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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로
멈춰야 할 시간

[특집] 깊이읽기 [2020.08] 차별에 굴복한 14년,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로
멈춰야 할 시간

글 김지혜 교수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지난 6월 29일, 21대 국회에서 장혜영 의원 등 10인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다. 2007년 법무부안 외에 그동안 국회에 발의되었던 5개의 차별금지법안이 실패했고, 이번이 7번째 시도다. 실패를 거듭함에도 우리가 차별금지법을 다시 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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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의 준비, 2개월의 훼손, 14년의 실패

차별금지법의 준비는 17년 전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공약사항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하고 당선됐다. 2003년 1월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차별에 관한 전문가와 인권단체 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추진위원회는 2004년 7월까지 활동하면서 차별관련 쟁점을 검토하고 해외의 입법례를 검토하며 조문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결과물로 2004년 8월 차별금지법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이후 2년 동안 전문가 간담회, 관계부처 간담회, 일반국민 의견수렴, 공청회 등을 통해 차별금지법 초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수정·보완하는 작업이 있었다.
2006년 7월, 드디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을 확정하고 이를 국무총리에 입법 권고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1년 3개월 후, 2007년 10월 2일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한다. 대한민국의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상정된 차별금지법안이었다.
하지만 이 오랜 노력은 입법예고를 거치며 허물어졌다. 일부 보수기독교 단체에서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법무부에 항의했고, 법무부가 이를 ‘의견’으로 받아들여 ‘성적지향’을 비롯해 ‘학력, 출신국가, 언어, 병력,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의 사유를 삭제한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이 발의된 것은 두 달 후인 2007년 12월 12일이었다. ‘성적지향’은 반대가 있었기에 삭제했다고 설명하더라도 학력, 출신국가 등 나머지 사유를 삭제한 이유에 대해서 법무부는 공식적인 설명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참여와 연구과 염원을 담아 ‘한 땀 한 땀’ 만들었던 차별금지법이 불과 2개월 만에 허무하게 훼손됐다. 정당한 이유도, 정확한 이유도 없이 그저 누군가의 반대가 있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차별을 ‘요구’하는 민원, ‘수행’하는 국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하기 때문에 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이후 14년 동안 반복되었다. 동성애가 온 사회를 잠식해 국가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공포를 만드는 구호는 ‘종북게이’를 거쳐 최근 ‘동성애 독재’란 말로 등장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등 성소수자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연예인, 변호사, 의사, 대학생, 청소년, 직장인 등이 나타나 가시화되는 동안에도 (그리고 이로 인해 국가가 무너지지 않는 동안에도) 이 공포의 레퍼토리가 계속됐다.
2007년 법무부의 잘못은 단순히 차별금지법을 훼손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소수자 집단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는 전략이 유효하고 국가정책을 바꿀 정도로 ‘정당하다’는 감각을 심어줬다는 데 있다. 소위 ‘민원’이라고 말하는 혐오에 기반한 집단행동은 이때부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헌법과 국제인권법에 부합하는 원칙이고 많은 시민들이 염원하는 일이라도 사람들은 이 공포를 무기로 정부기관의 담당자와 국회의원을 위협하면 된다는 ‘쉬운’ 방법을 알아버렸다.
이는 차별에 관한 너무나 역설적인 역사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던 정부가, 소수자 집단에 대해 혐오를 조장하는 바로 그 차별적 행위에 굴복해, 차별을 할 수 있도록 법안을 훼손했다. ‘차별금지’법안에 관한 ‘차별적 행위’를 ‘민원’으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여실히 알려주지만, 바로 그 이유로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못한 아이러니다.
이후 그 ‘민원’이란 형태의 선동과 공포의 정치가 한국 사회를 잠식했다. 동성애가 사회를 잠식한 것이 아니라, 낯선 존재들을 마치 ‘없어져야 할 흉측한 괴물 혹은 범죄자’처럼 만들어버리는 공포가 사회를 분열시켰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공포의 정치는 이주민과 난민, 무슬림 등 다른 낯선 존재들을 향했고 민원을 가장해 국가가 특정 집단을 차별하도록 만드는 요구는 계속됐다.
이제 국가는 단순히 차별을 ‘방조’하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을 사용해 차별을 ‘수행’하는 기관이 되어갔다. 정책을 집행하다 의도치 않게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해서 행하는 차별이다. 성소수자의 축제나 체육대회 개최를 거부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여 장소사용을 거부하고 대관을 취소하는 일들이 매해 계속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행위가 ‘차별’이라고 판단했지만, 여전히 정부는 차별을 하지 말라는 권고보다 차별을 수행하라는 요구에 더욱 민감하다.

 

차별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

차별을 요구하는 집단과 이를 수행하는 국가가 공조하는 동안, 시민들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차별에 동조하는 사람과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 온라인에서는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재난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에 대해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무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고 이런 무례함에 대해 정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대중은 차별에 동조했다. 국가가 차별을 수행하는 동안 차별과의 싸움은 차별에 동의하지 않는 나머지 사람들, 오로지 시민들의 몫이었다.
시민들이 나서서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훼손된 차별금지법에 저항하기 위해 모인 성소수자 단체들은 2008년 5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을 조직했다. 성소수자는 더 이상 숨어있는 존재가 아니었고, “우리 여기 있다!”며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를 요구했다. 2009년에는 버스에서 한 승객이 인도 출신의 보노짓 후세인 씨에게 “더럽다”는 말을 하고, 함께 있던 여성에게 “새까만 OO와 사귀니 좋으냐”며 모욕하는 일이 있었다. 한국의 인종차별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자 여성에 대한 차별이기도 했다. 그 대응으로 2009년 7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성·인종 차별 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2016년 5월 강남역 인근에서는 한 남성이 ‘여성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불특정한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구든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와 분노가 사회를 무겁게 휩쌌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성폭력이 더 이상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저항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어났다. 그리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19세의 비정규직 용역 노동자가 사망했다. 2년 후에도 비슷하게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사망했다. 사회는 슬픔을 넘어 분노했다. ‘불쌍한’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부당한 현실인 걸 알기 때문이었다. ‘금수저’, ‘흙수저’, ‘갑질’ 등 수많은 불평등한 구조와 권력관계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최근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2%가 한국 사회에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고, 72.4%가 지금 같은 수준의 대응으로는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 차별에 대한 대응으로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고 했고, 73.6%가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동등한 존중과 대우에 찬성했다.
7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 및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을 발의하도록 국회에 의견을 표명했다. 이제 국회가 답할 차례다. 국회의원은 “헌법을 준수”할 것을 선서했다. 제21대 국회가 ‘동성애 독재’라는 허황된 공포에 굴복하여 헌법을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염원에, 300명의 국회의원이 응답하길 바란다.

 

 

김지혜 교수는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차별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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