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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갇혔던 9세 소년 추모 현장

어떤 날 인권 [2020.07] 피우지 못한 꽃
가방에 갇혔던 9세 소년 추모 현장

글 / 사진 인상준 기자 (대전CBS)

 

A군의 소식을 들은 건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던 초등학생들의 등교가 순차적으로 시작된 6월 초였다. 초여름 날씨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덥던 그 순간. 9살 A군은 작은 여행용 가방에 몸을 구겨 넣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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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 안에서 발견된 9살 소년

지난 6월 1일 오후 7시 27분. 충남 천안 백석동의 한 아파트에서 한 아이가 가방 안에서 의식을 잃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날 정오쯤 A군은 가로 50cm, 세로 71cm가량 되는 크기의 여행가방에 갇혀 있었다. 여행가방 안에 A군을 감금시킨 것은 A군이 ‘엄마’라 부르던 친아빠의 동거녀 B씨였다. 태연하게 외출했다가 3시간 만에 돌아온 B씨는 가방 안에 용변을 본 A군을 처음보다 더 작은 크기의 가방에 가뒀다. 그렇게 A군은 7시간 넘게 여행가방 안에 감금됐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발견돼 병원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본격적인 경찰조사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A군의 학대가 처음이 아니었으며, 친아빠도 가담했다는 의혹이다. B씨와 친부는 이미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던 상황이라는 것이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A군은 지난해 10월부터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당했고, 올해 어린이날에는 머리를 다쳐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당시 주치의는 A군의 몸 곳곳에 상처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내부 위원회를 거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을 통해 사건을 조사했다. 문제는 시기와 방식에 있었다. 코로나19와 부모의 일정을 이유로 신고가 접수된 지 6일 만에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A군은 맞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고, B씨와 친부 역시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조사관은 가정의 분위기와 A군의 상태, 가족들의 진술 태도 등을 종합해 결국 아이를 분리하지 않는 게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는 분석에서다.
경찰은 전문가 소견을 토대로 두 차례 소환해 조사를 진행한 상태였다. 이번 사건은 추가 조사를 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발생했다. 전문가들이 좀 더 발 빠르게 조치를 취하고 세밀한 조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찰 관계자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한 상황이지만 결과적으로 A군이 숨졌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워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A군의 사망소식에 지역사회는 물론 온·오프라인 등에서 추모 분위기가 이어졌다. 지난 6월 4일 아이가 거주하던 아파트 인근 상가에 추모공간이 마련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상가 한쪽 책상에는 국화꽃과 학용품 등이 놓여 있었고 A군을 추모하는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더운 날씨, 답답한 가방 안에서 목이 말랐을 A군을 생각하며 음료수를 두고 가는 또래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울컥했다. A군이 다니던 학교에도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그를 가르쳤던 교사들은 밝은 A군을 기억하면서 학대를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교사들 역시 갑작스런 소식을 접하고 연신 눈물을 흘리며 추모했다.
A군의 집에는 친부와 B씨, B씨의 친자녀 2명이 함께 살았다. B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A군에 대한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친자녀들에 대해서만 얘기했고 SNS 등에도 B씨와 친자녀들의 이야기만 남아 있었다. A군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치 A군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A군을 기억하는 주민들을 만났다. 대부분 왜소한 체구와 밝은 웃음을 먼저 떠올렸다. 이복형제들 사이에서 유독 마르고 키도 작았던 A군은 B씨가 운영하던 가게 개업 날 이웃 상가에 직접 떡을 전달하느라 분주하게 다녔다고 한다. 주민들과 만날 때도 친자녀들에 대한 얘기만 할 뿐 A군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는 B씨. A군은 그런 B씨를 엄마라 불렀다. 뒤늦게 밝혀진 B씨의 가혹행위는 충격적이었다. A군이 숨 막힌다고 호소하자 드라이어기 바람을 가방 안으로 불어넣었고, 가방 위에 올라타 뛰기도 했다.
취재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비슷한 또래 자녀를 키우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A군을 위해 친구들이 전한 마지막 인사.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이웃주민들. 학대 사실을 진작 눈치채지 못해 자책하는 교사들. 마지막 가는 길 위로가 되길 바라며 추모공간을 찾고 메시지를 남긴 많은 국민들. A군과 같은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며 법 개정에 나선 정치권. 이 모든 것들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 피우지도 못한 꽃이여. 부디 하늘에서라도 꽃 피우길...

 

 

인상준 기자는 대전CBS에서 취재를 하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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