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 > [특집] 생각하기 >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인권국가의 필요조건

[특집] 생각하기 [2020.07]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인권국가의 필요조건

글 이준일 교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우리는 누구나 차별에 반대한다. 그런 차별은 인종차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차별이 부당한 것이라면 모든 차별은 법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차별에 반대하면서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데에는 반대한다면 자기모순이다. 인권선진국가라면 어디에나 있는 차별금지법.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나라 차별금지법의 방향성과 필요성을 짚어보자.

 

 

4

 

국내외 차별금지법의 현주소

차별금지법 제정은 인권을 소중한 가치로 믿는 국가 공동체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책무다. 차별은 어떤 방식이든 법적으로 금지되어야 하고, 이러한 금지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해외에서는 인종, 성별, 종교, 장애, 고용, 교육, 거래 등 각각의 차별금지영역마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국가도 있고, 다양한 차별금지 사유나 차별금지 영역을 망라하여 ‘일반적 차별금지법’을 입법한 국가도 있다.
영국은 2010년 「평등법」을 제정하여 성별, 인종, 장애, 종교, 연령 등에 대한 9가지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하나의 법률로 통합했다. 캐나다는 1985년 제정한 「인권법」을 통해 13가지의 차별금지 사유를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일반적 차별금지법인 「평등증진 및 불공정한 차별금지법」(2000)에서 16가지 차별금지사유를 열거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남아공 헌법에 명시된 차별금지사유(제9조 제3항)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초의 차별금지법으로 부를 수 있는 「민권법」(1964) 제7편에서 차별금지사유를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국가 5가지로 한정하고 개별적으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1967)과 「미국장애인차별금지법」(1990)을 가지고 있다. 호주는 「연령차별금지법」(2004), 「장애차별금지법」(1992), 「인종차별금지법」(1975), 「성차별금지법」(1984)과 같은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가지고 있으며 차별시정기구인 호주인권위원회의 조직과 권한을 규율하는 「호주인권위원회법」(1986)에서 피부색, 종교, 정치적 견해, 출신국가·배경을 차별금지사유에 추가했다.
대한민국은 호주와 같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성차별금지법(남녀고용평등법)」, 「연령차별금지법」, 「비정규직 차별금지법」과 같은 개별적 차별금지법과 더불어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19가지 차별금지사유를 열거하고 있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국가인권위원회라고 하는 차별시정기구의 조직과 권한 및 절차에 관한 법률(조직법·절차법)이기 때문에 차별을 중심으로 그 개념과 유형, 금지사유와 금지영역, 피해자 구제수단과 가해자 제재방법에 관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실체법이 필요한 것이다.

 

일반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

실체법으로서의 일반적 차별금지법은 새로운 차별의 유형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개별적 차별금지법만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새로운 차별의 사유나 영역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입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예상할 수 있는 범위와 함께 이와 유사한 기타 사유 및 영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일반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한민국도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가지고 있지만 인종, 학력, 지역, 외모 등을 이유로 한 차별 현상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각각의 사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2006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있었지만 2020년 현재까지 입법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분단과 이념갈등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사상이나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차별이 금지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든지, 경제적 필요에 따라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고용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이 금지되면 기업의 경영권이 침해될 수 있다든지, 종교적 교리에 따라 특정한 성적 지향을 반대하는 종교적 신앙이 박해를 받게 된다는 등의 이유가 제시된다.
하지만 차별은 구별해서 배제하거나 우대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합리적 근거로 정당화되지 못하는 구별 행위(classification)에만 해당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특정한 직업을 수행하는 데 본질적으로 필요한 자격요건(진정직업자격요건)이나 모성(임신·출산)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조치 또는 그동안 차별받아온 집단에 대한 일시적인 우대조치(잠정적 우대조치·적극적 조치)는 구별 행위에 해당함에도 합리적 근거로 정당화되어 차별로 평가받지 않는다. 따라서 구별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만 제시하면 차별로 판단 받지 않을 수 있다. 종교적 신앙을 근거로 하는 경우에도 예컨대 종교적 경전이나 교리에 근거한다면 차별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을 차별금지법에 명시해 종교적 예외로 재확인할 수도 있다.

 

5

 

조화와 균형의 차별금지법

차별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동일한 대상을 차등 대우하거나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상이한 대상을 합리적 근거 없이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으로,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처음부터 차별의 의도를 드러내는 직접차별뿐만 아니라 차별의 의도는 드러나 있지 않으나 결과적으로 차별을 야기한 간접차별로 구분된다. 괴롭힘(harassment)이나 성희롱도 차별에 해당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혐오표현을 괴롭힘의 개념에 포함해 차별로 이해함으로써 혐오현상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괴롭힘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모욕하거나 경멸(비하)하거나 위협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차별하거나 차별을 조장하는 행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괴롭힘과 혐오표현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면 괴롭힘과 함께 혐오표현을 차별금지법에 명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19가지의 차별금지 사유를 열거하면서 ‘등’이라는 표현으로 열거된 차별금지사유와 유사한 ‘기타 사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거의 모든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란이 되는 성적 지향뿐만 아니라 사상·정치적 의견도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차별금지사유에 이미 포함되어 있고, 개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요구되는 인종, 학력, 지역, 외모 등도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차별금지사유로 열거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는 일반적으로 차별의 개념에 포함되는 간접차별과 괴롭힘, 혐오표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런 부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으로 혐오표현을 규제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모든 기본 인권은 어떤 것도 절대적일 수 없으며 다른 기본 인권과 충돌하면 제한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타인의 인격권이나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차별적 표현은 제한이 불가피하다. 결국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기 위해 요구되는 일반적 원칙인 비례성원칙에 따라 충돌하는 두 개의 기본적 인권을 서로 조화롭게 실현될 수 있도록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산다. 차별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근거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소신이나 신념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타인의 자유와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타인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객관적인 신념이 될 수 있도록 합리적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개인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일종의 가치관으로도 볼 수 있기에 포기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차별의 근거가 되어 타인의 삶에 관여한다면 그것은 합리적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준일 교수는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비상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