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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주듣기 [2020.07] 평등법 제정을 위한 하나의 목소리

글 편집실 / 사진 봉재석

 

참여자 김민아 팀장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 교육협력팀), 김현수 활동가 (한국여성단체연합), 박종언 편집장 (마인드포스트), 박한희 변호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이상현 이사장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장소제공 SK텔레콤 PS&M 보신각점

 

지난 6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을 제정할 것을 국회에 촉구했다. 2006년 평등법 제정을 처음 시도한 이후 14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등법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성소수자, 여성, 정신장애인, 비정규직·청년 등 각 분야에서 차별에 맞서는 사람들과 함께 평등법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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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차별의 시대

김민아(인권)• 법이 만들어진다 해도 사람들의 생활 문화에 스며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요. 일례로, 「가정폭력금지법」도 1998년에 만들어졌지만 가정 안에서 ‘체벌’과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법을 어떻게 우리 삶 속에 녹여낼지가 중요할 텐데요. 우선 각자 일상에서 어떤 차별을 겪고 있는지, 제도 개선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말씀해주시죠.

 

박종언•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정치적 시선은 두려움과 혐오가 동시적으로 작동합니다. 신체장애 같은 경우는 불편하지만 자주 접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요. 정신장애인은 직접적인 경험을 해보지 못한 미지의 것이라 두려워하죠. 동시에 혐오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요. 2017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의 명제는 단순합니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죠. 하지만 법이 있음에도 실제로 작동하는 복지관도 없어요. 재정적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이죠. 그런 부분과 코로나 시대의 혐오가 동시적으로 작동하면서 정신장애인은 더 타자화되고 배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박한희• 행정안전부가 올해 10월부터 새로 발급받는 주민등록번호에서 첫 자리를 제외한 여섯 자리를 임의번호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역차별을 없애기 위해 지역변호를 임의번호화한 거죠. 연령차별과 성차별도 없애려면 전체를 임의번호로 해야 하는데, 왜 지역차별만 없애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번에 공적마스크를 구매할 때도 트랜스젠더는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약국에서 신분증을 보여줬는데 본인인증이 제대로 안 되어서에요. 비슷한 이유로 많은 트랜스젠더 남성분들이 많이들 물류 쪽에서 일을 하십니다. 신분증을 보여주면 취업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신분증 없이 간단히 일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거죠. 물류센터 확진자 중에 분명 트랜스젠더분들도 있을 거예요. 드러나지 않을 뿐 문제는 다 얽혀 있는 것 같아요. 법적 성별을 엄격하게 나누고 특정 사람을 배제하는 것에 대한 제도적인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현• 저희가 공통으로 얘기하는 것은 특성화고 차별, 고졸 차별을 없애자는 거예요. 특성화고 학생들 같은 경우는 입학 때부터 괴롭힘이라든지 모욕감, 수치심과 같은 차별을 많이 경험합니다. “너 공부 못해서 여기 왔지?”로 시작해 3년 내내 차별을 받다가 취업 후에는 고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죠. 기업에서는 학력에 따라 임금이나 승진에 제약을 두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금지하거나 바꾸느냐가 큰 과제죠. 차별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공평하게 느낄 수 있도록 명확한 근거에 따라야 하니까요.

 

김민아(인권)• 인권위가 2006년 국무총리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지 14년 만에 다시 국회에 평등법 제정을 촉구하는 의견표명을 냈습니다. 차별의 개념에는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차별 표시·조장 광고 행위가 포함됩니다. 이 가운데 괴롭힘이 눈에 띄는데요. 그렇다면 학력을 이유로 한 직장 내 괴롭힘도 차별로 다룰 수 있을까요?

 

박한희• 이번에 평등법에 고용형태가 추가됐고 학력도 추가됐으니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식이 문제인 것 같아요. 직장 내 평등과 관련해서 보고서를 쓴 적이 있는데 직장 내 괴롭힘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고졸을 데려와도 너보다 잘하겠다.”라는 말이었어요. 이미 고졸은 일을 못 한다는 인식이 맞물려 있는 거죠. 평등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상현• 사회가 강요하는 거라고도 할 수 있어요. 교육 자체가 ‘대학을 가야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이뤄지고 있으니까요. 한편에서는 고졸 취업을 장려하는 등의 정책이 있긴 하지만 사회 전체적인 구조는 그렇게 짜여 있죠.

