나 치료가 비싼 가격에 유통되고 있다. 여성 중 50%에서 90% 정도가 겪는 증상이라면 국가가 나설 만도 한데, 국가가 운영하는 온갖 건강과 관련된 정기통계들은 여성의 월경을 묻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들이 월경으로 인해 얼마나 불편하고 아픈지에 대한 구체적인 현황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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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서의 월경

심장과 폐를 동시 이식해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시대에 월경하는 여성 절반 이상이 경험하는 월경불편감을 해결할 의학적 지식과 기술이 부족한 것은 황당한 일이다. 여성들이 이런 상황을 기막혀 한 지도 이미 오래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국립월경연구소가 설치되고,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 월경에 대한 연구를 더 많이 하며, 정부는 생리대를 무료로 배포할 것’이라는 글을 쓴지도 30년이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월경 시기 찾아오는 묵직하고 불쾌한 통증이 어떤 이유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의학적 발견도, 세상 여성들이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월경을 할 수 있는 세상이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라는 합의도 아직 저 멀리에 있다.
매년 5월 28일은 월경의 날이다. 여성의 월경이 평균 5일 동안 지속되고, 28일을 주기로 되돌아온다는 의미에서 결정된 날짜다. 월경은 모두가 알지만 말할 수 없는 ‘그것’이나 ‘저주’, 혹은 ‘마법’이 아니다. 월경은 여성의 건강권과 노동권, 교육권과 직결된 여성의 일상이자, 한 달에 한 번 여성의 건강상태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재생산 건강 현상이다. 올해 월경의 날에는 우리 모두 안전하고 쾌적하게 월경을 할 수 있고, 월경을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으며, 월경을 비롯한 성과 재생산 관련 사안에 관해 여성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인권으로서 월경’에 대해 논의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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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2016). Global WASH Fast Facts.    https://www.cdc.gov/healthywater/global/wash_statistics.html#asterisk
2) BBC(2019.12.06.). Nepal man arrested over death of Woman in ‘menstruation hut’. https://www.bbc.com/news/world-asia-50691387
3) 김남순 외. (2019). 여자청소년의 건강이슈분석과 월경관리 현황 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새롬 연구원은 시민건강연구소 젠더와건강연구센터에서 상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건강 영역에서 젠더, 권력, 참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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