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2020.07] 기후-인권 감수성

글 조효제 교수(성공회대학교, 한국인권학회장 역임)

 

기후위기를 인권문제로 보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기후-인권 감수성’을 지닐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을 인권문제로 인식하여 국가와 기업에 책임을 물으려면 그들의 행위에 대해 분노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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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재난, 즉 ‘천재(天災)’로 피해를 입는 것을 흔히 ‘불운’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잘못으로 발생한 재난, 즉 ‘인재(人災)’로 피해를 입으면 ‘불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기후위기를 인권문제로 본다는 말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인재에 의한 불의’로 본다는 뜻이다.
보통의 인권침해 사건에서 우리는 불의한 가해자에 분노하고 책임을 물으려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가해자는 국가와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면 기후문제를 거대한 시스템적 정의의 관점에서 볼 줄 아는 눈을 지니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생명권은 모든 인권의 제일 앞자리에 있는 권리다. 인권을 위해서는 우선 사람의 생명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로 위협받는 생명권을 절박하게는 ‘실존적 인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초대형 태풍과 같은 ‘급격한 개시’ 사건은 사람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019년 10월 태풍 미탁으로 1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되었다고 밝혔다. 폭염이나 가뭄, 매개체 감염질환과 같은 ‘완만한 개시’ 사건으로도 사람들은 생명을 잃는다. 정부는 2011~2019년 사이 발생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134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서울의대 홍윤철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이 기간 폭염 사망자는 정부 발표보다 최대 20배 이상이 많았다. 또 2006~2017년 통계청에 등록된 14세 이상 사망자 313만 명의 사망 원인을 분석해 보면 총 1,440명이 폭염과 관련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위기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생명권을 박탈하고 있다.

 

 

조효제 교수는 서울시 인권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 위원, 법무부 정책위원, 국제앰네스티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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