 

 

일상에 스며든 차별을 말하다

김민아(인권)• 나이를 묻고 싶지만 너무 직접적이라는 생각에 학번을 묻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당연히 대학을 나왔을 거라고 전제한 질문이죠. 외국에서는 ‘Where are you from?’ 이라는 질문도 자칫하면 인종이나 출신 민족, 출신 지역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다고 여겨 예전만큼 하지 않는다는군요. 이와 같은 말들은 또 뭐가 있을까요?

 

김현수• 칭찬이랍시고 “여자치고 뭐 어떻다.”라고 말하는 거? 반대로 그런 얘기도 있어요. 입사 면접할 때 나오는 전형적인 질문 중에 ‘남자친구 있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라고 묻는 게 여성은 당연히 결혼할 것이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을 거니까 일보다는 아이 돌보는 게 중요한 거고, 그러니까 너는 아웃이야. 이런 인식이 깔린 거죠.

 

박종언• 지난해 한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에게 “정신병 환자”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정신병자’, ‘또라이’, ‘미친놈’ 같은 표현이 끊임없이 사용돼요. 그리고 신체장애인은 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고, 휠체어를 밀면서 무언가를 하는 등 극복하는 서사가 있는데 정신장애인은 극복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서사의 대부분은 ‘열심히 일해서 바리스타가 됐다’거든요. 할 수 있는 게 바리스타밖에 없죠. 정신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법적으로 의사나 간호사, 약사도 될 수 없고 뱃사람도 될 수 없습니다. 제도적인 폭력과 일상적인 폭력을 같이 겪고 있어요. 정신장애인들은 스스로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들이고 끊임없이 부모나 어른에 의해 이끌려져야하는 존재로 낮은 위치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미성년자의 위치로 내려가는 거예요.

 

박한희• 성소수자 관련해서는 온라인에서 “조용히 살면 되지 왜 나오느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 사실 조용히 살면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으니까 나오는 거예요. 조용히 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차별인지도 모르는 거죠.

 

박종언• 그렇게 공동체 바깥으로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박한희• 퀴어축제가 그래요. 왜 축제를 하느냐고 묻지만 사람들은 일 년 중에서 퀴어문화축제 때가 아니면 성소수자가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해요. 그마저도 없으면 우리는 없는 사람인 거죠. 이태원에서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한 자치단체가 인권단체에 전수조사를 하고 싶다고 성소수자 명단을 달라고 했는데, 그런 명단은 없어요. 얼마나 무지한 건지 보여주는 사례죠.

 

 

평등법 제정의 필요성을 말하다

김민아(인권)• 타지역 사람이 서울에 와서 표준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것, 가는 목소리를 가진 남성이 목소리 톤을 굵게 바꾸려고 애쓰는 것. 나열하자면 한이 없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커버’하는 경우죠.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엔 직접적인 차별은 덜 하는 것 같아도 한 방송국에서는 여전히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계약직 프리랜서로 채용하는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어서 인권위가 시정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평등법이 제정되면 이런 관행에도 변화가 올까요?

 

김현수•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통과되면 좋지만 이 법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겠죠. 국민들은 어떻게 인식하는지, 정책입안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집행할지가 중요한 문제겠죠.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복합차별을 다룰 수 있어서예요. 여성이 여성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여성이면서 노동자이거나 학생, 정신장애인 등 우리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죠. 어느 영역에서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이를 드러낸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봐요.

 

박종언• 언젠가 토론회에 갔는데 옆에 에이즈 환자가 있었어요. 그분이 말씀을 하시고 저에게 마이크를 건네셨는데, 속으로 두려웠어요. 인간은 무지한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져요. 정신장애인도 끊임없이 노출이 되면 어느 정도 평균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한희•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계속 얘기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평등법에 반대하는 분들이 왜곡하는 부분이 최근 인권위 진정사건을 보면 성소수자 관련 진정이 없다고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인과관계가 바뀐 거죠. 법이 없으니까 진정을 못 하는 거예요.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제정되고 나서 진정 사건이 확 늘었잖아요.

 

이상현• 평등법 제정은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현실이 있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걸 우리사회가 인정하는 출발점이요. 평등법안은 그동안 차별받았던 사람들이 현실에서 극복하기 어려웠던 문제에 맞게 잘 짜여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실효성은 고민인 것 같아요. 법 제정과 그에 따른 인식·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 법에 근거해서 현실에 맞는 것들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중요하겠죠.

 

김민아(인권)• 어떤 의미에서 평등법은 존재를 드러내는 법, 존재를 존재 자체로 인정하는 법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 위해 각 분야에서 애써주시는 여러분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참여자 김민아 팀장은 광주인권사무소 교육협력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김현수 활동가는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종언 편집장은 마인드포스트에서 정신장애인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박한희 변호사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나는법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상현 이사장은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에서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고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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